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판 조장하며 ‘빚내서 집사기’ 내모는 정부…4차산업혁명 시대에도 구태 못 버려

고객은 왕이라고 하지만 고객도 고객 나름이다. 달갑지 않은 고객도 있다. 무엇보다 물건을 사주는게 대단한 권력인양 매장 직원들에게 상식에 닿지 않는 서비스를 강요하는 갑질 진상고객은 기피대상 1호일 것이다. 매출 증가에 도움을 준다고 무조건 환영할 수는 없다. 해당 매장은 물론 사회적으로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고려할 때 이런 고객은 사라지는게 낫다. 

 

우리 경제에서 부동산 투기가 딱 그런 존재가 아닌가 싶다. 당장의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는 긍정적인 역할보다는 경제 구성원들에게 부정적 영향을 주고 경제의 성장동력을 해침으로써 미래를 망치는 폐해가 훨씬 크기 때문이다. 더구나 성장에 보탬이 된다는 핑계로 정부가 이런 행위를 앞장서 조장하는 것은 도대체 말이 안된다.

 

잘됐든 못됐든 박근혜 정부에서 가장 두드러진 경제정책을 꼽으라면 단연 부동산경기 활성화가 될 것이다. 창조경제는 구호만 요란할뿐 가시적인 성과를 찾아보기 어렵지만 부동산 정책이야말로 모든 국민이 체감할만한 결과를 내고 있다. 서울과 다른 수도권 지역 신도시, 부산 등 일부 지방의 아파트 값만은 확실하게 올려 놓았다. 

 

초이노믹스를 표방한 최경환 전부총리는 지난 2014년 6월 경제부총리에 내정되자마자 “현재의 부동산 규제는 한여름 옷을 한겨울에 입고 있는 격”이라며 부동산 규제를 싹 걷어낼 의지를 천명했다. 그러더니 취임직후부터 LTV(주택담보대출비율)•DTI(총부채상환비율) 완화를 골자로한 ‘7•24대책’을 발표했다. 2013년 단행된 양도세 중과 폐지에 보태 다주택자의 분양시장 진입을 쉽게할 청약제도 개편과 재건축 규제 완화가 뒤따랐다. 2015년엔 분양권 전매제한 기간 단축,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폐지, 수도권 청약 1순위 자격 완화 등 부동산 투기를 제어하는 장치들을 사실상 모두 제거했다.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잇달아 낮춰 정부를 거들었다. 

 

경제성장률만 본다면 이런 조치가 나름 성과를 낸 것이 사실이다. 수출과 내수가 갈수록 뒷걸음질 치는 상황에서 건설투자마저 부진했다면 현재의 2%대 성장마저도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2분기만하더라도 성장률 0.8%중 건설부문이 기여한 몫이 절반을 웃돌 정도다. 외환위기 시기 등 건설분야의 경제성장 기여율이 50%를 넘은 때가 과거에도 여러 차례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공공건설투자가 아닌 민간 주택투자가 주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양상이 전혀 다르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경제성장에 도움이 됐으면 잘된 일 아니냐고 강변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로 인해 우리 경제에 얼마나 큰 부작용을 낳고 있는지 생각해본다면 제 정신을 갖고는 이런 주장에 동조하기 어려울 것이다.

 

부동산 투기를 막는 장치들이 무더기로 사라지면서 결국 투기꾼들만 살판이 났다. 물만난 물고기처럼 이들이 설치면서 강남 재건축 단지는 분양가가 평당 4000만원을 훌쩍 뛰어 넘었다. 이런 투기 바람에 강북도 분양가가 치솟고 청약경쟁률을 수십대 1을 예사로 넘나들게 됐다.

 

이런 활황세가 집을 마련하려는 실수요자들이 주도하는 것이 아님은 분양권 전매가 횡행하는 것으로도 증명이 된다. 올해 전매 제한이 해제된 서울 강남권 분양 아파트 당첨자의 32%가 계약한 지 1년도 되지 않아 웃돈을 받고 분양권을 팔아 치웠다고 한다. 웃돈이 더 붙을 때까지 기다려 전매하겠다는 사람까지 감안하면 이들의 절반 정도가 시세 차익을 노린 투자 세력이라는  분석도 있다. 

 

정작 집이 필요한 실수요자들의 상당수는 시장에서 내몰리는 아픔을 겪고 있다. 지난 6월 서울 인구가 1988년이후 처음으로 1000만명 밑으로 내려선데는 전세값과 매매값 상승을 견디지 못한 사람들의 엑소더스가 한 몫 했음은 물론이다.

 

집값 상승은 젊은이들에게 내집 마련의 꿈을 멀어지게 함으로써 국가적 난제인 저출산 문제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마땅한 거처조차 장만하기 어려운데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낳아 기를 엄두가 나겠는가. 젊은이들이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것이 결코 이상할게 없다.

 

가계부채는 갈수록 불어나 경제를 짓누르고 있다. 빚내서 집사라며 규제를 마구잡이로 풀고 저금리로 대출을 유혹한 정부의 조치에서 비롯된 현상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가계부채는 우리 경제에 언제든 파국적인 결과를 몰고올 수 있는 위험천만한 폭탄이 되고 있다. 2012년말 964조원에서 지난 2분기말 1257조원으로 가파르게 증가해 1300조원을 넘보고 있다. 집값 거품이 꺼지면 이런 가계부채는 한순간에 대규모 금융부실로 번질 수 밖에 없다. 우리 경제는 한순간에 감당할 수 없는 처참한 위기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다. 

 

청년 실업률이 치솟는 판에 건설분야에서라도 일자리가 생기면 좋은 일이라는 의견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만들어지는 일자리의 대부분은 좋은 일자리라고 말하기 어렵다. 특히 일용직 근로자들의 힘든 근로여건과 팍팍한 삶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우리 경제에서 건설의 역할을 폄훼하거나 투자를 할 가치가 없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투자가 너무 과한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자원이 온통 여기에만 쏠리다보니 정작 해야할 일에는 자원이 투입되지 않고 아예 다른 일을 할 의욕조차 잃게 하는 부작용이 크니 하는 말이다. 

 

불로소득으로 쉽고 안전하게 부를 축적할 길이 널려 있고 정부도 그런 일을 하라고 등을 떼미는 판에 기업인들이 위험을 감수하면서 사업다운 사업에 돈을 투자할 의욕을 가질리 만무하다. 

 

지금 세계 각국은 4차산업혁명의 격랑속에서 국가와 기업의 적응력과 경쟁력을 높이는 일에 앞다투어 나서고 있다. 정부와 민간 모두가 부동산에만 매달려 온갖 정력을 낭비하면서 이런 경쟁에서 앞서 나가기를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경제성장의 근본 목적을 성찰해야 한다. 국민 대다수에 고통을 주고 미래에 대한 희망마저 사그라들게 한다면 그런 성장은 차라리 안하느니만 못하다. 국민의 복리후생이 증진되고 기여한 몫에 따라 공정하게 성과물이 배분될 때 경제성장은 비로서 긍정적인 의미를 갖게 된다.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고 미래를 기약할 수 있는 성장동력을 키워나가며 좋은 일자리를 늘리는 것은 한 순간도 게을리 할 수 없는 절박한 과제다. 시대착오적으로 부동산에 과도하게 매몰된 자원을 풀려 나오게 하는 일부터 정부는 고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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