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스티, SK하이닉스에 장비 공급 시도했지만 소송전으로 지연
한미반도체-한화세미텍 TC 본더 소송전도 진흙탕 싸움으로

SK하이닉스 이천캠퍼스 전경 / 사진=SK하이닉스
SK하이닉스 이천캠퍼스 전경 / 사진=SK하이닉스

[시사저널e=고명훈 기자] 메모리업계가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중심으로 캐파 증설 투자를 확대하는 가운데, HBM 제조 핵심 공정 기술을 둘러싼 반도체 장비사들의 특허 분쟁도 확전되는 양상이다.

특히 패키징·후공정 분야에서 티어1 진입을 위한 경쟁이 확대되며 장비의 세부적인 구조 차이가 수주를 좌우하는 상황이 되면서, 해당 기술의 권리 범위를 둘러싼 다툼도 잦아지는 모습이다. 장비사 간 소송 결과에 따라 SK하이닉스 등 HBM 제조사의 주요 장비 공급체계에도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SK하이닉스와 고압 어닐링 장비 평가한 예스티···HPSP와 소송으로 지연

11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고압 어닐링(열처리) 장비(HPA)를 둘러싼 HPSP와 예스티의 소송전이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채 특허법원에 계류 중이다.

고압 어닐링 장비는 반도체 미세 공정에서 웨이퍼 계면의 결함을 줄이고 전기적 특성을 개선해 반도체 성능을 향상하는 데 필수적인 장비로 분류된다. D램 다이 여러개를 고단으로 쌓아 올리는 HBM 제조 공정에서도 신뢰성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해당 장비에선 그간 HPSP가 독점적 지위를 유지해왔으며, 예스티가 후발주자로 나선 구도다. 지난 2023년 8월 HPSP가 예스티를 대상으로 먼저 특허침해 소송을 제기하며 분쟁이 시작됐다. 예스티가 자사 장비의 반도체 기판 처리용 챔버 개폐장치의 특허를 침해했단 주장이다. 예스티도 그해 10월 HPSP의 특허무효를 주장하며 즉각 대응에 나섰다.

두 회사의 소송전은 2024년 10월 특허심판원과 법원이 HPSP의 손을 들어주며 사실상 선두기업이 승기를 잡는듯했지만, 올해 4월 예스티가 제기한 ‘소극적 권리범위확인심판’ 두 건에서 예스티의 잠금장치 구조가 HPSP의 특허와 다르다는 판결이 나오며 상황이 역전됐다.

최근엔 예스티가 청구한 무효심판 3건 중 고압 열처리 장치에 대한 1건이 기각되면서 HPSP의 해당 장비에 대한 특허 정정이 인정되기도 했다. 다만, 무효심판 과정에서 HPSP가 해당 특허를 3차례 정정하면서 권리범위가 축소됐다.

HPSP는 항소와 더불어 추가 침해소송을 제기했으며, 소송은 현재 특허법원 단계로 넘어가 진행 중이다.

HPSP 관계자는 “특허법원에 항소해 우리의 주장과 판단이 인용돼 심결이 취소되도록 노력하겠다”며, “권리범위확인심판 심결 결과에 상관없이 현재 계류 중인 특허침해소송에서 지난 무효심판에서 유효하다고 인정받은 특허를 근거로 상대방의 특허침해를 입증하는 데 만전을 기해 글로벌 고압어닐링장비 분야에서의 독보적인 지위를 더욱 굳건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예스티는 지난 2월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세미콘 코리아 2025'에 전시부스를 꾸리고 고압 어닐링 장비를 포함한 장비 라인업을 소개했다. / 사진=고명훈 기자
예스티는 지난 2월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세미콘 코리아 2025'에 전시부스를 꾸리고 고압 어닐링 장비를 포함한 장비 라인업을 소개했다. / 사진=고명훈 기자

예스티는 앞서 지난 2022년부터 SK하이닉스와 고압 수소 어닐링 장비의 상용화를 전제로 성능 평가를 진행해왔다. 이후 이번 소송을 마무리하는 대로 본격 양산공급을 준비 중이다. 다만, 소송전이 계속 지연될 시 장비 공급 시기도 늦어질 전망이다.

