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의무 위반·과실범 공동정범 법리 관건
삼풍백화점·성수대교 사건서도 법리 활용
세월호 참사에서는 주의의무 위반 인정 안 돼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이 지난해 1월 4일 국회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1차 청문회'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는 모습 ./ 사진=연합뉴스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이 지난해 1월 4일 국회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1차 청문회'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는 모습.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검찰 수사심의위원회가 이태원 참사의 책임을 물어 최종 책임자인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을 재판에 넘기라고 의결했다.

김 청장이 사고를 예견(예견가능성)할 수 있었거나 참사의 결과를 막을(회피가능성) 수 있었는데도 주의의무를 위반했는지, 최종 책임자인 김 청장에게 과실범의 공동정범 법리(여러 사람의 과실이 합쳐져 하나의 죄를 구성한다는 법리)가 긍정되는지가 관건으로 보인다.

16일 검찰에 따르면, 강일원 전 헌법재판관을 위원장으로 한 수사심의위 현안위원 15명은 전날 회의를 열고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수사를 받아 온 김 청장에 대한 기소를 권고했다. 수사심의위원 15명 중 9명이 기소, 6명이 불기소 의견을 낸 것으로 파악됐다.

앞서 검찰 측은 수사심의위에 피의자들에게 ‘주의의무 위반’이 없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과실범인 업무상 과실치사상죄는 객관적 주의의무 위반이 요건 중 하나이며 나아가 피의자의 과실과 피해자의 사망·상해와 인과관계가 인정돼야 처벌할 수 있다. 검찰은 주의의무 위반이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고 본 것으로, 불기소 쪽에 무게를 실은 것이다.

그러나 수사심의위는 김 청장을 기소할 것을 검찰에 권고했다. 처분의 구체적인 판단 근거가 따로 공개되지는 않았으나, 주의의무 위반(예견가능성 및 회피가능성 입증)과 함께 과실범의 공동정범 성립을 긍정한 것으로 분석된다. 과실범의 공동정범이란 두 명 이상의 사람이 범죄를 공모하지 않았더라도 공동의 과실로 범죄 결과를 일으켰다고 인정되는 경우 공범으로 인정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 법원은 과실범의 공동정범을 인정하지 않다가 1962년 대법원 판결을 기점으로 과실범의 공동정범을 인정하고 있다. 이 법리는 과거 삼풍백화점 붕괴사건, 성수대교 붕괴사건, 세월호 침몰사건 등 다양한 사건에서 과실을 범한 다수의 행위자들을 효과적으로 처벌하고 구체적 타당성을 도모하는 유용한 논리로 기능했다. 이 사건을 검찰에 넘긴 경찰 특수본은 1997년 성수대교 붕괴사고를 참고해 과실범 공동정범의 판례를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사 사례로는 지난해 4월 고(故) 백남기씨 사망 사건으로 기소된 구은수 전 서울경찰청장이 대법원에서 유죄를 최종 선고받은 사건이 있다. 당시 대법원은 경찰의 위법·과잉 시위 진압에 대해 최종 지휘권자인 구 전 청장의 주의 의무 위반이 인정되며 직접 시위 진압에 관여한 경찰관과 함께 형사 책임이 인정될 수 있다는 선례를 제시했다.

반면 지난해 11월 대법원은 세월호 참사 당시 초동 조치에 문제가 있었다는 이유로 기소된 김석균 전 해경청장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은 해경 지휘부가 대형 인명피해를 예견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고 주의의무 위반을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이태원 참사와 관련 김광호 청장의 운명은 과실범의 구성요건(주의의무 위반 등)이 공동으로 긍정되는지, 이 공동의 주의의무 위반과 결과발생 사이에 인과관계가 긍정되는지 등으로 결정될 전망이다.

서울서부지검은 “현재까지의 수사결과와 수사심의위에서 심의·의결한 내용을 종합해 증거, 사실관계 및 법리를 면밀하게 분석한 다음 최종적인 처분을 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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