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유치원‧수학은 기본에 음·미·체까지 얹은 사교육비에 허덕
보육공백 생기는 순간 출산과 직장 포기 경단녀 늘어
신뢰할만한 시터 인력 송출입 제도 갖춰야

저출산 그래픽=김은실 디자이너
학원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는 대치동 학원가. 국내 저출산 요인으로 높은 사교육이 꼽힌다.  / 사진 = 노경은 기자
학원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는 대치동 학원가. 국내 저출산 요인으로 높은 사교육이 꼽힌다.  / 사진 = 노경은 기자

[시사저널e=노경은 기자] 대한민국이 위기를 맞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우리나라 출산율은 0.66명까지 감소했다. 이대로 가면 2750년에는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세계지도에서 지워질 것이란 전망도 있다.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 나라 대한민국에서 다시 우렁찬 아이들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100명의 입을 통해 대한민국의 미래를 되살릴 방법을 들어본다. [편집자 주]

윤석열 정부가 세계 최저 출산율이란 시급한 과제에 저출산 문제 타개에 나섰다. 저출산 문제 해결을 최우선 국정 과제로 꼽은데 이어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 자리에 강한 추진력으로 ‘불도저’란 별명을 얻은 주형환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임명했다. 위원회 위원장은 윤 대통령이다. 

정부는 아이를 낳고 기르기 좋은 사회로 대대적 변화에 나서겠다는 방침인데 실제 육아하는 이가 생각하는 아이 기르기 좋은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서울 도곡동에 거주하는 두 아이의 엄마인 정선주씨(가명, 만 40세, 주부) 얘기를 들어봤다.

Q. 11세와 8세인 두 아이를 기르고 있는데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가

“보육 공백이다. 아이들이 미취학 아동일 때 중국인 베이비시터가 있었다. 오전 8시부터 오후 7시까지 주 5일 근무하는 동안 월 320만원을 지급했다. 우리나라 국적의 돌봄 인력은 워낙 구하기 힘드니 중국인을 찾게 됐는데 문화가 많이 달랐다. 일자리를 찾아 타국으로 온 사람들이라 그런지 근무를 시작하고 불과 며칠 만에 더 좋은 조건의 가정으로 옮기는 건 부지기수였다. 우리는 H2비자(중국인의 단기 취업비자) 를 받으려고 개원의인 남편 병원에 취업한 것처럼 등록시켜 보다 오래 한국에 거주할 수 있게 하겠단 약속까지 하고 정말 어렵게 ‘모셔’왔다. 아이가 둘이라 돌봄 공백이 생기면 엄마는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정부에서 하는 아이돌봄 서비스는 대기가 길고 소득에 걸려 신청 못하는 경우가 많다.”

Q. 전문 돌봄 인력이 육아를 도와준다면 직장생활에 전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근무 형태가 입주방식이라면 가능하겠지만 우리는 출퇴근이었다. 퇴근시간만 되면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돌보미 퇴근 전 집에 도착해야 했기 때문이다. 아이가 열이 난다며 어린이집에서 하원을 권유하는 연락이라도 받는 날이면 열 나는 아이를 바로 하원시킬 수 없어 전화기 너머 담임교사에게 죄송하다고 머리를 조아리는 죄인이 돼야 했다. 당시는 코로나 시기이기도 해서 더욱 불안하고 힘들었다. 결국 둘째 출산 후 육아휴직 1년하고 퇴사했다.”

Q. 지금은 학령기이니 이전보다 육아 강도가 약하지 않나

“육아의 성격이 달라졌다고 보는 게 맞다. 보육 시기에는 정신적 스트레스와 육체적 피곤이 컸다면 이제는 아이들이 교육 시기에 진입하면서 비용 부담이 늘었다. 대치동 학원가 인근에 살다 보니 주변을 살펴보면 아이가 연필도 제대로 잡지 못하는 4세부터 과외를 시키는 집들도 종종 있다. 초등학교에 가면 영어유치원 출신 비율이 80% 이상일 정도로 이 동네는 5세부터 영어유치원에 입학하는 사례가 매우 흔하다. 영어유치원 비용은 4주 단위로 계산하는데 한 달로 환산하면 대략 기본 240만~250만원 정도다. 여기에 애프터클래스(방과후수업) 등을 넣으면 비용이 추가된다.

