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대행 체제·정계개편·개헌 논의 등 정국 불안정 여전

 

거대한 ‘촛불 민심’이 결국 정치를 이겼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한 것이다. 국회가 탄핵안을 가결하면서 박 대통령 직무는 정지됐다.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되기는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어 헌정 사상 두 번째다. 

자진 사퇴냐 탄핵이냐를 두고 치열하게 공방을 벌였던 정국은 일단 숨고르기하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법적으로 정해진 ‘포스트 탄핵’ 로드맵 수순을 밟는 만큼 정국 혼란은 줄어들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박 대통령 탄핵 처리는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리라는 절차를 남겨두고 있다. 또 황교안 권한 대행 체제에 대한 불신이 상존하는만큼 정국 혼란은 여전할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특히 정계개편 가능성이 점쳐 지고 있고, 이와 맞물려 개헌 논의가 본격화될 수 있어 탄핵 후폭풍이 정국을 휩쓸 공산도 크다.


◇‘압도적’ 탄핵안 통과…공은 헌법재판소로 


국회는 9일 오후 3시 본회의를 열고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처리했다. 이날 탄핵소추안 표결은 새누리당 친박계 좌장격인 최경환 의원이 불참한 가운데 국회의원 299명이 참여하는 무기명 투표로 진행됐다. 탄핵안 찬반 투표 결과,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은 찬성 234표로 의결 정족수인 200표를 크게 상회했다. 반대는 56표에 그쳤고, 기권 2표(무효 7표)로 집계됐다. 


국회 가결로 정세균 국회의장은 지체 없이 소추의결서 정본을 검사 격인 소추위원(권성동 법제사법위원장)에게, 등본은 헌법재판소와 청와대, 박근혜 대통령에게 각각 송달한다. 박 대통령이 소추의결서를 받는 즉시 직무가 정지된다. 처리 시간 등을 감안하면 박 대통령은 이날 오후 6시쯤 직무 정지될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박 대통령은 국정에서 손을 떼고 황교안 국무총리가 권한대행으로 내치뿐만 아니라 외교·안보까지 총괄한다. 


국회의 탄핵안 가결로 공은 헌법재판소로 옮겨가게 됐다. 헌재는 국회의 탄핵안 처리에 따라 즉각적인 심리 절차를 밟는다. 우선 헌재는 박한철 헌재소장의 퇴임이 예정된 내년 1월31일 이전 탄핵 심리를 마무리할 수 있다. 정치·사회적 혼돈을 최소화하기 위해 심리 절차를 신속하게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국회 탄핵안 의결 과정에서 정족수를 크게 웃도는 찬성표를 얻은 만큼 헌재 결정에도 영향을 미칠지 관심사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헌재 결정을 최대한 늦추는 전략을 펼 수 있다. 심리는 최대 180일까지 진행될 수도 있다. 심리 결과 헌재가 탄핵안을 인용할 경우 조기 대선은 8개월 이후 내년 8월쯤에야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헌재가 정치적인 부담을 감안해 특검수사 기간(120일) 이후 수사 결과를 보고 최종 결정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황교안 체제’ 안정적인 국정 운영 할까


헌재의 탄핵 심리와 별개로 정국이 급격히 안정되기는 어렵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주장해온 ‘촛불 민심’이 헌재 결정까지 이어질 수 있다. 이외에도 야권 일각에서 황교안 권한 대행 체제에 대한 불안감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만큼 박 대통령의 직무 정지 이후에도 현 집권세력의 안정적인 국정운영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야당 일각에서는 황 총리가 박 대통령이 임명한 관료로 법무부장관과 국무총리를 거치면서 박 대통령의 측근이었다는 점을 들어 황 총리의 책임론을 제기하고 있다. 


