"한국경제 새판 짜야…법인세 인상 중요"

유종일 KDI 교수(주빌리은행 대표)가 24일 서울 서대문구 통일로 소재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 사무실에서 시사저널e와 인터뷰하고 있다. / 사진=이준영 기자

가계부채가 1300조원을 넘었다. 1금융권 뿐 아니라 저축은행과 대부업체, 불법사금융 대출이 많이 늘었다. 2금융권 빚은 주로 서민들이 먹고 살기 위해 생활비로 빌린 것이다. 은행권 대출 중에는 주택담보대출액이 가장 비중이 크다. 치솟은 집값과 전세가격에 실수요와 투기 등 여러 목적을 가진 이들이 주택담보대출을 받았다.

가계부채의 심각성을 인식한 정부도 여러 대책을 내놨다. 여신심사가이드라인 시행했다. 강남4구와 과천시의 민간 아파트에 대해 분양권 전매제한 기간을 종전 6개월에서 소유권 이전 등기시로 강화했다. 그러나 늦은 감이 있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미국이 기준금리를 지난해말 한차례 올렸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올해도 기준금리를 추가 인상할 것으로 전망한다. 이미 시중은행은 대출금리를 슬금슬금 올리고 있다. 집값도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국감정원은 지난 12일 '2016년 부동산시장 동향 및 2017년 주택시장 전망 발표'를 통해 올해 전국 주택 매매가격이 0.2% 내릴 것이라고 밝혔다.

유종일 교수는 "가계부채 근본 대책은 임금 인상과 공공 일자리 늘리기다"며 "법인세를 높여 정부가 그 재원으로 공공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 금융사의 대출 책임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24일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 사무실에서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 겸 주빌리은행 대표를 만났다. 


가계부채 문제가 어떤 수준인가?

매우 위험한 상황이다. 부채는 양면성이 있다. 경제 규모를 확대해 경제를 활성화한다는 긍정적 부분이 있다. 그러나 소득 대비 부채의 정도가 중요하다. 지금은 가계 소득 대비 부채가 너무 많다. 부동산 가격도 가계 소득 대비 너무 높다. 가계는 부채 원리금을 갚느라 소비를 못하고 있다. 100만원을 벌어 27만원을 빚 갚는데 쓰고 있다. 가계의 과도한 빚이 내수를 위축시키고 있다. 부채의 부정적 효과가 훨씬 큰 상황이다.

가계부채 문제는 지금부터다. 이미 은행 시중금리가 오르고 있다. 미국은 올해 추가로 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보인다. 초저금리 시대가 끝나간다. 기존 가계의 부채상환 부담이 커져 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 더 심각한 것은 부동산 시장이다. 그동안 정부가 빚내서 집사라는 정책을 펼쳐온 결과 주택담보대출 잔액이 급증했다.

 

아파트도 과잉 공급 상태다. 집값은 내려갈 것이다. 담보 가치가 떨어져 가계의 대출 원리금 부담은 커진다. 이 경우 아파트 등의 급매물이 늘고 부동산 시장은 더 나빠진다. 이는 또 가계 부실을 악화시킨다. 특히 금리 상승과 집값 하락이 동시에 찾아오면 가계부채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올해 이러한 문제가 현실화할 수 있다. 가계부채가 경제 악화의 뇌관이 될 수 있다.

가계부채가 심각해진 이유는?

정부가 부동산 경기를 부양하려고 인위적으로 투기를 조장했다. 전세난도 전세 안정화 대책보다 전세자금대출을 통해 가계 부담을 키웠다. 여기에 한국은행이 저금리 기조를 유지하면서 채무자들이 부담 없이 빚을 늘리도록 조장 했다.

가계부채의 또 다른 원인은 양극화다. 돈이 한쪽으로 몰리면서 저소득층은 생활비가 부족해 어쩔수 없이 부채에 의존했다. 일자리 부족으로 자영업자가 늘었다. 이들은 사업자금을 빌렸다. 과도한 가계부채는 양극화, 저금리 기조, 부동산 경기 부양책의 합작품이다.

정부도 가계부채의 심각성을 알고 대책을 내놨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 상황이다. 정부 대책은 타이밍이 늦었다. 가계부채가 심각하다는 것은 참여정부 때부터 경고돼왔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도 가계부채를 해결하기 보다 부채 확대 정책을 펼쳤다. 특히 2014년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가 DTI(총부채상환비율) 규제를 완화한 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DTI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 소득 흐름이 어떠한지가 중요하다.

취약계층 부채가 심각하다는 지표들이 나온다.

취약계층 여신은 조심해야 한다. 갚을 능력이 있는지 봐야한다. 저소득, 저신용자들은 가산금리가 붙어 이자가 더 높다. 생활비가 부족해 돈을 빌린 이들에게 고금리를 물어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현실이다. 이들에게 대출로 지원하기 보다 복지로 지원해야 한다. 서민금융 확대가 좋아 보이지만 실은 위험하다. 취약계층에게 감당하지 못할 빚을 저금리로 주고 빚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할 수 있다. 취약계층은 소득이 부족해 빚을 갚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취약계층은 복지의 대상이다. 대출 대상이 아니다.

유 교수는 소액 장기 연체로 고통을 겪는 이들의 빚을 소각하는 주빌리은행 대표로 있다.

