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연비 조작 사건 본격 수사…‘영업통 사장’의 위기대처 능력 도마에

이달 1일부로 부임한 허성중 한국닛산 신임 사장. / 사진=한국닛산

검찰이 지난 13일 닛산 한국법인의 연비 조작 의혹 수사에 본격 착수했다. 이 같은 사실이 언론을 통해 공개된 뒤, 한국닛산 차량을 구매하려던 소비자들이 차량 리콜 및 중고차 가격 하락 등을 우려해 차량구매를 망설이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닛산은 연비조작 의혹이 불거진 지난달, 부랴부랴 한국법인 설립 후 최초로 한국인 사장을 선임하며 정부와의 껄끄러운 관계 개선에 나섰다. 그러나 검찰 수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뒤 여론이 급격히 악화되자 마땅한 대응책조차 내놓지 못하고 있다.

닛산은 신임 사장이 된 허성중씨가 이 같은 위기상황을 풀 수 있는 적임자라는 입장이다. 다만 수입차업계에서는 닛산이 허 사장을 ‘방패막이로 활용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노련한 위기대처 능력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주로 제품 및 판매 영역에서 활동해온 허 사장을 앉힌 게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분석도 나온다.

◇ ‘제2 폴크스바겐’ 우려…한국닛산 판매 붕괴 조짐

“폴크스바겐이랑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거짓말 하는 자동차사에 이제 치가 떨린다.”

14일 서울 강남구 한국닛산 딜러전시장 앞에서 만난 한민구(54·자영업)씨는 “닛산 차량을 구매하려 했는데 연비조작 관련 기사를 보고 마음을 돌렸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앞서 폴크스바겐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티구안을 몰았다. 그러나 2015년 10월 티구안 배출가스 조작 사실이 드러난 탓에 닛산 차량 구매를 고려하던 중 다시 데자뷔(deja vu) 같은 일이 발생한 것이다.

서울중앙지검은 13일 국토교통부가 연비시험 성적서를 조작한 혐의(자동차관리법 위반)로 한국닛산을 고발한 사건을 형사5부(부장검사 최기식)에 배당했다고 밝혔다.

한국닛산 측은 2014년 2월 닛산의 대표적인 세단인 2014년형 인피티니 Q50 차량의 실제 연비가 ℓ당 14.6㎞로 나왔음에도 시험 결과를 ℓ당 15.1㎞로 변조한 뒤 국토부에 연비를 신고한 혐의를 받고 있다.

형사5부는 ‘자동차 저승사자’로 불린다. 지난해 폴크스바겐 배출가스 조작사건을 수사해 한국 법인과 전·현직 임직원을 재판에 넘겼다. 형사5부가 난제로 꼽히던 독일 본사 임원까지 불러 조사하자 수입차업계에서는 “형사5부에 걸리면 쓸개까지 내놔야 한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형사5부가 한국닛산을 집중 수사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일선 한국닛산 딜러 고민도 깊어졌다. 당장 연비조작 의혹에 휩싸이지 않은 차량까지 판매에 이상신호가 감지되고 있는 탓이다.

경기도 한 공식 딜러사에서 근무하는 김환영(가명)씨는 “가뜩이나 경기도 좋지 않은데 이런 악재(검찰 조사)까지 겹치니 영업하기 더 어려워졌다”며 “계약취소까지는 이어지지 않았지만, 구매를 보류하겠다는 고객들이 한 둘이 아니다. 고객들이 폴크스바겐처럼 중고차 가격이 떨어질 것은 우려하는 통에 애를 먹고 있다”고 토로했다.

◇ 한국인 CEO 카드 빼든 닛산…위기상황 대처능력 ‘물음표’
 

허성중(사진) 사장은 주로 세일즈 관련 업무에서 경력을 쌓은 탓에, 수입차업계 일각에서는 허 사장이 검찰 수사와 같은 위기상황 대처 능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사진=한국닛산
한국닛산의 검찰 수사는 예고돼 왔다. 지난해 배출가스 및 인증서류 조작 혐의로 환경부로부터 두 차례나 과징금 부과와 판매 중지 명령을 받은 탓이다.

고심 끝에 닛산이 빼든 카드는 인사(人事)였다. 닛산이 지난달 20일 2004년 한국법인 설립 후 처음으로 한국인 사장을 선임했다. 기울어져 가는 한국닛산을 살릴 적임자로 허성중 닛산 필리핀 마케팅·영업·딜러 개발부문 부사장을 지목한 것이다.

허 사장은 2세대 수입차CEO로 불린다. 1974년생으로 국내 수입차 한국인 CEO 중 가장 젊다. 허 사장은 2002년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의 가격&제품 전략팀에서 수입차 관련 업무를 시작했다. 이후 2005년 한국닛산으로 옮겨 영업교육과 딜러 개발, 세일즈 운영, 마케팅 등의 업무를 거쳤다. 2011년부터 호주 닛산과 필리핀 닛산에서 판매와 딜러 관련 업무 등을 맡았다.

허 사장이 사실상 한 법인의 CEO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인 셈이다. 수입차업계에서는 주로 제품과 영업관련 업무를 수행해온 허 사장이, 이 같은 위기 상황에 투입된 것이 악수(惡手)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국내 수입차사 홍보담당 간부는 “검찰 수사를 받게 된 상황에서 CEO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제한적이다. 인맥을 활용해 대관업무를 수행하거나 사내 분위기를 수습하는 게 중요해진다”며 “그러나 허성중 사장은 국내 경험도 미천하고 위기상황을 겪어본 적도 없다. 최적의 인사라고 볼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허 사장이 부임한다는 소식이 나왔을 때부터 업계에서는 어린 CEO가 방패막이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며 “닛산입장에서는 기울어져 가는 한국닛산에 본사 임원을 앉히기도 껄끄러웠을 것이다. 허 사장이 일본인이었어도 이 같은 상황에 CEO로 보낼 수 있었을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한국닛산은 지난해 판매량이 전년 대비 0.1%가량 감소했다. 일본 브랜드인 도요타(18.4%)나 혼다(47.1%) 판매가 급증한 것과 대조된다. 검찰수사로 여론까지 악화된 상황인지라 판매량이 더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한편, 닛산은 허 사장 선임 배경에 검찰 수사는 따로 고려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영업 경험이 풍부한 허 사장이 하락한 한국닛산 판매량을 되살릴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닛산 한 관계자는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해당국가 CEO로 가기 위해서는 수많은 검증단계가 있다. 단지 해당국가 출신이라는 점으로 CEO가 될 수는 없다”며 “허성중 사장도 충분한 능력이 있기에 한국닛산 사장이 된 것이다. 위기를 돌파하는 게 쉽지는 않겠지만 분명 해내리라고 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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