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현대제철 불법 파견' 인정···소송 13년만
불법파견 근거 된 생산관리시스템(MES)
업계 "업종 특성 고려치 않은 대법 판단 수긍 어렵다"
조선업계, MES 적용 사업장 없어···"문제될 것 없다"
"컨베이어벨트 업무가 아닌 각 하청업체 단위 업무 분배"

전국금속노조 광주전남지부 현대제철 비정규직지회 관계자들이 지난 12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열린 현대제철 상대 근로자지위확인 선고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금속노조
전국금속노조 광주전남지부 현대제철 비정규직지회 관계자들이 지난 12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열린 현대제철 상대 근로자지위확인 선고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금속노조

[시사저널e=정용석 기자] 포스코 사내하청을 불법파견으로 판단했던 대법원이 최근 현대제철 사내협력업체 근로자들도 불법파견에 해당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제조업 현장에서 정보 전달용으로 쓰이는 생산관리시스템(MES)가 원청의 지휘·명령 수단으로 낙인찍히면서 제조업계 전반에 이번 판결에 따른 불똥이 튈까 노심초사하는 분위기가 퍼지고 있다.

특히 사내하청 근로자 비중이 70%가 넘는 조선업계도 ‘하청 직원 직고용 리스크’가 번질지 주목된다. 다만 조선소 현장은 판결의 주요 쟁점으로 작용한 MES가 적용된 사업장이 따로 없는 데다, 작업 연속성이 중요시되는 철강업계와 업무 형태가 달라 동일한 법원 판단이 내려지기 힘들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법조계는 원청 기업과 협력업체 직원 파견 관계를 폭넓게 인정하는 판결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사내 하청업체 직원을 본사 직원으로 직접 고용하라”는 법원 판단에는 원청이 하청업체 직원에게 업무를 지시하는 과정서 MES를 사용했다는 점이 근거로 작용했다. 

특히 철강업계를 뒤흔드는 대법원 판단이 이어지고 있다. 제조 과정서 연속성이 중요한 철강업계는 공정 계획에 따른 작업량과 작업 순서 등을 협력업체와 공유하기 위해 MES를 사용하고 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현대제철 순천공장 사내하청업체 노동자들이 자신들을 현대제철 노동자로 인정해달라며 낸 소송에서 13년 만에 최종 승소했다. 지난 12일 대법원은 현대제철 사내협력업체 소속 근로자 161명이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 상고심 2건에 대해 원심 판단을 확정한 것이다. 

앞서 현대제철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지난 2011년 7월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제기했고 1심과 2심 모두 승소했다.

이번 판결은 예견된 결과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철강업계 1위인 포스코도 비슷한 대법원 판결을 받았다. 앞서 대법원은 지난 2022년 7월 포스코 관련 재판에서 불법파견을 인정했다. 양사는 원고인 하청업체 노동자들을 직고용해야 한다. 

소송은 계속되고 있다. 올 초 서울중앙지방법원은 포스코 사내하청 노동자 250명이 제기한 5차 근로자 지위확인 소송에서 불법파견을 인정했다. 현대제철 비정규직 집단소송은 이번 1차(161명)에 이어 2, 3차(258명), 4, 5차(75명)가 진행 중이다. 

이번 대법 판결로 제조업 하도급 노동자들의 줄소송이 예상되고 있다. 원청기업과 협력업체 직원 파견 관계를 법원이 얼마나 폭넓게 인정할지가 관건인데, 특히 MES에 대해 법원은 사실상의 직접 지시의 수단으로 보는 추세다. 작업 효율성 향상을 위해 MES를 사용하는 모든 제조업체가 하청 노동자 직고용 리스크에 빠진 것이다.

한 철강업계 관계자는 “철강업종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아 대법 판단을 수긍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면서 “이러한 판결이 계속 나오면 철강업뿐만 아니라 제조업 전체를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전국 금속노조 조선하청노조지부 노조원들이 조선소에서 일하고 있는 하청노동자의 임금 인상 등 근로 조건 개선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민주노총 전국 금속노조 조선하청노조지부 노조원들이 조선소에서 일하고 있는 하청노동자의 임금 인상 등 근로 조건 개선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하청업체 근로자를 직접 고용하라는 요구는 조선업계로도 번지고 있다. 조선업 생산 공정의 70%~80% 하청업체가 담당하고 있지만, 하청 노동자 임금은 원청의 50~70% 수준에 머물고 있어 불만이 가중되고 있다. 

기업이 협력업체 직원을 직접 고용하게 되면 기존 정규직 근로자와 동일한 대우를 해줘야 한다는 점에서 인건비가 급증할 수밖에 없다. 하청업체 근로자가 전체 근로자의 70%에 달하는 조선업계는 그 부담이 더욱 클 것으로 예상된다.

하청 직원을 직접 고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소송의 핵심은 원청의 개입이 있었는지 여부다. 현행 파견법에 따라 하도급 관계를 인정받으려면 하청업체가 원청의 지휘명령을 받지 않고 수주한 일감을 자체적으로 처리해야 한다. 

조선업계는 원청이 하청업체 근로자에게 어떠한 지시를 내릴 수 없는 구조라는 게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철강업계가 전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MES를 현장에 도입한 조선소 자체가 없다”며 “문젯거리가 될 게 없다”고 설명했다. 

특히 조선소는 ‘제선-제강-연주-압연’으로 이어지는 ‘연속 공정’ 사업장인 철강업계와 달리 척당 수십만개의 자재와 관련 생산요인이 조합돼 원청의 직접적인 개입이 어렵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컨베이어벨트 업무가 아닌 각 팀이 부여받은 업무를 각각 수행하는 구조라는 뜻이다. 

업계 관계자는 “조선 3사는 회사 밖의 협력업체 대표와 계약 규모, 물량에 대해서만 공식 계약을 체결한다”면서 “세부적인 업무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개별 업체의 몫으로 두고 있다”고 했다. 

한편, 철강업계는 자회사 설립을 통해 협력업체 직원들을 직고용하며 불법파견 리스크를 덜어내고 있다. 포스코는 정비 자회사를, 현대제철은 당진·인천·순천 등 사업장별 계열사를 설립해 하청 노동자를 고용하기로 했다. 업계는 업무특성 상 MES를 지속 활용하고 있지만, 대법 판결에 언급된 MES와 현재의 MES와는 차이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