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외상센터, 정부 투자에도 시설‧인력 등 여전히 부족…진료비 삭감‧의료수가 문제 발목잡아

 

/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생명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환자들이 150여명이 있다. 아주대병원 중점외상센터는 100평상으로 만들었는데 한 달 반만에 다 찼다. 30분 전 아주대 병원은 소방방재청에 바이패스를 걸었다. 수용인원이 가득 찼다. 귀순한 북한 병사는 중증외상환자를 수용 못하거나, 환자들이 조치없이 죽는 모습을 보려고 한국에 온 건 아닐 것이다.”


이국종 아주대병원 권역중증외상센터장은 지난 22일 귀순 북한 병사에 대한 2차 브리핑에서 정치권·언론·의료계의 외압과 외상센터의 한계를 토로하며 이 같이 말했다. 2012년 정부 주도로 설립된 권역중증외상센터는 아직도 인력과 시설, 이동수단 등 부족한 인프라 탓에 몸살을 앓고 있다.

중증외상센터는 응급 외상환자들을 위한 치료공간이다. 중증외상센터 의료진들은 교통사고‧추락‧총상 등으로 심각한 외상을 입은 환자들이 즉시 수술받을 수 있도록 돕는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전국 외상환자 예방가능 사망률은 30.5%인 반면, 권역외상센터 예방가능 사망률은 21.9%다.

지난 2012년 5월 ‘중증외상센터 설립을 위한 응급의료법 개정안’은 국회를 통과했다. 당시는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된 석해균 선장을 이 교수가 치료하면서 중증외상센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시기였다. 복지부는 2000억원을 투자해 전국 17개 중증외상센터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복지부 자료에는 지난해 3만2446명 환자가 중증외상센터에서 치료를 받았다고 집계돼 있다. 하지만 현재 법적기준을 통과하고 공식 개소한 가천대길병원, 아주대병원 등 9개 시설에만 전국 3만명 이상 환자가 몰리고 있는 실정이다.

거기다 현재 운영 중인 중증외상센터는 인력과 시설 부족은 물론이고 환자를 이송할 수 있는 헬기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황이다. 이번 귀순 북한 병사 이송도 미 육군 더스트 호프 구급대원들이 블랙호크 헬기가 담당했다. 중증외상센터는 1곳 당 전문의 20명을 둬야한다. 대부분 중증외상센터는 인력 미달이다.

병원으로서는 적자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 또한 문제다. 기본적으로 중증외상 수술은 상대적으로 원가 이하 의료수가가 적용된다. 비용이 많이 들지만 지원되는 의료비 지급은 현저히 낮은 셈이다. 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중증 환자를 진료하는 상급종합병원의 의료수익 순이익률은 0.3% 적자다.

여기에 매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진료비 삭감도 발목을 잡았다. 이로 인해 소위 ‘빅5’라고 불리는 연세세브란스병원, 삼성서울병원 등 서울권 대학병원은 중증외상센터 설립 시도조차 하지 않고 있다.

이 교수는 지난 9월 아주대 교수회 소식지 50호를 통해 “(중증외상 환자) 수술은 비용이 많이 든다. 생명유지장치, 특수 약품 등 수술 후에도 치료가 들어간다. 대형병원은 자본에 비해 수가가 받쳐주지 않아 중증외상 환자를 반기지 않는다”며 “보험심사팀은 삭감될 진료비를 경고했지만 환자의 필수 치료를 줄일 순 없었다”고 토로했다.

한 의료업계 전문가는 “병원에서 중증외상을 담당하는 의료인 처우가 부족하니 누가 지원을 하겠나. 대부분 (중증외상을 입은) 환자들은 응급실을 찾아간다. 응급실도 이를 치료할 전문인력이 부족하다”며 “반복되는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전반적인 지원 체계를 개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계에서도 중증외상센터에 대한 지원을 늘려달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산하 대한병원의사협의회(병의협)은 공식 성명서를 통해 “중증외상센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기조 의료수가 체계와는 다른 규칙이 적용돼야 한다”고 밝혔다.

병의협 관계자는 “전국 권역별 응급외상센터로는 매일 쏟아져 들어오는 환자들을 감당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의사인력과 간호인력은 점점 소진되고 후학의 양성은 기대조차 하기 힘든 상태”라고 말했다. 

한편 귀순 북한 병사 치료를 계기로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올라온 ‘권역외상센터 추가적‧제도적‧환경적‧인력 지원’ 게시물은 곧 청원 20만명 돌파를 앞두고 있다. 24일 오후 6시 현재 18만6849명이 청원에 참여했다. 

 

지난 17일 처음 올라온 이 게시물은 일주일 만에 청원 16만명을 돌파했다. 30일 이내 20만명 이상 동의를 받으면 정부는 공식 답변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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