차기 대권 후보로 급부상하고 있는 이재명 성남시장은 9일 “황총리와 내각은 대통령이 이 지경에 이르도록 제 역할을 못해 명백한 책임이 있다”면서 “최순실 게이트의 책임을 지고 (박 대통령과) 함께 사퇴해야 정치적으로 도의적으로 합당하다”고 말했다. 이 시장뿐만 아니라 문재인 대표와 추미애 더민주 대표 등도 ‘원칙론’이지만 황교안 대행 체제에 대한 불신을 드러내고 있다. 


현실적으로 황 총리가 후임 총리를 지명하는 것이 적법한지 논란이 제기될 수 있는 만큼 황 총리의 퇴진은 불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에 따라 내각과 야권의 갈등이 향후에도 첨예화 될 수 있다. 이로 인해 황교안 대행 체제가 산적한 외교·경제 현안을 주도적으로 이끌 수 없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유창선 정치평론가는 “황교안 대행 체제는 지극히 소극적인 관리를 하는 리더십을 보여주는 형태로 국정을 유지하는 정도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면서 “황교안 대행 체제가 지속될수록 국가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겠지만 총리가 후임 총리를 지명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만큼 정국 불안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개헌 논의 가속화 등 정치권 격랑 예고 


대통령 탄핵안 처리와 조기 대선이 가시화하면서 정치권을 중심으로 정계개편 시나리오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여권으로서는 탄핵안 가결로 분당이든, 리모델링이든 당 체재의 변화가 불가피한 양상이다. 새누리당 내부의 당권을 거머쥐고 있던 친박계가 상당수 박 대통령의 탄핵에 찬성표를 던진 상황에서 친박 내부의 결속력은 상당히 느슨해졌다는 점이 드러난 셈이다. 


국회 찬반 투표 결과, 비박계 결집과 친박계의 이탈 현상이 나타난만큼 향후 당내 주도권에서 그동안 우위를 점했던 친박계의 세력은 상당히 위축되고 비박계는 운신의 폭이 과거에 비해 상당히 넓어진 양상이다. 일각에서 야권 일부와 새누리당 비박계 등이 주도하는 ‘제3지대론’이 솔솔 나오고 있어 여야의 이합집산과 함께 정치 구도의 격랑이 예고되고 있다. 


헌재의 탄핵 심리 일정에 따라 시기는 다소 차이를 보이겠지만, 조기 대선 체제로의 전환은 여야간 내지 야야간 차기 대권을 두고 치열한 기 싸움이 벌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그동안 숨죽이고 있던 여야의 차기 대권 주자들이 정치 현안 논쟁의 전면에 나설 공산이 크다.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는 “조기 대선 체제가 사실상 현실화하면서 여야의 대권 주자들의 경쟁이 본격화될 것”이라면서 “정국의 관심도 여야 대권 주자들에게 집중적으로 쏠리는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개헌 논의는 정국을 ‘블랙홀’로 접어들게 할 수 있다. 야권 내부에서도 개헌 논의에 대해서는 의견을 엇갈리는 양상이다. 이런 상황에서 새누리당 내부에서 당파와 상관없이 개헌 논의를 본격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것은 눈여겨 볼 만하다. 


새누리당은 탄핵안 표결 처리가 예정된 9일 국가변혁을 위한 개헌추진위원회 모임을 결성하고 본격적인 개헌 띄우기에 나섰다. 친박계와 비박계를 아우르는 이 모임에는 김무성 전 대표와 정진석 원내대표가 참여할 계획이다. 정 원내대표는 “우리가 진정으로 극복하고 넘어가야 할 큰 산은 탄핵보다 개헌”이라며 말했다. 이에 따라 박 대통령의 거취 문제에서 시작된 정국 의제는 급격하게 개헌 논의로 옮겨갈 수 있다. 


정해구 교수는 “국민들에게 개헌은 아직 큰 관심사가 아니고 중대한 개헌 문제를 신속하게 처리한다고 하더라도 국민적 공감대를 얻기는 어려울 수 있다”면서도 “개헌 문제는 향후 정국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의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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