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부모의 일·가정 양립 환경 조성 시급”
“출산 지원금 정책, 저출산 해결 한계 있을 것”
[시사저널e=한다원 기자] 대한민국이 위기를 맞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우리나라 출산율은 0.65명까지 감소했다. 이대로 가면 2750년에는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세계지도에서 지워질 것이란 전망도 있다.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 나라 대한민국에서 다시 우렁찬 아이들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100명의 입을 통해 대한민국의 미래를 되살릴 방법을 들어본다. [편집자 주]
지난해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0.72명이었다. 올해 합계출산율은 0.6명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 정부는 저출산, 고령화 대응 방안 찾기에 고심하고 있다.
정재훈 서울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려면 출산 자체에 초점을 맞춘 정책보다 ‘부모의 일·가정 양립’ 조성이 시급하다고 했다.
저출산 위기를 해결하려면 ‘부모의 역할을 이분화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다. 현재 정부 정책은 결혼·출산을 망설이는 미혼 청년, MZ세대를 설득하기엔 아쉽단 지적이다.
Q. ‘저출산’이 사회적 이슈가 된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왜 극단적인 저출산·저출생 현상이 생겼는지에 대한 국가적, 사회적, 개인적 차원에서의 대책이 없기 때문이다. 산업화, 민주화란 성과를 거둔 우리나라에서 저출산은 곧 국가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 현상으로 비춰지고 있다. ‘우리가 노력해서 잘 살게 됐고, 민주화까지 이뤘는데 저출산 하나 해결 못하나’란 시각이 생긴 것이다. 이란 관점에서 저출산을 바라보다보니, 정부도 ‘아이를 낳으면 1억원 주겠다’는 식의 출산 장려 정책만 내놓을 수밖에 없다.”
Q. 부모님 세대와 지금의 가구 세대원은 큰 차이가 있는데, 생애주기 변화도 저출산과 관련있나
“과거부터 거론되는 ‘때가 되면 결혼하고 임신, 출산’하는 개념, 즉 자연스러운 생애주기는 사라졌다. 그러나 사회적 가치와 가족 관념은 ‘결혼→출산’을 당연시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청년세대가 갖는 다양한 삶의 형태, 동거와 생활공동체 그리고 비혼 등 다양한 욕구가 외면되고 있다. 법률혼으로 결혼을 망설이는 상황에서 청년에겐 선택지가 사라지는 셈이다. 궁극적으로 법률혼을 하더라도 청년들이 ‘자연스러운 생애주기’란 틀에서 벗어나 다양한 삶의 형태를 시도해 볼 수 있는 사회적인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
Q. 생활 수준, 삶의 질이 향상됐음에도 2030세대서 저출산 현상이 이뤄지는 이유는
“물리적 생활 조건이 좋아져도 주관적 삶의 만족도가 낮으면 결혼하고 아이 낳는 삶을 생각하기 어렵다. 특히 여성의 경우 비혼을 선택하는 순간 일명 시월드와 독박육아, 경력단절로 상징되는 가부장적 관계에 들어가지 않고 자신만의 삶을 개척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 이런 상황에서 2030세대는 결혼을 생각하기 어려워진다.”
Q. 유례없는 저출산, 90년대생이 저출산 문제 해결의 마지막 희망이라는 시선이 있는데
“이미 출산율 반등 골든타임은 지났다고 본다. 개인적으로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는 다양하다고 보는데, 출산 주체로서 여성의 경험을 존중하지 않고 출산 장려 정책으로서 현금, 경제적 요인 등 물질적 지원 확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저출산 현상의 반등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통상 저출산 문제를 고려하지 않는, 즉 아이를 낳는 국가는 성평등, 다양한 가족 인정, 다문화 수용, 돌봄에 대한 투자 등이 잘 이뤄지고 있다고 평가한다. 결국 남녀가 함께 키우지 않을 때, 다양한 삶의 형태를 수용하는 수준이 낮을 때, 양육지원에 대한 국가지원 수준이 낮을 때, 사회적 돌봄 인프라 구축 수준이 낮을 때 저출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90년대생이 아이를 많이 낳아야 한다’는 접근은 이해되지 않는다.”
