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일고시원 참사로 다중이용시설 안전관리 다시 도마…2009년 법개정 전 시설물은 대상 안돼

7명이 목숨을 잃은 서울 종로 국일고시원 화재 이후 국내 사회 주거 취약계층의 안전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국 고시원은 1만2000개로 10년 동안 3배 증가했지만, 고시원 등 사람들이 밀집된 공간에 대한 화재 안전관리는 여전히 소홀하기 때문이다.

고시원 등 사람들이 밀집돼 있는 공간인 다중이용업소 건물 대부분은 노후하거나 불에 타기 쉬운 소재로 만들어져 특성상 화재에 취약하다. 그러나 다중이용업소는 안전 관련법을 적용받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다중이용업소란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업종을 뜻한다. 정부는 그동안 다중이용업소의 화재 재발을 막기 위한 법·제도 개선을 약속했지만, 대다수 고시원은 여전히 화재 위험에 노출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방청 5개년 다중이용업소 화재발생 현황 표. / 자료=소방청, 그래픽=이다인 디자이너

13일 소방청의 5개년 다중이용업소 화재발생 현황자료에 따르면, 고시원에서 발생한 화재는 2012년 35건, 2013년 43건, 2014년 48건, 2015년 52건, 2016년 74건으로 해마다 늘고 있다. 지난해는 47건으로 감소했지만 올해 11월 기준 이번 종로 국일고시원 화재까지 46건이나 발생해 증가 추세로 돌아섰다.

아울러 소방청에 따르면, 2004년 전국 고시원 수는 3910곳에서 2008년 6126곳으로 늘었고, 2012년 1만1232곳에 이어 지난해 말 1만1892곳으로 기록됐다. 이는 13년 만에 3배가 늘어난 수치로 2000년대에 크게 증가했다.

지난 2008년 경기도 용인에서 발생한 타워 고시텔 화재 사고 당시 방화 탓에 고시원에 불길이 번졌으나 자동 물뿌리개(스프링클러) 등 장비가 설치돼 있지 않았고, 고시원 방 칸막이들이 화재에 취약했던 탓에 1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당시 정부는 2009년 고시원을 포함한 다중이용업소의 화재·안전관리를 다룬 법안인 ‘다중이용업소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을 개정했다. 개정 특별법에 따르면, 다중이용업소는 분기별 1회 이상 화재 안전점검을 실시해야한다. 또 2009년 7월부터 운영된 고시원을 대상으로 스프링클러를 의무화하고 있다. 점검 항목에는 소화설비, 피난설비, 경보설비 점검 등 화재를 예방하고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 등이 포함돼 있다.

문제는 법 개정 이전에 생긴 고시원은 법의 소급적용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별법은 고시원에 간이 스프링클러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지만, 법 개정 이전에 지어진 곳은 적용 대상이 아닌 것으로 규정한다. 2009년 이전 지어진 다중이용업소는 올해 초 행정안전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실시한 국가안전대진단 대상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소방청 관계자는 “스프링클러의 경우 지하나, 밀폐형 건물인 경우에만 의무적으로 설치되도록 하고 있다”며 “고시원은 스프링클러 설치 적용 대상이 아니다. 앞으로 법 개정 전에 지어진 건물에도 화재안전시설을 설치 가능 여부를 논의해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특히 겨울철에는 전열기구 사용에 따른 화재나 균열, 붕괴 등에 따른 안전사고 발생위험이 높아지기 때문에 집중관리가 필요하다. 정부는 다중이용업소 화재 예방을 위한 개선안을 화재 발생 시마다 마련하고 있지만, 정부 약속은 단순 대책 또는 ‘보여주기’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13일 국무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불이 난 고시원은 2009년 ‘다중이용업소 안전관리 특별법’ 시행 이전에 영업을 시작해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가 면제됐다”며 “행정안전부와 소방청 등 관계부처가 법 시행 이전부터 영업해온 시설에 스프링클러 같은 화재안전시설을 설치하도록 하는 법령 개정이 가능한지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면서 “지자체는 오래되고 취약 계층이 많이 이용하는 시설의 스프링클러 설치를 지원하는 방안도 강구해주면 좋겠다”고 부연했다.

다중이용업소의 건물구조도 문제다. 고시원이 빈민층을 타깃으로 하다보니 주거환경은 열악할 수밖에 없다. 다중이용업소 건물주들이 경비를 절약하기 위해 구조 안전성을 지나치는 경우가 많아 대부분 건물이 노후하거나 불에 타기 쉬운 소재로 만들어져 화재에 취약하다.

건물 소방시설을 점검하는 한 소방시설관리사는 “고시원은 대부분 방들이 빼곡이 붙어있고 좁은 탈출구, 스프링클러 미비 등 화재에 취약한 요소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정부 규제나 지원에서 벗어나고 있다”며 “옛 건물일수록 소급적용 시한 등으로 법망을 비껴가기 쉽다”고 설명했다.

이에 서울시는 이번 종로 고시원 화재를 계기로 오는 15일부터 관내 고시원 5840곳을 비롯해 노후주택 및 소규모 건축물(연면적 2000㎡ 미만) 1675곳을 점검할 계획이다. 점검반은 ▲간이 스프링클러 설치 유무 ▲비상구, 피난경로 장애물 적치 여부 ▲피난 안내도 부착여부 ▲건축물의 기둥 등 주요 구조 균열, 변형 등에 중점을 맞춰 건축물의 상태와 구조적 안전성등을 점검할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 기획조정과 관계자는 “종로 고시원 화재 등 주거 빈곤층 재난이 반복되고 있다. 이러한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취약시설 화재예방에 주력해 종합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행정안전부 안전기획과 관계자는 “화재 사고 안전 정책 등은 모두 소방청에서 총괄하고 있다. 화재 사고가 매년 발생하고 있는 만큼 단순 대책이 아닌 화재 종합 대책을 마련해 화재 사고를 예방할 계획”이라며 “이번 종로 고시원 화재 사고를 계기로 태스크포스(TF)를 꾸려 화재 발생에 대한 수습, 대응을 위한 대책을 논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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