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 수주잔액 11조원↑···저가수주 탈피, 수익성 개선
고속철 첫 수출 숙원 이뤄질까···풍부한 국내 수주 이력 '무기'

/사진=현대로템
/사진=현대로템

[시사저널e=정용석 기자] 현대로템 레일솔루션 사업부가 사업 포트폴리오 다변화로 국내외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특히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A, C 철도차량 전량을 수주하고 북미 진출에 성공하는 등 전동차 부문 성장세가 매섭다. 

2004년 처음 도입된 고속열차 ‘KTX-1’ 교체 연한이 다가오면서 국내 고속철 부문을 독점하고 있는 현대로템의 대규모 수주도 가시권에 들어왔다. 현대로템 외에는 차세대 열차를 제작해본 경험이 없어 현대로템의 독식 구조가 이어질 것이란 평가다. 

28일 현대로템에 따르면 회사는 GTX 전체 6개 노선 가운데 A·C노선에 공급할 철도차량을 전량 수주했다. 현대로템은 지난 22일 지티엑스씨주식회사와 '수도권광역급행철도 C노선 민간투자사업 철도차량 및 차상신호 기본공급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시했다.

계약 금액은 5426억원으로, 지난해 매출의 15.1%에 해당하는 규모다. 현대로템은 GTX-C에 시속 180km급 전동차 약 20편성과 이 차량에 적용할 차상신호장치를 공급한다.

앞서 현대로템은 2020년 GTX-A노선에 납품할 전동차 160량 납품 사업을 수주했다. 2020년 3월 120량을 수주하고, 같은 해 6월 40량을 추가 수주하면서 5836억원 규모의 공급 계약을 맺었다.

GTX-A·C는 민자사업인 만큼 현대로템의 수익성도 어느 정도 확보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로템 관계자는 “이번에 체결한 GTX-C 관련 수주를 비롯해 GTX-A 철도차량 계약 모두 향후 30년간 유지보수 비용까지 함께 고려해 계약 금액이 결정된 것”이라며 “국가재정사업인 KTX와 달리 수주할수록 남는 장사”라고 말했다.

업계는 현대로템이 현재까지 발주된 GTX 차량 전량을 수주할 수 있었던 이유로 회사가 갖춘 기술력과 유지보수 능력을 꼽는다. GTX 전용 전동차는 최대 운행속도가 시속 80∼100㎞인 지하철 전동차와 달리 땅 밑 40m 아래를 시속 180㎞로 달리는 고속열차다. GTX 전용 전동차를 제작하기 위해선 지하철 전동차보다 높은 기술력이 필요하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전동차 공급은 현대로템, 우진산전, 다원시스 등 3개 업체가 담당하고 있는데, GTX 차량 제작 기술을 갖춘 업체는 사실상 현대로템 뿐”이라며 “따라서 GTX 전용 전동차를 유지 보수할 수 있는 업체도 현대로템뿐”이라고 설명했다.

현대로템이 납품할 미국 LA 메트로 전동차 조감도. /사진=현대로템
현대로템이 납품할 미국 LA 메트로 전동차 조감도. /사진=현대로템

현대로템은 국내 전동차 사업 수주를 발판삼아 해외서도 맹활약 중이다. 그간 중국의 저가 공세로 현대로템 레일솔루션 사업부가 고전을 면치 못했지만, 최근 들어 품질과 납기 능력을 중시한 글로벌 시장서 크고 작은 수주를 따내고 있다. 국내에서 해외 시장에 철도차량을 수출하는 기업은 현대로템이 유일하다.

현대로템은 최근 3년 동안 대규모 수주 이력을 쌓으면서 지난해 말 철도사업 수주 잔액 11조원을 달성할 수 있었다. 회사는 지난해 단일사업 수주로는 역대 최대인 1조2000억원 규모의 전동차 공급 사업을 호주에서 수주했다. 대규모 수주 덕에 지난해 신규 수주액만 5조 2727억원에 이른다. 이외에도 회사는 지난 2022년 수주한 타이페이 전동차를 중심으로 대만 철도청(TRC) 교외선 전동차 등 철도차량 사업에 전동차를 납품한 바 있다.

현대로템은 올 초 미국서 대규모 수주 낭보를 전하며 좋은 출발을 보였다. 회사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교통국(LACMTA·LA)에서 발주한 LA 메트로 전동차 공급 사업에 최종낙찰자로 선정됐다. 사업 규모는 6억6369만달러(약 8940억원)에 달한다. 

현대로템은 차량 제작 기술, 실적, 납기 준수 등 과거 사업 이행 능력을 인정받아 경쟁사와 치열한 접전 끝에 사업을 따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수주로 미국 신공장 설립도 추진 중이다. 

KTX1 열차. /사진=현대로템
KTX1 열차. /사진=현대로템

전동차 시장을 넘어 고속철 시장도 두드리고 있다. 국내 시장은 사실상 현대로템이 독점하고 있다. ‘동력분산식 고속열차’ 기술력을 갖춘 회사가 현대로템 외에는 없어서다. 현대로템은 지난 2008년 세계에서 네 번째로 동력집중식 KTX-산천을 자체 기술로 개발했다. 

KTX 교체사업도 향후 현대로템 먹거리다. KTX 초기 버전인 ‘KTX-1’은 오는 2033년부터 퇴역하면서 역대급 열차 입찰 시장이 열릴 전망이다. 통상 계약 후 납품까지 5년가량이 필요해 오는 2027년부터 입찰 시장이 열릴 것으로 관측된다. 업계에서는 KTX 순수 제작비용만 최소 5조~6조원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국내 시장은 ‘팔아도 남는 게 없는’ 시장이라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현대로템은 지난 2016년 수주한 EMU-260 30량 사업에서도 손실을 봤다. 회사가 지난 2018년부터 3년 동안 철도부문에서 낸 적자 규모는 2391억원에 달한다. 

코레일(한국철도공사)의 최저가 입찰 구조 탓이다. 1단계 기술평가 문턱만 넘으면 2단계는 가격 평가만으로 참여 기업이 결정된다. 따라서 입찰에 참여하는 기업은 적자 수주를 감수하며 입찰에 참여해왔다. 

이에 고속철 수출은 현대로템의 숙원사업으로 자리 잡았다. 글로벌 시장에서 저가 위주 수주를 탈피해 수익성을 확보하겠단 전략이다. 그간 국내서 손실을 보며 고속철을 수주해왔지만, 풍부한 수주 이력은 남았다. 이를 바탕으로 첫 고속철 수출을 성사시킨다는 목표다. 

수출 유력 시장은 우크라이나, 사우디아라비아 등이다. 현대로템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역점사업 ‘네옴시티’ 프로젝트에서 철도 사업을 맡게 될 전망이다. 철도차량 제조 공장을 설립하고 사우디 철도청에서 운영하는 디젤기관차를 대체할 차세대 수소기관차을 함께 개발한다. 우크라이나와는 전후 재건 과정에서 고속철도를 공급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K2 전차를 수출한 폴란드도 유력 후보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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