Q. 2030세대의 저출산 해결 방안은
“영국의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는 가족관계의 민주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전통적 복지국가에서 전제하는 성별역할 분리 규범, 즉 남성은 가장이자 주소득자, 여성은 전업주부로서 역할이 지속된다면 복지국가 개혁은 불가능하단 것이다. 가족은 사회의 가장 기본적 단위다. 기본 단위로서 가족이 변하지 않는 한 사회도 변할 수 없다. 가족관계의 민주화를 통해 가부장적 가족관계를 해체하고 아빠와 엄마가 함께 일하고 함께 돌보는 사회 인식 형성이 필요하다.”
Q. 우리나라는 저출산 대안으로 ‘지원금’에 초점을 두는 분위기인데
“한국에서 아이를 낳지 못하는 이유로 ‘비용 부담’이 많이 거론된다. 이는 기본적으로 아이를 낳고, 먹이고, 재우며 학교 보내는 비용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경쟁사회 체제에서 다른집 아이에 비해 기죽지 않게 키우기 위한 비용, 학벌 서열의 윗부분을 차지하기 위한 사교육 비용을 뜻한다. 이를 압박 비용이라고 한다.
국가가 어느 정도 수준까지 현금을 지급해야 부모의 압박 비용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출산 지원금은 저출산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한계가 있을 것이고, 저출산 반등을 가져오기 어렵다.”
Q. 해외 어떤 사례를 적용하면 우리나라 저출산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서유럽에선 의학 발달, 소득 수준 향상, 여성 사회 진출 확대가 일어났을 때 저출산 현상이 나타났었다. 직장이냐 가정이냐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섰던 여성들이 출산 대신 경력을 선택했다. 사회적 교육·돌봄체계 구축이 미진했기 때문인데 전통적 복지국가들은 영유아기에서 초등기에 이르는 사회적 교육·돌봄체계를 확대하고 여성 고용률이 60% 내외에 도달하면서 자연스럽게 아이 울음 소리가 커지는 사회로 바뀌어 가고 있다.
독일은 다른 유럽 국가보다도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는 인식이 강했다. 1970년 초부터 저출산 현상이 이어지면서 독일은 엄마 중심 육아휴직과 아동수당, 저소득층 자녀 교육비용 지원 등 현금 급여 중심으로 대응했다. 2007년부터는 아빠의 육아휴직을 강조하고, 2009년엔 초등생 오후 돌봄·교육 융합서비스를 제공하는 전일제학교 확대 프로젝트를 실시, 2013년엔 1~2세 유아를 대상으로 유치원 자리를 보장하고 사회적 돌봄 체계를 확대하면서 출산율은 반등하기 시작했다.”
Q. ‘저출산=국가적 위기’라고 보는데, 어떤 점이 해결돼야 할지
“단기적으론 부모의 일·가정양립이 실현돼야 한다. 임신·출산에 대한 지원, 사회적 돌봄체계 확대에도 불구하고 출산율과 출생률은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있다. 아직까지 부모의 일·가정양립을 가능하게 할 수준까지 제도 확대가 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정부 정책 효과가 없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가족친화경영이 자리 잡지 못했고 초등돌봄 절벽 또한 존재한다.
장기적으론 대한민국 사회 대개조의 희망과 비전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일·생활 균형이 어렵다. 언제 일자리를 잃을지 모르는 불안감에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한다’는 생각에 끊임없이 일에 몰두한다.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도 비용을 감당하다 보면 내 노후는 어떻게 될지 불안감에 시달린다. 아이가 태어난 순간부터 독박육아와 경력단절에 대한 불안, 맞벌이 가정임에도 남자라는 이유로 가장으로서 부양 부담을 가져야 한다. 내 인생도 중요한데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을 때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많다. 돈도 삶에도 만족하지 못하는 박탈 상태가 이어지는 사회 구조 개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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