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 전공의 업무개시명령 법적 문제 없다···의협 “정부가 헌법 위에 군림” 비판
복지부, 의료계와 대화 준비 강조···윤 대통령 “2000명 증원은 최소한 조치” 역설  
협상 대상 난제, 복지부는 대표성 있는 창구 요청···의료계는 내부 복잡해 시간 소요 전망

[시사저널e=이상구 의약전문기자] 정부와 의료계가 강대강 대치를 이어가고 있다. 이에 환자 진료와 수술 등이 원활하지 않은 상황이 가중돼 양측 협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협상 의제에 의대 정원 2000명 확대를 넣느냐 여부와 누구를 의료계 대표로 인정하느냐에 합의가 쉽지 않아 협상 착수가 난제로 분석된다. 

27일 보건복지부는 오는 29일까지 업무에 복귀하지 않는 전공의는 법과 원칙에 따라 최소 3개월 면허정지 처분과 관련 사법절차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전공의 사직이 헌법상 기본권인 직업 선택 자유에 따른 것이라고 하지만 공익이나 사회질서 유지를 위해 일정 범위 내에서 제한이 가능하다”며 “현행 의료법 체계에서 충분히 업무개시명령을 내릴 수 있는 것으로 법률 검토를 마쳤다”고 설명했다. 법률적 문제가 없다는 자문을 받았기 때문에 3월 1일 이후에는 언제든지 진료를 중단하고 업무개시명령을 따르지 않는 전공의들을 상대로 절차를 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에 의료계는 정부가 헌법 위에 군림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주수호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 이날 브리핑에서 “공익을 위해 직업 선택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는 조치가 정부 전체 공식 입장이라고 한다면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는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라며 “헌법 위에 군림하려는 정부는 폭압적 처벌로는 의료 현장을 정상화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하며 열린 자세로 대화에 나서 달라”고 요청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2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6차 중앙지방협력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2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6차 중앙지방협력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이같은 상황에서 전공의 파업에 따른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 ‘의료 공백’은 시간이 경과될수록 늘고 있다. 파업 개시 이후 상급종병 신규 환자 입원은 24%, 수술은 상급종병 15곳 기준으로 50% 가량 감소했다는 것이 복지부 설명이다. 특히 다음 주부터 신규 인턴과 전임의들이 진료를 중단할 경우 심각한 사태가 상급종병과 종병에서 발생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이에 의료계 일각에서는 정부와 대화하려는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다. 실제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는 이날 정기총회를 열어 의대 정원 확대 등 현안을 논의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처럼 정부와 의료계가 협상 필요성은 인지하고 있지만 착수는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협상에 앞서 의제와 대상 결정이 쉽지 않은 탓이다.

우선 의제가 중요하다. 정부가 기존 의대 정원에 내년 2000명을 늘리려는 상황에서 수치 변동 여부가 핵심이다. 복지부는 일단 대화의 자리를 만들어 허심탄회하게 대화하겠다는 구상을 밝히고 있다. 박 차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전체 의료계에 다시 한번 대화를 제안한다”며 “정부는 언제든지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지만 2000명 수정 여부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특히 현실적으로 대통령실 의지가 정부 정책 결정에 중요한 요소로 분석된다. 현재 대통령실은 공식적으로 2000명 정원 확대는 불변사항이라고 강조한다.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최근 브리핑에서 “기존 2000명을 의사 측과 조율해 낮출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에 “현재 추계한 2000명 자체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필요한 인원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이날 청와대 영빈관에서 주재한 제6회 중앙지방협력회의에서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은 국가의 헌법적 책무를 이행하기 위한 최소한 필수적 조치”라며 “우리나라는 현재 의사 수가 매우 부족하며 가까운 미래는 더 심각한 상황이 된다”고 말했다.

이어 윤 대통령은 “의료 취약 지역에 전국 평균 수준 의사를 확보해 공정한 의료 서비스 접근권을 보장하는 데 약 5000명 의사가 더 증원돼야 한다”며 “2035년까지 진행될 고령화에 대응하기 위해 1만여명 의사가 더 필요하다는 게 전문 연구의 공통적 결론”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정치권 관계자 A씨는 “최근 윤 대통령 지지도가 상승했는데 과거 민주노총이 주도한 불법파업에 강력하게 대처했을 때도 유사했다”며 “대통령실 입장에서는 환자들 불편은 안타깝지만 법과 원칙대로 밀어붙이려는 의도가 강하다”고 분석했다. 

전공의들의 집단행동 중단을 촉구하는 공공운수노조 모습. / 사진=연합뉴스
전공의들의 집단행동 중단을 촉구하는 공공운수노조 모습. / 사진=연합뉴스

정부가 의료계 누구를 협상 대상으로 결정하느냐도 중요한 사안으로 분류된다. 현재 후보로 거론되는 대상은 전공의를 주도하는 대한전공의협의회와 의협 비대위, 의대 교수들이다. 하지만 복지부는 이들 중 어느 단체와 협상해야 할지 결정하지 않은 상태로 파악된다.

박 차관은 “(의료계가) 대표성 있는 대화 창구를 마련해 대화 일정을 제안해 주시면 화답하겠다”고 브리핑에서 강조했다. 단, 이같은 대화나 협상은 의료계가 파업을 접는다는 점이 전제조건으로 파악된다. 즉 불법 파업을 진행하는 단체와는 협상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출한 것이다. 이어 박 차관은 ‘대표성’과 관련, “한 사람이 모든 걸 다 대표할 수 없겠지만 병원계, 개원가, 전공의, 대학교수 등이 모여 대표단을 구성한다고 하면 정부가 그에 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복지부 관계자 B씨도 “현재 의료계와 물밑에서 진행하는 비공식 대화가 없는 상태”라며 “의료계 대표성을 띤 적절한 협의체가 보이지 않는다”라고 토로했다. 익명을 요청한 의료계 관계자 C씨는 “의료계 내부 여러 세력 의견이 복잡한 상태이고 통일된 방안이 도출되지 않은 상황이어서 단기간 정부가 요구하는 수준의 대표성을 가진 협의체를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언급했다.      

결국 정부와 의료계가 정면 대립하는 현재 상황에서 2000명 정원 확대 수치를 논의하기 위해선 정부가 요청하는 의료계 대표성을 갖춘 협의체 선정부터 시급한 상황으로 풀이된다. 환자단체 관계자 D씨는 “시간은 없고 환자들 생명이 달린 상황인데 예를 들어 복지부가 전권을 받아 비밀리에 협상을 하는 방안도 검토 가능하다”라며 “파국 상태가 된 후에는 늦을 수 있어 이번 주 내로 어떤 식으로든 협상을 개시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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