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번째 이야기

 

“뒤쳐지면 버리고 우리가 먼저 하고 있으면 되지 않나요?” 

 

복지센터 한 학생이 나에게 말했다. 초등학생 한명이 모형비행기 조립을 서툴러하자 나온 말이다. 곧장 그 학생에게 “못하는 친구가 있으면 도와주는 게 당연하지 조금만 기다려보자”라고 했다. 그러자 그 아이는 “못하면 버려야죠. 잘하면 앞서가는 게 당연하잖아요”라고 말했다. 

 

할 말이 없었다. 그 이야기를 같이 듣고 있던 선생님 한분과 눈이 마주쳤다. 서로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선생님은 “그 동안 아이들에게 공부, 공부 이야기만 한 것 같아 아이들에게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 둘은 후회했다.

 

자세히 생각해보면 그 학생 말도 틀린 것은 없었다. 나도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뒤쳐지는 아이와 함께 무엇이든 하려고 했던 기억은 없다. 공부에 앞서 남을 돕는 다는 건 꿈에도 생각하지 못 했다.

 

우리 교육은 1등부터 꼴등까지 줄을 세운다. 우등반과 열등반을 나눠 반마다 차이를 둔다.  우등생은 선생님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학교를 다니지만 열등생은 문제아로 낙인 찍혀 선생님 관심 밖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런 사소한 차이가 차별을 만든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경쟁 심리를 갖게 된다. 문제는 이 같은 경쟁이 선의(善意)가 아닌 ‘남을 이겨야 내가 살아남는다’는 자세로 변질된다는 거다.

 

나와 대화한 그 학생은 현실감각이 뛰어났던 것일 수 있다. 어쩌면 자신의 현재 위치를 완벽히 파악했다. 그러다 보니 대화주제 대부분이 금수저, 흙수저, 집안이야기 등이다. 대학생들도 말하기 꺼려하는 이 주제들이 10대 또래들 사이에선 서슴없이 이야기 된다. 학생들이 벌써부터 출발 선상의 다름을 인정하고 바뀌지 않을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슬픈 일이다. 

 

누가 그들을 이렇게 만들었나. 원인은 교육에 있다. 교육은 소득격차를 극복하는 방법 중 하나다. 그런데 교육 복판에서는 경쟁승리와 승자독식이 당연하듯 번져있다. 학생들은 경쟁사회에서 이기고 남보다 앞서야 내가 잘살고 우리 가족이 행복해 질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대한민국의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교육시스템의 붕괴다. 그릇된 생각을 심어준 우리 사회와 교육 그리고 우리 어른들에게 큰 잘못이 있다. 

 

현실은 분명 각박하다. 다만 교육까지 현실적일 필요는 없다. 교육(敎育)의 정의는 지식과 인성을 함께 길러내는 것이다. 진정한 의미의 교육이라면 함께 생각하고 도와주며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희망을 줄 필요가 있다. 그래야 학생들이 마음껏 밖을 뛰어다닐 수 있는 공정한 경쟁사회가 된다. 조금은 늦게 완성된 모형비행기도 같이 웃으며 날릴 수 있는 사회를 꿈꾸는 것. 동화에만 나오는 비현실적인 고민일까. 아이 아닌 어른들의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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