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가치 최우선' 앞세운 기업들의 못된 일탈행위…고객·협력사·직원들 외면하는 기업은 오래 못 버텨

현대 경제 경영분야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베스트셀러 두 권을 꼽자면, 하나는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의 '21세기 자본'이고, 다른 하나는 팀 콜러(Tim Koller) 등이 공저한 '밸류에이션'일 것이다. 일견 전자는 불평등을 다뤘고, 후자는 주주이익 제고를 다뤄 상호 대척점에 위치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두 권의 책은 오늘날의 고용 없는 성장과 금융위기를 초래한 금융회사들의 문제를 공히 다루고 있다. 


지난 미국 대선 캠페인에서 화두 중 하나는 기업부문으로의 이익집중화 문제였다. 밸리언트(Valeant)는 연구개발(R&D) 대신 바이오 업체 인수 후 인수기업들이 보유한 의약품의 약값을 1년여 만에 30배 가까이 인상하며 폭리를 취했으나 급기야 힐러리 클린턴까지 나서 밸리언트에게 선전포고를 했고, 미국 의회와 정부의 조사를 받았다. 

 

이 가공할 역풍 이후 밸리언트는 몰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2015년 260달러에 육박했던 주가, 약 100조원에 달했던 시가총액이 현재 주가 17달러, 시가총액 약 6조원으로 쪼그라들었다. 그들 스스로 불법은 없었고, 오로지 주주이익 극대화를 위해 노력했다고 항변했지만 과도한 주주이익 극대화가 역풍의 단초가 되었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했다.
 

엔론도 주주가치 최우선을 망하기 전까지 강조했었고, 리먼 브라더스는 주주가치 극대화의 대명사였으며, 엠씨아이와 월드컴이야 말로 스스로 주주가치에 있어서 검증된 기업이라고 늘 자찬한 바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망했다. 91년 영국 최대 종합화학회사였던 아이씨아이는 이해관계자 이익 추구에서 주주가치로 전환했다. 이후 이 회사는 97년을 분기점으로 쇠락의 길을 걷다가 결국 2007년 네덜란드 기업에게 매각되었다. 

 

“돈 만드는 것 이외에는 관심이 없다‘던 베어스턴스는 2008년 망했다. 주주가치 경영의 구루로 신봉되었던 GE의 잭 웰치는 은퇴 후 2009년 ”자신이 추구했던 주주가치 경영이야 말로 가장 멍청한 아이디어였다“고 실토하기도 했다.
 

1919년 미시건 법정의 판례, 즉 기업은 주주이익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여 조직, 운영돼야 한다고 판시한 이래, 역사적으로 미국기업들은 주주이익이란 단어에 줄곧 현혹되어 왔다. 모든 경영적 의사결정의 중심에는 주주가치가 자리 잡았다. 이 잣대에 따라 기업들을 분할되고 처분되고 합병됐다. 금융의 탈규제화는 이와 맞물리면서 수많은 문제들을 양산했다. 

 

그리고 이러한 주주가치 개념이 지난 IMF 사태 이후 한국 기업들에게도 깊이 들어왔다. 기업을 둘러싼 다양한 이해관계자들 중에서 주주들은 강화된 IR을 통해 특별대우도 받았다. 온갖 사회적 해악을 끼치고 범법행위를 하고 대주주가 횡령 배임을 해도 ROE(자기자본이익률), 주주배당, 자사주 매입 등 주주가치만 높이면 면죄부를 받곤 했다.
 

그러나 현재 이 주주가치라는 개념은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골고루 이익을 가져다주지 못한다는 면에서 맹렬한 비판을 받고 있다. 그 비판의 목소리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주주가치는 나쁜 행동을 정당화할 수 있는 일종의 면허처럼 사용된다. 부연컨대, 대규모 투자축소, 탐욕적인 임원 보수(인센티브), 높은 레버리지, 이해할 수 없는 기업인수, 회계 분식, 과도한 자사주 매입 및 소각 등이 모두 '주주가치를 위하여'라는 미명하에 자행되고 또한 정당화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본원적으로 주주가치와는 무관하다. 진정한 주주가치란 재무 공학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영업성과에 있다. 따라서 기업의 자본구조를 손대서 착시효과를 높일 수는 있으나, 본질적으로 기업가치를 높일 수는 없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기업의 현금흐름이 지속적으로 창출되는 것이 핵심이다. 나머지 행위들은 중립적이다. 

 

레버리지는 기회와 위험을 동시에 높이며, 자사주 매입은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주식의 소유권을 이동시키는 것이며, 기업인수는 합병 시너지 가치에 대해 지불된 프리미엄을 초과달성할 경우에 한해서만 가치창출이 이뤄지는 것이다. 이점을 직시해야 한다.
 

둘째, 두 번째 비판은 더욱더 의미심장하다. 기업은 단지 주주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해관계자들 모두를 위해 존재하고 경영되어야 한다. 고객, 협력사, 직원들을 짜증나게 하는 회사는 결코 오래 존속할 수 없다. 사회적 목적과 재무적 목적이 상호 일관성을 갖고 나갈 때 기업은 발전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구글의 모회사인 알파벳의 공동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우리는 자본을 보다 적극적으로 배분하고 벤치마크를 상회하는 리턴을 얻기 위해 기업을 재조직했다. 그리고 이제 주주가치는 이제 더 이상 우리의 지배원칙이 아니다."
 

우리 대기업들도 여기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만일 대기업들이 지금처럼 돈만 쌓아 놓고 투자를 주저하고 자금집행을 안하면 결국 경기침체가 올 것이고 이것은 부메랑처럼 그들에게 돌아온다. 법인세 인상, 보다 강화된 재벌 개혁정책과 일자리 창출을 위한 각종 규제들이 만들어져 기업들을 옥죌 것이다. 이제 한국 대기업들은 주주이익에서 눈을 돌려 사회를 봐야 한다. 스스로 변할 것이냐, 아니면 사회로부터 변화 당할 것이냐 그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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