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13년 만에 재계 6위로 하락···포스코 '5대 그룹' 안착
포스코, 이차전지·친환경 소재 사업 박차···체질개선 통한 기업가지 제고
롯데, 주요 계열사 실적 부진···미래 신사업 발굴 강화 움직임

/그래픽=김은실 디자이너
/그래픽=김은실 디자이너

[시사저널e=정용석 기자] 롯데그룹이 굳건히 지켜오던 재계 5위 자리를 포스코그룹에 내주게 됐다. 양 그룹의 순위 교체는 포스코그룹의 지주사 체제 전환에 따른 효과가 한몫했지만, ‘5대 그룹’이 갖는 상징성이 커 특히 재계의 주목을 받았다. 

재계에선 이를 두고 그룹 간 신사업 추진 전략, 위기대응 등 경영 판단 차이가 재계 순위 변동에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한다. 이차전지, 친환경 소재 등 신사업에 과감한 투자를 통해 좋은 실적을 낸 포스코그룹과 달리 롯데는 이렇다 할 기업가치 제고 성과가 부족했다는 평가다.

포스코그룹이 ‘5대 그룹’에 다시 올라선 건 롯데에 재계 5위 자리를 내준 지난 2010년 이후 13년 만이다. 롯데그룹은 2010년 처음으로 재계 순위 5위 오른 뒤 그동안 자리를 쭉 유지해왔다.

공정거래위원회의 2023년도 공시대상기업집단에 따르면 포스코그룹의 공정자산총액은 롯데그룹(129조7000억원)보다 2조4000억원 많은 132조1000억원으로 집계됐다. 포스코그룹은 1년 새 자산이 35조원 증가한 반면, 롯데그룹은 8조원 증가에 그쳤다. 

롯데그룹과 비교해 포스코그룹의 실질 자산이 크게 증가한 건 아니다. 포스코그룹의 지주사 포스코는 지난해 3월 존속회사인 ‘포스코홀딩스’와 신설 회사 ‘포스코’로 물적 분할했다. 이후 포스코홀딩스가 지분 100%를 보유한 포스코의 주식 가치 30조원이 자산으로 더해지면서 롯데의 공정자산총액을 넘긴 것이다.

5대 그룹은 기업에겐 대기업 지표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대통령과 기업 총수들 간 만남이나 국가적인 행사에서도 이 순위에 따라 의전이나 자리 배치 등이 정해진다. 

특히 재계 순위 변동에 재계가 주목하는 이유는 각 그룹이 주력하는 산업의 흥망성쇠를 보여주는 지표로 판단할 수 있어서다. 재계 관계자는 “4차 산업 혁명기 도래로 산업 구조가 빠르게 변화하면서 개별 기업이 영위하는 사업에도 적잖은 영향이 미치고 있다”면서 “신사업 육성을 통해 시장 변화에 대응한 기업이 성장하고, 그렇지 못한 기업은 소외받는 흐름을 보인다”고 말했다.

포스코퓨처엠 양극재 광양공장 전경. /사진=포스코퓨처엠
포스코퓨처엠 양극재 광양공장 전경. /사진=포스코퓨처엠

다만 당분간 포스코와 롯데의 재계 순위가 다시 뒤바뀌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시장에선 포스코그룹의 성장세가 더욱 거셀 것이란 분석을 내놓는 반면, 롯데그룹의 각 계열사의 부진은 길어지고 있어서다.

포스코 그룹은 최근 수년간의 대규모 투자를 통해 기존 철강 사업을 넘어 이차전지 소재로 사업을 다각화하면서 기업가치를 높이고 있다. 양극재·음극재 등 이차전지 소재를 생산하는 포스코퓨처엠은 일찍이 지난 2012년부터 양극재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후 글로벌 주요 완성차·배터리업체 고객사를 확보해 현재는 보유한 수주잔고만 100조원 이상에 이른다. 

밀려드는 주문에 대응하기 위해 2030년까지 100만톤(t)의 양극재 생산능력을 갖출 계획이다. 생산능력만 빠르게 늘리는 것이 아니라 고성능 전기차 배터리 소재인 단결정 양극재 등 신제품 분야에서도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포스코퓨처엠은 향후 국내외 양극재 생산기지에 단결정 라인을 지속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계열사 간 시너지 효과도 상당하다. 지주사인 포스코홀딩스는 배터리 소재 벨류체인의 시작점인 원료 사업을 주도하고 있다. 2018년 호주 필바라의 광석리튬 광산 지분과 아르헨티나 리튬 염호 광권을 인수하는 등 탄탄한 공급망을 구축했다. 호주 필바라미네랄과의 협력 확대를 통해 오는 2030년 22만t의 수산화리튬을, 아르헨티나 염호를 활용해 오는 2028년 10만t 생산체계를 갖출 계획이다. 

계열사 포스코인터내셔널이 갖춘 탄탄한 해외 네트워크를 활용해 음극재 소재인 흑연 공급망도 강화하고 있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은 올 5월 탄자니아 파루 그라파이트와 천연흑연 장기 공급계약을, 올 8월에는 캐나다계 광업 회사 넥스트소스와 ‘마다가스카르 몰로 흑연광산의 공통투자를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확보한 흑연은 포스코퓨처엠에 공급된다. 

롯데케미칼 전남 여수 공장 전경. / 사진=롯데
롯데케미칼 전남 여수 공장 전경. / 사진=롯데

롯데그룹은 그룹의 뿌리인 롯데쇼핑의 부진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캐시카우 역할을 하던 롯데케미칼 역시 경기침체로 실적 부진의 늪에 빠지면서 재계 순위 반등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롯데케미칼은 올해 3분기 영업이익 281억원을 기록하며 6분기 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했으나, 한 분기 만에 적자 전환이 예상된다.

이차전지 신사업 성과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올 초 2조7000억원을 들여 인수한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는 전기차 수요 부진과 중국발 저가 제품 공급 과잉 영향으로 올 1~3분기 누적 영업이익이 106억원에 그쳤다. 롯데그룹 인수 전인 지난해 이 회사의 영업이익은 847억원이었다.

주요 계열사의 신용등급도 내려가며 경영 위기감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롯데그룹은 인사를 통해 대대적인 변화를 추진 중이다. 14개 계열사의 CEO를 교체하면서 이 자리를 60년대 후반~70년대생의 젊은 인사들로 채웠다. 

신사업 발굴을 위한 새 조직도 꾸렸다. 롯데지주는 글로벌 및 신사업을 전담하는 미래성장실을 신설해 바이오·헬스케어 등 신사업 관리와 제 2의 성장 엔진 발굴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신임 미래성장실장은 전무로 승진한 신동빈 회장의 장남 신유열 롯데케미칼 상무가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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