예스티 관계자는 “고압 어닐링 장비 개발 초기부터 예스티의 고압 기술력을 바탕으로 장비를 개발하고 HPSP의 특허에 대해선 회피 설계를 통해 특허 침해소지를 사전에 차단했다”며, “HPSP는 예스티의 잠금장치 구조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도 없는 상태에서 무작정 시장 진입을 막기 위해 특허침해소송을 제기했으며, 근거도 없는 특허침해소송으로 인해 예스티의 시장 진입이 1년 이상 지연됐다. 이번에 HPSP 구조와 다르다는 판정을 받은 만큼 시장 진입 초읽기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미-한화, ‘쌍방 고소’ 돌입···SK하이닉스 TC 본더 이원화 정책 차질 우려

한미반도체와 한화세미텍은 HBM 제조용 TC 본더에서 소송전을 진행 중이다. 지난해 12월 한미반도체가 한화세미텍을 대상으로 TC 본더의 핵심 구조 및 구현 특허를 침해했다며 먼저 제소했고, 지난달 한화세미텍이 맞소를 제기하며 분쟁이 고조되는 분위기다.

두 회사는 글로벌 HBM 시장 선두업체인 SK하이닉스를 TC 본더 주요 거래선으로 둔 장비업체다. TC 본더는 D램을 위로 쌓아 올릴 때 열과 압착을 통해 다이와 다이의 접합을 도와주는 장비로, 온도와 압력, 정렬 및 위치 등을 정밀한 제어하는 기술이 핵심이다. 해당 장비에선 그간 한미반도체가 사실상 독점 공급사 지위를 이어오다 올해부턴 한화세미텍이 SK하이닉스로부터 첫 수주에 성공하면서 805억원 규모의 장비 공급 계약을 진행했다.

다만, 공급 계약 당시 한화세미텍이 수주 규모에 준하는 803억원 상당의 토지와 건물을 SK하이닉스에 담보로 제공했단 사실이 전해지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SK하이닉스가 추후 있을지 모르는 소송에 의한 위험 부담을 줄이고 계약 이행을 보증받기 위해 한화세미텍측에 이같은 담보 설정을 직접 요구한 것으로 추정된다. 담보 설정액은 이후 건물 완공으로 부동산 가치가 상승해 1000억원 수준에 이른 것으로 파악된다.

한화세미텍의 TC본더 ‘SFM5-Expert’  / 사진=한화세미텍
한화세미텍의 TC본더 ‘SFM5-Expert’  / 사진=한화세미텍

한미반도체는 한화세미텍의 TC 본더 헤드 구조가 자사 장비와 거의 일치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지난 2021년 한미반도체에서 한화세미텍(당시 사명은 한화정밀기계)으로 이직한 대리급 직원이 장비의 핵심 설계를 유출했단 주장이다. 한미반도체는 실제 작년 해당 직원을 대상으로 청구한 부정경쟁행위금지 소송에서 승소하고, 재판부로부터 회사의 기술정보를 사용, 공개하는 행위를 금지하도록 판결을 받은 바 있다.

한화세미텍은 해당 직원에 대해 당시 4년차 사원으로 중요 정보를 취급했을 가능성이 작다며, 이같은 주장을 부인하는 상황이다.

한화세미텍 관계자는 “지금까지 관련 기술을 외부에 공개한 적도 없는데 어떻게 정보를 빼내서 알게 된 건지 이 과정에도 불법적인 요소 있을 것으로 의심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한화세미텍은 지난달 한미반도체의 HBM3E(5세대)용 TC 본더 일부 구성 부품이 자사 특허를 침해했다며 역고소에 나섰다. 한미반도체가 처음 특허침해소송을 제기한 지 10개월 만이다. 앞서 지난 4월엔 미디어에 출연해 경쟁사를 언급한 한미반도체 임원을 상대로 허위사실 유포를 중단하라며 내용증명을 보낸 일도 있었다.

내용증명 당시 한화세미텍의 법률대리인은 법무법인 태평양이, 최근 특허침해에 대한 고소는 법무법인 김앤장이 맡고 있다. 한미반도체의 법률대리인은 법무법인 세종으로, 회사는 이들을 통해 과거 삼성전자와의 특허 소송에도 승소한 이력이 있다.

한미반도체 관계자는 “성숙 산업에선 기술을 복사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어느 정도 용인되는 부분도 있다고 하지만, HBM용 TC 본더는 나온지 얼마 안 된 장치로, 적은 인원으로 단기간에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SK하이닉스는 공급망 이원화 정책의 일환으로 한미반도체 외 한화세미텍과 TC 본더 개발을 공동으로 추진해왔다. 한미반도체의 TC 본더도 과거 SK하이닉스와 공동으로 개발한 장비다. SK하이닉스는 TC 본더 공급업체를 늘려 공급망 안정화와 비용절감 등을 목표로 하고 있다.

두 장비사의 이번 특허 맞소송 결과에 따라 SK하이닉스의 TC 본더 공급망 이원화 정책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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