'주빌리'라는 단어는 구약성서에서 나오는 말이다. 주빌리는 빚을 지거나 노예가 됐거나 감옥에 갇힌 이들이 고통에 빠진지 50년째 됐을 때 새 출발의 기회를 주는 것이었다. 현재 한국에는 어쩔 수 없이 빚을 졌다가 채무의 덫에 걸려 고통을 겪는 이들이 많다. 이들에게 새 출발의 기회를 주는 것은 경제 생활에 복귀시켜 경제에도 도움이 된다.

주빌리은행은 빚 갚을 능력이 없어 오랜 기간 고생한 사람들의 채무를 소각하는 운동을 하고 있다. 금융사로 부터 채권을 사들여 없애는 것이다. 출범 1년 6개월만에 채무 원리금 기준으로 빚 6100억원을 소각했다. 3만6000여명이 새 출발의 기회를 얻었다. 이는 우리 사회에 따뜻한 마음이 남아 있고 보다 나은 사회를 향한 열망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빚을 갚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빚을 소각해주면 형평성에 맞지 않는 것 아닌가?

채무 이행은 약속이다. 지켜야한다. 빚을 소각하는 것이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문제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취약계층의 소액 장기 연체 채권을 소각하는 취지와 무관하다. 갚을 능력이 있는데 갚지 않는 것이 도덕적해이다. 그러나 주빌리은행이 채권 소각 대상자로 삼는 사람들은 소득 수준이 낮고 최저 수준으로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생활비가 부족해 어쩔수 없이 빚을 졌지만 돈을 갚을 능력이 없는 이들이다. 

 

이들 대부분은 고금리 탓에 원금 이상의 이자를 갚았다. 오래 채권 추심으로 고통을 받았다. 채권자의 책임도 있다. 금융사들이 철저한 신용평가와 채무자 정보를 분석해 돈을 빌려주는 것이 아니다. 갚을 능력이 없는 이들에게도 그냥 무조건 담보를 잡고 연대 보증을 세워 대출을 해준다. 그러므로 채권자도 위험 부담을 져야한다. 한국은 과도한 수준의 추심이 허용돼있다. 금융사들은 이것을 믿고 방만 대출을 해왔다.

외국은 협동조합 금융 등 관계형 금융이 발전해 있다.

한국은 관계형 금융이 취약하다. 관계형 금융은 금융사가 신용등급 등 정량적 정보에만 의존하지 않고 채무자와 지속적 거래·접촉·현장 방문 등을 통해 얻은 비계량적 정보를 바탕으로 대출하는 방식이다. 국내 은행들은 무조건 담보와 연대보증을 요구하는 등 후진적 방식으로 대출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신용과 기술만으로 대출이 가능하다. 국내 은행들이 경쟁력을 가지려면 신용 분석과 관계형 금융을 발전시켜야 한다. 누구에게 돈을 빌려줘야 하는지 알아내는 방식을 발전시켜야 한다. 그래야 신용 평가가 발전하고 선진적 금융이 될 수 있다.

주빌리은행 활동을 하면서 한계가 있나?

그렇다. 주빌리은행은 시민단체다. 시민단체가 1년반만에 소액 장기 연체 채권 원리금 6000억원을 소각했다. 그러나 이는 한강에 돌 던지기 수준이다. 소액 장기 부실 채권은 100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한다. 시민단체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정부가 나서면 효과적으로 할 수 있다. 

 

그러나 국민행복기금과 같은 운영 방식은 곤란하다. 행복기금은 채무자 구제보다 채권자 중심으로 최대한 많은 대출을 회수하는 방향으로 운영됐다. 또 채무상담사 등 인력도 매우 부족하다. 파산제도 등 채무자 권리를 제대로 아는 이들이 많지 않다. 서울시와 성남시 등 몇몇 지자체에서 금융복지 상담센터를 운영중인데 이로는 부족하다. 전국 모든 지자체의 동참이 필요하다.

가계부채의 근본 대책은 무엇인가?


임금 인상과 일자리 확대다. 분배를 통해 가계 소득을 올릴 수 있다. 현재 한국은 대기업 중심으로 경제가 편중돼 있다. 이익의 대부분을 대기업이 가져간다. 이를 가계 소득 인상으로 환원해야 한다. 방법은 임금 인상과 법인세 인상이다. 일본도 임금을 올리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임금을 올리기 위해선 노동조합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 특히 돈을 적게 버는 집단의 연봉을 올려야 한다. 임금 인상은 소비로 이어져 경제를 활성화 시킨다.

법인세 인상도 필요하다. 대기업에 몰린 이익을 환원해 정부가 일자리 창출과 복지 확대에 써야 한다. 법인세를 올려 그 돈으로 공공 부문의 고용을 창출해야 한다. 한국의 공공부문 일자리 수는 인구 비례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30% 수준이다. 

 

119서비스를 확대해야 한다. 소방 공무원들은 부족한 장비로 격무에 처해있다. 치안을 책임지는 경찰수도 늘려야 한다. 고령화 사회에서 의료와 사회복지 인원도 대폭 늘려야 한다. 환경보호 부분도 더욱 인원과 장비를 확대해야 한다. 공공서비스에서 괜찮은 일자리를 만들어야 헬조선에 희망이 생긴다.

재벌 체제도 개혁해야 한다. 그 첫걸음은 편법 상속에 대한 철저한 차단이다. 그래야 총수의 제왕적 지배와 황제 경영을 막을 수 있다. 재벌 경영에서는 법과 질서, 공정성 보다 이윤 창출이 중요하다. 오너에 충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문 경영인 체제는 이윤 창출과 함께 여러 사회적 조건들을 함께 고려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편법 상속 차단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 정상화, 임금 인상, 경제활성화를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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