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 고립, 비대면화에 기인

[시사저널e=장민지 경남대학교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최근 게임 관련 칼럼 청탁을 받아 최신의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을 플레이하게 될 기회가 있었다. 80년대생인 나는 PC 게임으로 처음 연애 시뮬레이션이란 장르를 접했다. 그러나 당시 게임의 주인공, 즉 플레이어는 남성 게이머로 고정된 상태라 내가 공략하고 연애를 시작할 수 있는 대상들은 죄다 여자였다. 미연시(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 장르라고 불렸던 그 게임은 여러 명의 여자 친구 후보들을 공략하고 연애에 성공적으로 돌입해서 서사가 진행되는 특징이 있었다.

게임 플랫폼이 PC에서 모바일로 넘어오기 시작하면서 여성 게이머들 또한 양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 장르도 다방면으로 개발됐다. 특히 10대에서 30대까지 여성을 타겟으로 한 ‘영 어덜트(young adult)’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 개발이 빠르게 이뤄지면서 여성이 플레이어가 되고 여성과 남성을 모두 연애 대상으로 할 수 있는 게임도 모바일로 빠르게 전이됐다.

특히 모바일로 이식된 연애 시뮬레이션은 현실 연애와 유사한 방식으로 게임이 진행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연애 당사자들끼리 모바일로 메시지를 주고받는 다든가, 영상통화를 한다든가 하는 식이다. 자기들만의 이모티콘을 만들어 서로에게 쓰거나 소셜 미디어에 둘이 찍은 사진을 업로드할 수도 있다. 최근 출시된 3D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은 자신과 닮은 AI 캐릭터를 만들어 인생 네컷도 함께 찍을 수 있다.

이 게임을 통해 우리가 인지할 수 있는 건 연애에서의 상호작용이 의외로 의례에 가까운 행위로 이뤄지고 있단 점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메신저로 상대방의 안부를 묻거나, 함께 밥을 먹으러 가서 사진을 찍고 이것을 소셜 미디어에 전시하거나, 포스팅에 하트를 남기고 댓글과 안부를 게시하는 것. 그리고 잘 자라는 안부인사 등. 게임은 이것이 결과적으로 데이터화되고 상대방이 나와 연애에 돌입할지, 친구로 지낼지, 아니면 이도 저도 아닌 미적지근한 관계로 남을지를 시스템적으로 결정하게 된다. 게임의 세계와 실제 세계의 연애는 모바일이 매개되면서 놀랍게도 중첩된다. 우리에게는 영화 ‘허(HER, 2013)’가 자연스럽게 떠오를 수밖에 없다.

이처럼 가상현실은 현실과 닮아가는 것일 수도 있고, 현실이 가상을 닮아가는 것일 수도 있다. 곰곰이 우리가 오늘 하루 타인과 소통했던 것들을 떠올려보면, 인상적이게도 면대면 대화가 그렇게 많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카카오톡으로, 인스타그램으로, 사내 메신저를 통해, 혹은 다이렉트 메시지, 이메일로. 이는 가상적 상호작용이지만 그 미디어를 넘어 실제 사람이 존재하긴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걸 물리적으로 느끼지 못한 채 대화를 지속해왔고, 이미 거기에 익숙해진 지 오래다.

현대의 고립은 결국 물리적으로 거리가 좁혀지지 않을 때가 아니라 네트워크 되지 않는 상황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많은 미디어학자는 말한다. 인간의 의례적 행위가 ‘대면’의 상황에서 점점 ‘비대면화’ 돼가고 있기에 우리는 점차 대면에서 이뤄졌던 상호작용 기술을 잊을 때가 많다. 사람의 눈을 쳐다보며 대화하기엔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은 스크린 너머를 응시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