숙제를 봐줄 수 없는 워킹맘이면 영어유치원 숙제를 하기 위해 과외를 시키는 경우도 있다. 영어뿐만이 아니다. 정서함양을 위한 음·미·체(음악, 미술, 체육)학원도 추가된다. 둘째까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저축을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비용이 더 든다. 대표적인 게 이 동네에서 부르는 이른바 ‘7세 고시’ 시기다. 소위 대치 빅3·대치 빅5·대치 빅7이라 불리는 영어학원을 보내기 위해 입학 평가시험 전문과외 교사를 초빙한다. 과외비는 시간당 기본 10만원이다. 1시간 반씩, 주 3회정도 하니 과외비로 또 월 200만원 이상은 들어간다. 그렇게 7세 말 정도 되면 한 명의 아이에게 영어유치원과 과외비용만으로 400만~500만원이 든다. 부대비용도 물론 있다. 앞서 말한 빅7 학원들의 입학시험 신청은 1초면 끝난다. 결국 대행업체에 비용을 내고 신청한다. 이 비용도 건당 20만원 내외다. 결론적으로 영어유치원에 예체능 학원 다니면 최소 월 300만원은 기본이고 입학시험 과외까지 하면 월 500만원은 든다.”

Q. 그렇게 해서 영어학원에 합격했으면 끝이 아닌가

“7세 고시가 끝나고 난 뒤에는 수학이 기다린다. 대치동 유명 수학학원은 초등 6학년 전에 고등 1학년 과정까지 끝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유명 수학학원 입학시험이 있는 2학년 말에는 ‘학원고시’에 합격하기 위한 과외나 보조학원이 추가된다. 이 동네만 유난 떠는 것 아니냐고 물을 수 있는데 이런 학원은 전국에 지점이 있는 학원이다. 지난해 말 수능 표준점수 전국 수석과 수능만점자도 각각 대구와 용인출신이지만 사실 대치동 학원에서 공부한 재수생 아닌가. 아이 한 명당 월 교육비 400만~500만원은 대치동 아이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전국구 현상이 됐단 것이다.”

Q. 사교육비 지출이 너무 많은 것 아닌가. 무엇을 위해 교육에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이는지 궁금하다

“지금 당장 뚜렷한 목표가 있는 건 아니다. 아이를 하나 또는 둘만 낳고 귀하게 키우면서 사교육비로 허리띠를 졸라매는 건 대부분의 가정이 마찬가지 아닌가. 학벌주의 종식을 예견하면서도 역설적으로 학벌 추종 현상은 더 심해졌다. 부모의 불안함을 먹고 사교육시장은 쑥쑥 자라나는구나 싶기도 하다.”

Q. 저출산을 극복하기 위해 가장 먼저 선행돼야 할 정책을 꼽는다면

“‘한 명의 아이를 키우려면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나이지리아 속담이 있더라. 공감한다. 엄마의 노력만으론 힘에 부친다. 사교육이야 백번 양보해 부모의 선택 문제라 치더라도 보육은 다르다. 보육 공백이 생기는 이상 기혼여성은 직장생활의 끈을 놓을 수밖에 없다. 이를 지켜본 미혼여성은 결혼과 출산을 꺼린다. 이런 이유로 사회의 전폭적인 도움과 상호작용이 필요하다. 엄마들 사이에선 5복 중 으뜸은 ‘이모님복’이라고 한다. 그정도로 보육공백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정부가 주는 양육수당, 아동수당 명목의 월 20만원 지급은 이모님 떡값도 안 된다. 돈 20만원이 없어 출산을 포기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경단녀가 되기 싫고 삶의 질을 포기하지 못해 출산을 포기하는 경우는 허다하다. 고용노동부와 서울시가 외국인 가사근로자 도입 시범사업을 추진은 한 것은 알지만 실행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결국 신뢰할만한 인력 송출입제도를 갖추고, 보다 저렴한 해외 가사 및 시터도우미 도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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