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돼 온 코드성 인사…권 회장, 임기 완주 의지 보여

권오준 포스코 회장 / 이미지=조현경 디자이너

권오준 포스코 회장이 일명 '포스코 잔혹사'를 끝낼 것이란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치적 이유나 정권 창출에 대한 보상 인사 등 사유로 포스코 회장을 경질했다. 그러나 평소 정경유착 근절을 주장해온 문재인 정부로서는 입맛에 맞는 코드성 인사를 쉽사리 내려보내기 어려운 실정이다. 권 회장 스스로도 임기 완주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권 회장을 대신할 만한 유력 후보가 보이지 않는 점도 임기 완주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반복되는 포스코 잔혹사

 

포스코는 2000년 9월 정부 지분을 전량 매각하면서 민영화했지만 사실상 공기업이라는 꼬리표가 계속해서 따라 왔다. 정권이 바뀌면 회장이 사임하고 정권 ‘입맛’에 맞는 코드성 인사가 이뤄졌다는 이유다. 여기에는 정부가 사실상 통제권을 갖는 국민연금공단이 지분 10%를 가진 최대주주라는 배경도 있다.

 

이에 포스코는 2004년 이사 선임에 있어서 소액 주주의 권리를 강화하기 위한 집중 투표제를 도입했다. 2006년에는 사외이사들로 꾸려진 최고경영자(CEO) 후보추천위원회가 회장 후보를 결정하고 주주총회와 이사회를 거쳐 최종 선임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포스코는 주요 인사 선임과 관련해 정권의 외풍에 시달리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포스코가 외풍에 시달리는 이유는 ‘주인없는 회사’라는 태생적 한계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역대 포스코 회장들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검찰 수사와 조기 사퇴를 거듭해 왔다. 포스코 회장 가운데 3대 정명식, 6대 이구택 회장을 제외하곤 줄줄이 기소를 면치 못하고 형사처벌을 받았다.

고(故) 박태준 전 회장은 김영삼 정부 출범 직전 24년 6개월간 자리를 지키던 회장직을 내려놓게 된다. 포스코를 창립한 박태준 명예회장은 김영삼 정권이 출범한 1993년 회사기밀비 7300만원을 횡령하고 포항제철 계열사와 협력사 20개 업체로부터 39억7300만원을 받은 특가법 위반 및 횡령 혐의로 검찰 수사 대상에 올랐다. 포항제철 명예회장직도 이때 박탈당했다.

박 명예회장은 ‘3당 합당’ 당시 김영삼 민자당 대표최고위원 밑에서 최고위원직을 맡았으나, 1992년 14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내각제 대통령선거 공약화를 요구하다 김영삼 전 대통령과 갈등을 빚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박 명예회장은 1994년 11월 뇌물수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하지만 조성한 비자금이 발견되지 않자 검찰은 기소중지 처분을 내렸다.

이후 박 전 회장의 핵심 참모 출신인 황경로 2대 회장(1992년 10월∼1993년 3월)이 취임하지만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회장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다. 황 전 회장은 포스코 역대 회장 가운데 가장 단명한 인사로 꼽힌다. 황 전 회장은 거래업체로부터 수차례에 걸쳐 9200만원을 받은 혐의로 1심에서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정명식 3대 회장은 1993년 3월부터 1994년 3월까지 1년간 회장직을 유지했다. 그러나 박 전 회장의 측근이라는 인식 때문에 일찌감치 자리에서 물러난 것으로 알려졌다. 4대 김만제 회장(1994년 3월∼1998년 3월)은 1998년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직후 사임했다. 그는 1994년부터 4년여에 걸쳐 회사기밀비 4억2415만원을 유용한 혐의(업무상 횡령)로 1999년 2월 불구속 기소됐다.

5대 유상부 회장(1998년 3월∼2003년 3월)은 이른바 ‘최규선 게이트’에 연루돼 노무현 정부가 출범하면서 자리에서 물러났다. 6대 이구택 회장(2003년 3월∼2009년 1월)도 이명박 정부 출범 초기인 2008년 검찰이 정기세무조사 무마 청탁설 조사에 나서자 돌연 사퇴했다.

권 회장의 전임인 정준양 7대 회장(2009년 1월∼2014년 3월)은 배임·횡령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은 끝에 2015년 11월 불구속 기소됐다. 검찰은 지난해 11월 부실기업 인수로 회사에 1600억원 상당의 손해를 끼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정준양 전 회장에게 징역 7년을 구형했다. 이와 관련해 재판부는 지난 1월 1심 무죄 판결을 내린 상태다.

◇연임 성공한 권오준, 임기 완주 도전

권 회장은 2014년 포스코 8대 수장 자리에 올랐다. 이후 지난 3월 ‘최순실 게이트’라는 악재 속에서 연임에 성공했다. 임기는 2020년 3월까지다. 현재 권오준 2기 체제를 가동중이다.

업계에서는 권 회장이 포스코 잔혹사를 끝낼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임기를 끝마칠 수 있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권 회장이 구조조정을 통해, 포스코 체질개선에 성공한 점을 높이 사야 한다고 말한다.

포스코 관계자에 따르면, 권 회장 역시 임기 완주 의지를 강하게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권 회장은 지난 2월 초 임원인사에서 조직개편을 단행해 COO(Chief Operating Officer, 철강부문장) 체제를 도입했다. 기존 철강부문의 운영은 COO가 책임 경영토록 하고, 회장인 자신은 비철강 부문, 신사업 등 미래성장 동력을 챙기며 그룹 매출을 끌어올리는데 집중한다는 복안이다.

COO는 단순히 철강부문장 역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 차기 회장 후보로서 능력을 검증받는 자리다. 이는 더 이상 정치권 낙하산을 막고 자체적인 후계자 육성 시스템을 마련해 직접 경영자 훈련에 나서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란 해석이다.

권 회장은 지난 3월 30일 신 중기전략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정경유착 근절, 경영후계자 육성 등을 포함한 경영 쇄신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주주가치를 중시하는 기업, 이해관계자들로부터 신뢰받는 글로벌 모범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아울러 권 회장을 대신할 만한 인물이 없다는 점도 권 회장 연임 완주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과거 포스코 회장이 교체되던 당시에는 기존 회장을 대신할 만한 인물이 여럿 거론됐다. 그러나 최근엔 권 회장외에 거론되는 유력한 후보가 없는 상황이다. 한 철강업계 관계자는 “최순실 게이트 등 악재에도 불구, 지난 임원인사에서 권 회장이 연임에 성공한 것도 권 회장을 대체할 만한 인물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평소 적폐 청산을 강조해온 문재인 정부로서도 권 회장에게 큰 압박을 가하기 힘들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정권 코드에 맞는 낙하산 인사를 파견할 경우, 그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다만 권 회장의 앞날이 마냥 순탄하진 않을 전망이다. 새 정부의 국정농단 재수사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최순실 사태와 관련한 권 회장에 대한 의혹 수사 역시 고강도로 이뤄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지난 1분기에도 포스코는 권 회장이 이끌고 있는 비철강 부문에서 견조한 실적을 기록했다”며 “최근 포스코 성장세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권 회장을 새 정권에서 쉽게 내쫓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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