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항 재고 할인 소문에 문의 쇄도…집단소송 원고들 “이러니 나쁜 버릇 못 고쳐” 반발

평택항에 방치된 아우디, 폴크스바겐 재고차량이 염가에 판매될 수 있다는 소식이 흘러나오면서, 소비자 여론이 불매와 구매적기로 나뉘고 있다. 사진은 폴크스바겐 집단 소송을 대리하고 있는 하종선 변호사. / 그래픽=시사저널e.

아우디·폴크스바겐 인증취소 차량에 대한 ‘떨이 판매’ 소식이 소비자 간 내전(內戰) 양상으로 번져가고 있다. 평택항에 묶인 아우디와 폴크스바겐 인증취소 차량 2만여대가 40% 가까운 할인액으로 염가(廉價) 판매될 수 있다는 소식이 흘러나오면서, “차량을 싸게 구입할 절호의 기회”라는 여론과 “불법을 저지른 차를 할인한다고 사면 공범이 되는 것”이라는 의견이 맞부딪히고 있다.

◇ “견적 좀 뽑아주세요”…재고 차량 구입문의 쇄도

15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평택항에 위치한 PDI(Pre Delivery Inspection) 센터에는 인증서류 조작으로 판매길이 막힌 아우디·폴크스바겐 차량 2만여대가 6개월 넘게 방치돼 있다.

이에 업계에서는 평택한 재고차량 모두 이른 바 ‘떨이 판매’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평택항 대기 차량이 오랜 기간 풍파에 노출된 탓에, 40% 가까운 할인액으로 염가(廉價) 판매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는 평택항 대기 차량 판매 절차에 대해 확정된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벌써부터 아우디·폴크스바겐 판매 대리점에는 재고차량을 사겠다는 문의가 줄을 잇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폴크스바겐 대리점 앞에 세워진 판매대기 차량들. 사진은 기사내용과 관련 없음. / 사진=뉴스1
15일 서울 강남구 한 폴크스바겐 매장 딜러는 “공식적으로 문의가 들어온 것은 없지만 지인을 통해서만 5건 정도 (재고 차량 판매) 할인율을 물어왔다”며 “본사나 딜러사 모두 관련 지침을 내린 게 없어 답을 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서울 서초구 한 아우디 매장 딜러도 “인기 차종인 A6의 경우 평택항 재고차량 가격을 묻는 문의만 10건 가까이 있었다”며 “렌터카 업체 대표가 문의를 해온 적도 있다. 아직 루머 수준이라고 답을 해줘도 (할인 소식이) 나오면 바로 전화 달라고 아우성이다”라고 말했다.

현재 평택항에 방치된 아우디 A4·6·8나 폴크스바겐 골프, 티구안 같은 경우 대표적인 수입 인기 차종이다. 40%에 가까운 할인율이 적용될 경우 골프는 쌍용차 티볼리 가격으로, A6는 그랜저 가격으로 살 수 있는 셈이다. 이에 소비자들이 너도 나도 재고 차량 선점을 위해 동분서주 하고 있다.

폴크스바겐 티구안 재고구매를 계획하고 있다는 강승윤(33)씨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싸서 나쁠 게 없다. 중대 결함이 있지 않다면 무조건 살 생각”이라며 “불법을 저지른 업체였다고 해서 자동차 구매를 망설이는 태도는 비합리적이다. 그런 기준이라면 (불법 논란이 일었던) 현대차를 비롯한 국산차 브랜드 역시 불매 운동을 벌였어야 맞다”고 주장했다.

◇ “싸다고 사면 나쁜 버릇 못 고쳐”…집단소송 원고들 반발

아우디·폴크스바겐을 상대로 집단소송을 벌이고 있는 차주 5000여명은 이 같은 ‘떨이 돌풍’에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아우디·폴크스바겐이 배출가스 조작에 대한 명확한 보상책을 발표하지 않은 상황에서 판매량이 늘어난다면, 국내 소비자들이 이를 방관하는 듯한 모양새가 연출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폴크스바겐은 배출가스 스캔들이 불거진 2015년 9월 직후 전 세계 판매량이 하락한 바 있다. 다만 2개월 뒤 국내 판매량은 오히려 급상승했다. 국내 판매량이 10월 70% 가까이 줄자, 폴크스바겐이 11월 60개월 무이자 할부 판매와 최고 1800만원에 가까운 ‘재고 떨이 할인’을 내건 결과다.

국내 폴크스바겐 집단소송 대표원고인 임예원씨는 “할인을 한다고 무조건 사고 보는 소비자 인식이 아쉽고 화가 난다. 배출가스 조작은 대한민국 환경에 중대한 손실을 가져온 사건”이라며 “그런 면에서 한국 소비자 반응이 미국과 너무 다르다. 환경에 대한 소비자 인식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소비자들도 환경과 구매에 관한 인식을 제고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아우디·폴크스바겐이 리콜절차를 완료하고 적법한 보상안을 마련할 때까지 ‘불매 운동’을 벌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현재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는 문제부품을 교체하거나 수리해주는 방식의 리콜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소비자들이 원했던 배출가스 작 대상차량 교체 및 보상은 거부했다.

디젤차량에 배출가스량 조작장치를 부착해 배출가스량을 임의조작했다는 사실을 국내에서는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또 서비스차원에서 100만 원짜리 쿠폰을 제공하고 있지만, 미국과 캐나다 소비자에게 400만원 이상 배상금을 지불한 것과 대비된다.

국내 폴크스바겐 집단소송을 대리하고 있는 법무법인 바른의 하종선 변호사는 “폴크스바겐이 북미와 달리 국내 소비자들에게 차별적 보상안을 내놓고 있다. 폴크스바겐이 당당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나라는 ‘그래도 되는 나라’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할인을 해준다고 무턱대고 차를 구매한다면 이는 곧 폴크스바겐이 저지른 잘못을 묵인해주는 것과 같다”며 “문제가 된 차량의 차주들이 폴크스바겐을 상대로 법적 투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판매량이 오히려 늘어난다면, (집단소송 원고들은)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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