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사회진출 늘면서 포기해야 할 부분 많아”
“가족돌봄·휴직자 결원 보충 등 법으로 강제해야”
[시사저널e=고명훈 기자] 대한민국이 위기를 맞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우리나라 출산율은 0.66명까지 감소했다. 이대로 가면 2750년에는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세계지도에서 지워질 것이란 전망도 있다.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 나라 대한민국에서 다시 우렁찬 아이들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100명의 입을 통해 대한민국의 미래를 되살릴 방법을 들어본다. [편집자 주]
“과거 부모님 시절만 해도 엄마는 집에서 아이를 돌보고 아빠가 외벌이하는 가정이 많았잖아요. 외벌이로 집도 사고 충분히 생활할 수 있었죠. 이제는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많아지면서 출산에 대한 인식도 변하고, 포기해야 할 것들이 너무도 많아졌어요. 사회구조에 변화가 생겼으면 남녀가 동시에 양육할 수 있는 환경도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결혼을 몇 달 앞둔 예비신부 임지윤(30, 가명)씨는 어릴 적부터 아이를 많이 낳아 단란한 가정을 꾸리는 것이 꿈이었다. 부모님께 받았던 사랑을 자식들에게 그대로 전해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공무원이셨던 부모님 영향을 받아 일찌감치 공부해서 공무원도 됐다. 그러나 마주한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과거와 달리 공무원 월급으로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어려웠다. 맞벌이하지 않고서 생활할 수 없는 사회가 됐다. 아이를 낳기로 한 이상 포기해야 할 부분들이 많단 것을 알게 됐다.
임 씨는 “출산의 주체인 여성들의 인식이 점점 변하고 있는 것 같다”며 “출산을 통해 나를 닮은 귀여운 아이를 보는 것도 참 행복하겠지만 그로 인해 망가질 몸, 육아로 단절될 경력 등 여성들이 포기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고 한탄했다.
Q. 결혼하기로 마음먹을 때까지 두렵단 생각은 없었나
“한때는 결혼이 두렵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한 가정을 꾸려서 독립한다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었던 것 같다. 요즘엔 SNS와 같은 매체들이 잘 발달해 있다 보니, 스스로 남과 비교하는 것이 너무도 쉬운 환경이 됐다. 남들이 하는 건 다 하고 싶은데 경제적 상황은 따라가지 못하고 박탈감을 느끼고, 결혼도 할 수 없을 것 같고, 집도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미래에 대한 부담감과 두려움이 컸던 것 같다.
지금은 각자의 경제 상황에 맞춰 시작하면 된다는 생각이다. 혼자 월급을 모아서 준비한다고 생각했을 때는 포기해야 할 부분도 많고 눈앞이 깜깜했는데, 예비신랑을 만나서 같이 힘을 모아 헤쳐 나갈 생각으로 용기를 갖고 살아가고 있다”
Q. 지방 중소도시에 살고 있는데, 결혼하고 살 집은 마련했나
“예산에 맞춰 집을 구하고자 한다. 지금 거주 중인 지역에선 도심지 아파트(20~30평대 기준)의 경우 10억원에 육박하지만, 외곽지역은 5년 이내 신축 아파트가 2억원 내외 정도다. 대출 제도를 같이 활용해 집을 구할 생각이다. 예비신랑과 얘기해봤을 때 몇 가지만 포기한다면 어디든 살 집은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처음 선택한 곳이 최종적인 집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작게 시작해서 조금씩 키워나갈 생각이다”
Q. 결혼을 포기한 이유로 경제적인 문제를 꼽는 젊은 세대들이 많다
“경제적인 문제가 결혼에 있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사실이다. 나 같은 경우 공무원 월급이 생각보다 정말 적은 편이다. 신규 공무원 때는 부모님이 용돈도 줬고, 7년 차인 지금도 부모님 집에 얹혀사는 형편이다. 그나마 지방 중소도시에 살고 있어 수도권보다는 덜한 편이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수도권 집중화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수도권에 인구가 몰리다 보니 집값은 올라가고, 경기권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경우 시간적인 제약 때문에 육아도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수도권 거주 인구가 아이를 적게 낳으니 전체적으로 저출산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Q. 자녀 계획은 현실적으로 몇 명까지 생각하고 있나
“우선 2명까지만 계획하고 있다. 3명을 낳고 싶지만, 경제적인 상황이 받쳐줄 것 같지 않다. 부족함 없이 기르고 싶은데, 한정된 월급으로 양육과 주거 마련, 일상생활 등 모든 것을 해낼 자신이 없다. 2~3년 간격으로 낳을 예정이고, 남편과 번갈아 가며 육아휴직을 할 계획이다. 육아휴직 후엔 ‘가족돌봄 등을 위한 근로시간 단축제도(가족돌봄)’를 활용하고자 한다. 예비신랑이 재직 중인 회사도 그나마 육아휴직 등에 대한 보장은 잘 돼 있는 편이다. 양가 부모님이 같은 지역에 계셔서 피치 못할 상황에는 도움을 요청하겠지만, 우리 부부가 최대한 할 수 있는 선에서 아이를 기르고 싶다”
Q. 출산과 육아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정부에 제안하고 싶은 제도가 있다면
“내가 직접 내 아이를 기를 수 있는 근무 환경을 만들어주었으면 좋겠다. 과거에는 아빠의 외벌이만으로도 생활이 충분해 엄마가 육아를 전담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사람들의 생활 환경이 상향 평준화됐다. 무엇보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많아졌다. 그러면서 출산과 육아에 대한 부담감이 더 커진 것 같다. 사회가 이렇게 변화했으면 거기에 맞춰 부모가 동시에 양육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육아휴직이나 가족돌봄 제도 등을 법으로 강력하게 보장하고, 휴직자에 대한 결원 보충도 강제해야 한다. 학교에서 부모가 퇴근할 때까지 아이를 맡아주는 돌봄교실 같은 정책은 실효성이 없다. 그러면 그 돌봄교실에 남아 있어야 하는 교사의 아이는 누가 돌봐주나? 눈앞에 있는 문제만을 해결하기 위한 정책보다는 정확한 원인이 무엇인지 파악해 해결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