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능에만 초점 맞춘 광고…정작 “왜 디지털인가"에는 답을 안줘

4차산업혁명으로 대표되는 급변기에 은행이 혁신 주체로서 당당이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를 둘러싼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한쪽에서는 이미 기존 은행들이 모바일뱅킹, 챗봇 등을 접목해 자가 혁신 능력을 입증했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반대편에서는 디지털 DNA가 없는 은행이 기존 틀을 깨는 것은 분명한 한계가 보인다고 반박한다. 그 동안 취재경험을 돌이켜보면 태생적 한계를 지적한 후자에 나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진다.

 

 

물론 은행을 IT기업과 직접 비교하는 것은 무리다. 재화를 직접 생산·판매하는 기업과 신용을 거래하는 은행업은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은행이 업의 속성상 변화를 이끌어 내는 혁신 DNAIT업체에 비해 취약하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디지털 역량을 홍보하는 은행 광고가 단적인 사례다. 발품 팔아 은행 지점을 방문한 사용자가 디지털 은행으로 갈아타기 위해서는 쾌적한 사용자 경험(User Experience)이 관건이다. 자신의 일상이 편리해진다는 확신이 있어야 사용자는 기존 경험을 버리고 사용법 공부가 필요한 디지털로 옮겨간다.

 

하지만 TV를 통해 접하는 은행 광고는 디지털 고객 확보를 위해 만든 것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은행의 비대면 채널을 홍보하는 광고는 음성으로 송금하고 포인트 쌓아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는 서비스도 제공한다는 정보를 담고 있다. 하지만 이미 충분히 익숙하게 사용하는 아날로그 서비스를 포기해야 할 이유를 굳이 찾기는 힘들다.

 

IT업체 광고는 은행 광고와 많이 다르다. 삼성전자는 장모와 아내가 외출해도 냉장고 속 음식 정보가 표시되고 조리법까지 알려줘 장인과 맛있는 점심을 요리할 수 있다고 전한다. 새 냉장고가 있으면 마냥 어려웠던 장인께 점수를 딸 수 있다는 간접 경험과 방법을 알려준다.

 

광고를 본 사용자는 디지털로 무장한 새 냉장고로 교체하고 싶은 이유를 스스로가 명확하게 알수 있다.

 

광고에 자주 등장하는 우리은행 위비송이나 KB국민은행 리브송이 중독성이 강해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기에 좋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삼성전자나 애플이 갤럭시송이나 아이폰송을 만들지 않고 대신 디지털로 경험할 수 있는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을 전달하는 이유를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삼성전자는 신제품인 갤럭시나 패밀리허브가 안 팔리면 수익이 큰 폭으로 하락하는 구조다. 반면 은행은 비대면채널 비중이 아직 낮아 디지털금융 이용이 저조해도 큰 상관은 없다. 이런 상황의 차이가 광고에 은연중에 반영돼 있다 할 수 있다.

 

하지만 세상은 빠르게 바뀌고 있다. ‘디지털 전쟁은 국경도 넘어 승자가 독식하는 무서운 경쟁 구조다. 일부 은행 직원은 디지털 은행이 은행 근원의 대면 경쟁력을 깎아먹는다는 우려도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은행업 디지털 혁신에 대한 근원적인 고민과 무엇이 필요한지 차근차근 돌아봐야 할 때다. 디지털 전환이 어려운 과제라면 역설적으로 소비자에게는 더 쉽게 다가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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