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변동에 손실 위험 상존…원유 조달 다변화 노력

국내 정유 업체들이 국제 유가 상승 속에서 손실을 줄이기 위해 노력중이다. 국내 정유사들은 상대적으로 경제성이 부각된 미국산 원유를 도입하며 다변화를 진행중이다 / 이미지=조현경

이번주 국내 정유 업계 주요 뉴스 가운데 하나는 SK이노베이션이 미국산 원유를 도입하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SK이노베이션과 석유사업 자회사 SK에너지는 미국산 원유인 서부텍사스원유(WTI) 미들랜드 100만배럴을 수입하기로 했다. 이로써 에쓰오일을 제외한 국내 정유 업체들은 모두 미국산 원유를 도입하게 됐다.

 

20세기도 아니고 21세기에 미국산 제품이 국내에 들어오는 것이 주목할만한 소식이 될까 싶지만 정유 업계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사뭇 다르다. 최근 1년새 토종 정유 업체들이 모두 미국산 원유를 도입하게 됐다는 얘기는 국내에 도입되는 원유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동산 원유 만큼 가격경쟁력을 갖추게 됐다는 의미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국내 정유 업체들의 원유 도입 비중은 중동산 원유에 80%가량을 의존했다. 시기별로 편차가 있지만 국내에서 사용되는 석유 화학 제품의 원료는 대부분 중동에서 왔다고 보면 된다. 이어 동남아에서 생산되는 원유가 15% 내외를 차지하고 나머지 5% 남짓이 다른 지역에서 도입된다.

 

국내 원유 도입량의 대다수가 중동산인 이유는 저렴해서다. 중동산 원유의 벤치마크인 두바이유는 미국산 서부텍사스유(WTI), 북해 브랜트유 등 다른 유종에 비해 상대적 낮은 경향을 보인다. 그런데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 결정에 중동산 원유 가격이 상승하면서 미국산 원유와 가격차가 줄어들었다.

 

가장 저렴한 대체재가 있음에도 다른 유종이 거래되는 이유는 운송비용 때문이다. 약간의 가격 차이는 운송비용 등으로 상쇄되기 때문에 미국에 가까운 업체들은 미국 원유를, 유럽 업체들은 브렌트유를 주로 사용한다. 바꿔 말하면 어느 정도 가격 차이에는 가까운 원유를 쓰는 게 경제적이라는 이야기다.

 

유종별 가격 차이가 운송 비용 수준을 벗어날 정도로 급격하게 변동하면 정유 업체에게는 손실위험이 커진다. 실제로 이달초 국제 유가는 두바이유가 WTI를 넘어섰다. 지난 4일 기준으로 국제 유가는 두바이유가 배럴당 51.09달러, WTI49.58달러를 기록했다. 두바이유가 주력인 국내 시장에서는 부담되는 대목이다.

 

정유 업체들은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이미 대응 방법을 마련하고 있다. 숫자에 조금 밝은 사람이라면 헤지(Hedge)라는 단어를 들어봤을 것이다. 헤지의 어원이 울타리를 치다는 의미에서 나온 것처럼 변화가 큰 자산을 고정된 가격으로 묶어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다만 정유 업체들의 원유 수요는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적이기 때문에 선물로 헤지하는 방식은 큰 의미가 없다. 만기가 정해진 선물은 특정 기간에 손실은 줄일 수 있겠지만 계속해서 발생하는 원유 수요를 감당하기는 어렵다. 선물 가격을 도입가격을 결정하는데 활용하긴 하지만 선물 헤지에 의존하지는 않는다는 의미다.

 

국내 정유사들은 장기계약을 통해 유가 변동 속에서 손실을 최소화하고 있다. 간단하게 생각하면 1년 이상의 기간을 정해놓고 일정 물량을 공급받는다고 가정하면 된다. 가격 변동과 물량 확보 양쪽 모두 중요하기 때문이다. 일정하지는 않지만 국내에 들어오는 원유의 70% 가량이 장기계약을 통해 들어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나머지 물량은 그때 그때 가격을 감안해서 가장 경제적인 원유를 도입한다. 국제유가가 변화한다 해도 그 가운데서 가장 경제적인 선택을 통해 손실을 최소화하는 셈이다. SK이노베이션을 비롯해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등이 미국산 원유를 도입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유 업계 관계자는 “지속적으로 원유가 필요한 정유 업체들이 유가 변동에서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도입선 다변화가 필수적​이라며 ​다만 서로 다른 유종들은 특성도 다르기 때문에 유종별 특성에 맞춰 공정을 운영할 수 있는 능력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