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지나면 정부안 자동부의’ 국회선진화법 따라 입장 바뀌어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여당 소속 의원들이 지난 16일 야당의 예산안조정소위 참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에 앞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 사진=뉴스1

이맘때면 내년 예산안을 심사하는 국회는 늘 바쁘게 돌아갔다. 부처 공무원들은 의원실을 돌며 한 푼이라도 더 따내기 위해 분주했다. 나라 살림살이를 담당하는 기획재정부 공무원들은 법정 시한 내 처리를 위해 읍소하곤 했다.

올해는 달라졌다. 오히려 심의 권한을 가진 의원들이 다급해진 반면 기재부 예산실 공무원들은 느긋해 보인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선 “기재부가 건방져졌다”는 푸념 까지 나오고 있다.

예결위에 참여하고 있는 한 야당 의원은 18일 전화 통화에서 “특정 예산과 관련한 정부 입장을 듣기 위해 설명해달라고 불러도 오질 않는다”며 “예년과 달라도 너무 달라졌다”고 밝혔다. 여당의 한 보좌관도 “어렵게 의원실로 불러 설득하려고 해도 좀처럼 입장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여야를 불문하고 기재부에 대한 불만이 쏟아지자 정의화 국회의장은 “이런 식으로 하면 시한 내 처리가 어려울 수 있다”는 엄포까지 놨다는 얘기도 나온다.

뒤바뀐 역학관계의 이면에는 개정된 국회법, 이른바 국회선진화법이 자리잡고 있다. 국회선진화법의 자동부의 조항이 작년부터 적용됐기 때문이다. 여야가 오는 30일까지 예산안 심사를 마치지 못하면 정부가 제출한 원안이 본회의에 자동 부의된다. 가만히 있으면 기재부로선 최상의 시나리오인 정부안이 그대로 통과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이 조항 덕분에 정부안이 자동으로 부의됐고, 2002년 이후 12년 만에 헌법이 정한 예산안 법정 시한(12월2일)을 지켰다.

그렇다고 기재부가 웃을 수 만은 없는 입장이다. 예산안은 이미 지난 9월11일 국회에 제출됐지만 여야가 국정 교과서 논란으로 파행을 거듭하면서 예산 심사 시일이 부족해 졌다. 그나마 각 상임위원회의 예비심사는 1~2주씩 빨라졌지만 최종 관문 역할을 하는 예결위가 예산안조정소위 구성을 놓고 혼선을 빚어 시간이 더욱 부족해졌다.

총선을 앞두고 있다는 점도 기재부 공무원들을 난감하게 한다. 한 기재부 공무원은 “의원실로 오라고 해서 정책 자료를 들고 가면 대부분 지역구 예산을 챙기려는 요구를 한다”며 “다른 부처야 예산이 늘어나서 좋겠지만 국가 재정을 총괄하는 입장에선 선뜻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