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정부 책임 피하려 한은 발권력 이용"

자료=기획재정부, 시사비즈

 

금융 전문가들은 정부의 국책은행자본확충펀드안을 두고 금융위원회와 서별관회의 참석자 등 정부 책임 소재 규명을 피하기 위해 한은 발권력을 이용한 꼼수라고 10일 지적했다. 이 과정에서 기업은행과 신용보증기금까지 끌어들여 피해 확대 가능성까지 만들었다고 우려했다.

정부는 지난 9일 조선·해운업 등 구조조정을 위한 국책은행 자본확충안을 통해 결국 한은 발권력을 이용하기로 했다.

이는 국책은행자본확충펀드 구조를 살펴보면 명확해진다. 우선 한국은행은 기업은행에 신용증권을 담보로 10조원을 빌려준다. 기업은행은 이 10조원을 캠코가 만드는 특수목적법인(SPC)에 재대출한다. 이 과정에서 기업은행은 신용보증기금(신보)의 지급보증을 받는다. 특수목적법인이 국책은행자본확충펀드를 조성한다. 기업은행은 캠코에 후순위대출 방식으로 1조원 내에서 자본확충펀드 조성에도 참여한다. 자본확충펀드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발행되는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의 코코본드를 매입한다. 신보의 보증 여력이 부족하면 한은이 신보에 출자한다.

국책은행자본확충펀드 조성안은 여러 공공기관들이 얽혀 있지만 결국 한은 발권력으로 특정 기업을 지원하는 형태다. 지급보증을 서는 신보의 자본확충을 한은 출연으로 마련하기 때문이다. 한은이 돈을 찍어 대출해주고 돈을 때일 것을 대비한 보증도 한은 자신이 서는 것이다.

금융 전문가들은 이 정부안에 대해 국책은행을 부실화시킨 금융위원회와 서별관회의 참석자들 책임을 회피하려는 수단이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직접출자를 통해 선도적 역할을 수했하겠다고 했지만 여기엔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길이 있기 때문이다.

우선 정부가 추진하기로 한 1조원의 현물출자는 국회 의결을 거치지 않아도 되기에 책임 소재를 규명할 수 없다. 2017년 예산에 산은과 수은 출자소요를 반영한 현금출자도 12월이 돼야 국회 승인을 받을 수 있다. 12월 전 국책은행자본확충펀드를 통해 구조조정 지원이 충분히 이뤄지면 현금출자를 건너뛸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현금출자로 자본확충펀드에 쓰인 돈을 갚는다는 방안도 없다.

김성진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소장(대행)은 "한국은행을 통한 자본확충펀드로 필요한 돈을 다 빌려주면 추가적인 현금출자 필요성이 없다"며 "무엇보다 현금출자가 자본확충펀드로 쓰인 돈을 갚겠다는 방안도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는 국책은행을 부실화한 책임이 있는 금융위와 서별관회의 참석자 등의 책임소재 규명을 회피하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전문가들은 정부가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통해 현금출자를 하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추경을 하게 되면 국회 심의를 거쳐 책임소재를 규명해야 한다. 이를 피하려 했다는 것이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교수)은 "정부가 국책은행 자본확충에 한은을 끌고 들어간 것은 금융위 등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것"이라며 "원칙적으로 정부는 추경을 편성해서 현금 출자를 해야했다. 지금 국회 원구성도 끝났으므로 한달 안에도 추경을 할 수 있다. 추경을 하면 국회 심의를 거치기에 책임 소재 규명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는 국회 가서 야단 맞으려는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이를 하지 않았다"며 "비용은 사회화하고 그 책임 소재를 묻는 과정은 생략했다"고 덧붙였다.

윤석천 경제평론가도 "금융위나 서별관회의 참석자 등 정부 책임 규명을 피하기 위해 한국은행 발권력에 기댄 것이 국책은행자본확충펀드다"며 "한국은 정부부채와 공공부채를 포함해도 GDP의 70% 수준이다. 이는 안정적 상황으로 추경 여력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추경을 하지 않고 한은 발권력을 이용한 것은 시간을 보내 책임 소재 규명을 뭉개고 가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성인 홍익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도 "국회 원 구성이 됐기에 추경은 6월말이라도 할 수 있다"며 "국가재정법 89조에 따르면 경기침체나 대량실업 사태 우려시 추경을 할 수 있다. 대우조선해양 등이 있는 지역에 대량 실업이나 지역경제 침체 가능성이 있기에 지금이라도 추경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추경을 통하면 책임 소재도 밝히고 투명하게 할 수 있는데 서별관회의 참석자와 금융위 등 책임 추궁을 피하기 위해 한은 팔을 비틀어서 한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8일 홍기택 전 산업은행 회장은 지난해 대우조선해양 4조2000억원 지원에 대해 "지난해 10월 중순 청와대 서별관회의에서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 임종룡 금융위원장, 진웅섭 금융감독원장 등으로부터 정부의 결정 내용을 전달받았다"며 "당시 정부안에는 대우조선의 주채권은행인 산은과 최대주주 은행인 수출입은행이 얼마씩 돈을 부담해야 하는지도 다 정해져 있었다"고 말했다.

금융위는 대우조선해양의 2대주주로 대규모 부실과 분식회계 의혹에 대해 관리·감독 책임이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 기업은행·신보까지 피해 확대 우려…중기 지원 약화 가능성도

국책은행자본확충펀드가 기업은행과 신용보증기금까지 끌어들여 피해를 확대시킨다는 지적도 있다.

나기수 기업은행 노조위원장은 "국책은행자본확충펀드를 통한 낮은 등급의 채권 매입은 결국 기업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비율 하락을 불러올 것"이라며 "이에 대비해 신보가 지급보증을 하겠다고 하지만 신보는 자산이 8조원 규모고 이미 대우조선해양 관련 부실이 1조원 이상 발생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신보의 지급보증에 문제가 발생하면 결국 기업은행이 모든 부실을 떠안게 된다"며 "중소기업지원을 목적으로 설립한 기업은행과 신보까지 동반 부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김문호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위원장도 "정부는 11조원 대출의 물고 물리는 사슬 안에 기업은행과 캠코, 신보까지 끼워넣었다"며 "조선·해운업 구조조정이 실패할 경우 모든 정책 금융기관들이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기업은행과 신용보증기금 역할 축소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김영근 한국은행 노조위원장은 "정부는 기업은행을 통해 자본확충펀드에 대출되는 자금을 신용보증기금이 보증하도록 했다"며 "신보 또한 중소기업 지원을 위해 만들어진 기관이다. 신보의 보증 한도가 소진되면 정작 중소기업들은 보증을 받을 수 없게 된다"고 지적했다.

나기수 위원장도 "이번 자본확충펀드를 통해 매입된 후순위채권 등 낮은 등급의 채권은 기업은행 BIS 비율을 떨어뜨린다"며 "BIS 비율이 하락하면 중소기업 대출을 늘릴 수 없다. 이는 기업은행 설립 목적을 잃고 대기업을 지원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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