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를 200여 채 보유한 지인이 있다. 주택 보유량으로만 보면 국내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사람일 것이다. 주위 사람들은 그가 엄청난 재산을 상속 받은 재력가인줄 오해하지만 사실은 아니다. 최근 국토교통부 국정감사에서 화제가 된 무피투자가일 뿐이다.

그는 줄곧 내게 '회사만 다니면 조금씩 가난해진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라고 충고한다. 그러면서 지방광역시 32평/ 남향 2층/ 전세 1억8000만원/ 매매가 1억9000만원 / 총 투자액 1000만원처럼 암호 같은 단체 문자를 수시로 보낸다. 그는 단체 문자를 전송하고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계약금이 송금되고 계약이 성사된다고 말한다. 지인은 좋은 물건을 알려준 소개비로 매수 희망자에게 건당 150만 원을 받는다.

매수자는 계약하면서 잔금일을 6개월가량 최대한 미룬다. 요즘같이 전세 매물이 귀할 때는 한 달만 지나면 전세가와 매매가가 같아진다. 그 사이 매매가는 1000만원가량 오른다. 그럼 잔금까지 남은 5개월 가량은 이른바 '플피투자'가 된다. 잔금 치르는 6개월 뒤에는 세입자에게 자신의 주택 매입가보다 높은 전세가를 받을 수 있게 된다.

이 과정에서 부동산 중개업자의 공이 꽤 크다. 부동산 가격은 중개업소가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요가 공급보다 1%라도 많아지면 가격을 높일 수 있다. 가격을 올려 받으면 복비도 올라 투자자와 부동산 중개업소 모두에게 이익이다.

이들을 옹호할 생각은 전혀 없다. 노파심에 먼저 밝히자면 난 1가구 1주택자다. 그러나 투자자를 집값 상승을 주도한 사악한 사기꾼으로, 전세입자를 피해자로만 볼 수는 없다.  

누구나 알고 있듯 전세난의 근본 원인은 장기 저금리 기조로 인한 가파른 월세 전환, 이에 대한 정책의 부재 아닌가.

그런데도 국회나 국토교통부 등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전세깡패'라는 신조어까지 만들며 투자자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는 모양새다. 투자자들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자기 재산을 늘리기 위해 움직였을 뿐이다.

또 전세입자는 집을 매입할 돈이 없어서 집을 안 사는 게 아니다. 세금 한 푼 안내면서 거주할 수 있고 집값 하락 리스크도 피할 수 있으니 전세를 선택한 것이다. 집 산 사람이 가해자고 전세 세입자는 선량한 피해자라는 이분법적 사고는 순진하다.

결국 제도를 보완하지 않은 국토교통부 관계자와 국회의원이 비난의 대상이 돼야 하지 않을까 싶다.

유일호 국토부 장관은 국감 현장에서 무피투자를 몰랐다고 말했다. 관료 특유의 보신주의인지 시장에 대해 무지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 어떤 이유이던 간에 잘못됐다. 또 시장 상황을 알고 있으면서 문제라고 지적만 하고 제도를 아직까지 보완하지 않은 국회 해당 상임위 의원과 보좌진도 문제다.

주거는 살아가는데 기본적으로 필요한 요소 중 하나다. 따라서 주거 불안정 문제는 그 어떤 문제보다 국민들이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시장의 변동 상황에 따른 관련 법률적· 제도적 정비는 시급하다. 국토교통부와 국회는 전세난 시대의 책임과 대책을 결코 멀리서 찾을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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