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업계, ‘해외우려기업’ 범위 확대 여부에 촉각
한중 합작법인 청산·투자 지연·지분 조정 이어질 듯
[시사저널e=정용석 기자] 중국 배터리 소재 기업과 합작법인을 설립한 국내 기업들이 미·중 갈등과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의 영향으로 불확실성에 직면하고 있다. 일부 기업들은 투자를 지속하는 반면, 합작법인 청산이나 지분 조정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어 시장의 관심이 집중된다.
◇ 포스코홀딩스, CNGR과 합작법인 청산 결정···투자 재조정
12일 업계에 따르면 포스코홀딩스는 전날 중국 CNGR과의 합작법인 ‘포스코씨앤지알니켈솔루션’을 청산하기로 결정했다. 해당 법인은 포스코홀딩스와 CNGR이 6:4 지분 비율로 출자해 지난해 설립됐다. 2026년까지 연산 5만톤(t) 규모의 고순도 니켈 생산을 목표로 했다.
하지만 전기차 시장 둔화와 배터리 수요 감소가 지속되면서 사업 재조정이 불가피해졌다.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이 예상보다 장기화하면서 수직계열화에 따른 장기적 이점보다 당장의 수익성 확보가 중요해지면서다.
포스코홀딩스는 전구체 생산은 지속하되, 국내 니켈 생산 계획은 철회하는 방향으로 조정하고 있다. 전구체는 배터리 핵심 소재인 양극재의 중간 원료다.
포스코홀딩스 관계자는 “이차전지 소재 사업의 경우 리밸런싱을 통해 사업의 구조를 수익성 중심으로 전환한다는 기조 하에 사업을 철수하기로 결정했다”면서 “광양과 인도네시아 등 기 투자한 니켈 사업 안정화 및 경쟁력 강화에 집중하고 향후 시장 상황 등을 고려해 추가 사업 계획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했다.
◇ 더 거세진 탈중국 분위기···中, 한국 투자 전략 변화
미국 IRA가 본격 시행되면서 그간 중국 배터리 소재 기업들은 FEOC(해외 우려 기업) 지정 리스크를 회피하기 위해 한국을 우회 생산기지로 삼았다. CNGR, 화유코발트, GEM 등 중국 전구체 기업들이 한국 배터리 기업과 합작법인을 설립하며 국내 시장에서 입지를 확대해왔다.
국내 배터리 업계도 전구체 국산화를 추진하면서도 중국 기업과의 협력을 병행하는 ‘투 트랙’ 전략을 선호했다. 배터리 산업의 필수 원료인 니켈·코발트·망간 등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중국 기업의 가격 경쟁력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CNGR 역시 원료 공급망을 인도네시아 등 FEOC 비지정 국가로 확대하면서 한국 배터리 기업들과의 협력 지속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그러나 최근 분위기가 달라졌다. 지속적인 전기차 시장 둔화와 트럼프 행정부 출범 으로 미국의 대중국 규제가 강화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화유코발트는 포스코퓨처엠과의 포항 니켈·전구체 공장 투자를 백지화했고, LG화학과의 새만금 투자도 연기됐다.
거린메이(GEM) 역시 SK온, 에코프로와의 새만금 전구체 공장 투자가 지연되고 있다. 당초 GEM은 지난해부터 연 5만t의 전구체를 양산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전구체 사업을 지속 추진하는 CNGR 역시 속도조절에 나섰다. 회사는 지난달 포스코퓨처엠과 추진한 전구체 합작법인 씨앤피신소재테크놀로지의 지분 취득일을 지난달 31일에서 내년 1월 31일로 1년 연기했다.
◇ 합작법인 구조조정 가능성 확대
전문가들도 IRA 세부요건과 FEOC 정의가 더욱 까다로워질 것이란 분석을 내놓고 있다.
지난달 17일 열린 ‘트럼프 2.0 배터리 정책 대응 세미나’에서 구자민 커빙턴 앤 벌링 변호사는 ”FEOC 규제의 기준이 더욱 엄격해질 수 있어 한·중 합작법인을 운영하는 국내 배터리 기업들에는 리스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미국이 FEOC 임계점을 낮추거나 입증책임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한·중 합작법인의 리스크가 확대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구 변호사는 “현재는 FEOC 지정이 되지 않더라도 향후 규정 변경으로 인해 합작법인이 FEOC로 간주될 가능성이 있다”며 ”중국 기업과의 계약 시 법률 변경에 따른 조항을 포함하고, 지분 매각 또는 인수 옵션을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중국과의 협력을 유지하면서도 FEOC 리스크를 최소화하려는 국내 배터리 기업들의 움직임이 향후 배터리 산업의 중요한 변수가 될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향후 FEOC 규제 강화 및 미·중 갈등 심화에 따라 합작법인의 구조조정이 더욱 가속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이미 포스코홀딩스가 CNGR과의 합작법인을 청산한 것처럼 다른 기업들도 지분 조정 또는 투자 축소를 검토할 수 있다”면서 “CNGR과 같이 글로벌 규제 상황을 살펴보면서 일부 사업은 향후 영향력을 더욱 확대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조정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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