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 취약한 마감재가 피해 더 키워…대형 참사에 제천 시민들도 술렁

22일 제천서울병원 장례식장에서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로 가족을 잃은 유족이 오열하고 있다. / 사진=이준영 기자

헬스복으로 코를 막고 자세를 바짝 숙이고 4층부터 계단을 내려왔어요. 연기가 많았어요. 같이 내려오는 사람들 모두 먼저 나가려고 했지요. 그래야 살 수 있으니까요. 침착해야 살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2층 여자 사우나 계단쪽을 내려오는데 여기서는 계단으로 대피하는 사람들이 안보였어요. 밖으로 나오니 1층 주차장의 차들이 용광로처럼 시뻘겋게 타오르는 것을 봤어요. 같이 대피한 사람들 얼굴을 보니 마치 탄광에서 나온 것처럼 시꺼멓게 그을리고 머리카락은 타 있었어요.”

 

지난 21일 화재 참사가 있었던 충북 제천 소하동의 스포츠센터 두손스포리움에서 구조된 김아무개씨(68)의 말이. 두손스포리움 화재로 29명이 목숨을 잃고 31명이 다쳤다.

 

22일 정오 기자가 찾은 두손스포리움은 여전히 매케한 냄새를 뿜어냈다. 스포츠센터 인근에서 시커멓게 그을린 소방복을 입은 충북소방서 관계자는 우리가 화재 현장에 도착했을 때 큰불은 잡혀있었다. 잔불을 정리하고 인명 구조 작업을 했다사망자와 부상자를 옮기는데 계단이 좁아 구조 기기가 계단 양쪽 벽에 이리 부딪히고 저리 부딪혔다. 작업에 애먹었다. 밤새 구조했다고 말했다.

 

화재가 난 스포츠센터를 자주 이용했던 이아무개씨(55)어제는 두손스포리움 사우나에 가지 않았다. 거기는 외형적으론 잘 지어졌지만 계단이 좁다화재가 난 시간에 사우나를 갔다면 나도 죽었다고 말했다.

 

두손스포리움 옆 건물에서 상점을 운영하는 박아무개씨(40)스포츠센터에서 난 불은 처음엔 크지 않았다. 연기도 많지 않았다그런데 몇 십분 사이에 불이 확 번졌다. 우리 가게에도 불이 옮겨 붙을까 무서웠다고 말했다.

 

박씨 말대로 이 건물은 불에 취약한 마감재 드라이비트를 외장재로 사용했다. 스티로폼에 시멘트를 바르고 유리섬유를 덧댄 외장재다. 공기 유입이 잘 돼 불쏘시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는 또 화재 당시 스포츠센터를 둘러싼 불법 주차로 소방차가 작업하는 데 애를 먹었다“화재 당시 불법 주차됐던 몇몇 대의 차들은 이 근방에서 주로 생활하는 사람들 것이었다고 말했다.

 

소방청에 따르면 화재 신고는 지난 21일 오후 356분께 발생했다. 소방차와 구조대는 7분 후 현장에 도착했다. 그러나 스포츠센터 진입로에 불법 주차한 차들 때문에 초기 화재 진압과 인명구조가 늦어졌다.

 

사망자 수가 20명으로 가장 많았던 2층 여성 사우나의 출입문 앞에서 사망자 11명이 발견됐다. 인명구조에 나섰던 제천소방서 관계자는 “2층 여성 사우나 출입문 바로 앞에 사망자 11명이 있었다. 나머지 사망자 9명은 출입문에서 떨어진 곳에서 발견했다고 말했다. 이 건물의 여성 사우나 출입문은 버튼식 자동문이다.

 

사망자 시신이 안치된 제천서울병원 장례식장 2층에는 유족과 지인 100여명이 모여 있었다. 흐느껴 우는 이들이 여기저기 보였다. 한 유족은 이렇게 갈 줄 몰랐다며 흐느꼈다. 울면서 장례 절차를 가족들과 상의하는 유족도 보였다.

 

29명의 목숨을 앗아간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원인과 여성 사우나 출입문 앞에서 발견된 사망자 11명이 출입문을 열지 못한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소방당국은 이 건물 1층 주차장 천장 배관 열선 설치 작업 중 불이 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스포츠센터 인근 주민들은 불에 취약한 외장재 사용, 초기 구조를 지연시킨 불법 주차가 화재를 키웠다고 입을 모았다.

 

이번 화재 참사로 지역민들도 술렁였다. 제천에서 60년 동안 살았다는 한 택시 기사는 음식점을 운영하는 지인이 이번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성실하고 딸도 있었다제천은 인구 15만명 정도의 소박한 곳이다. 29명이 사망한 이번 사건은 대참사다고 말했다. 

 

지난 21일 충북 제천 하소동에 위치한 스포츠센터에 화재가 발생해 29명이 사망했다. / 사진=이준영 기자
지난 21일 충북 제천 하소동에 위치한 스포츠센터에 화재가 발생해 29명이 사망했다. 사진속 아래쪽 창문은 20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여자 사우나의 통유리다. / 사진=이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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