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생존 위한 신성장동력 확보에 투자금 대부분 집행 예정
실적 악화에 신용등급 강등···투자 규모·속도 조절로 재무 상황 개선 노력

롯데케미칼 전남 여수 공장 전경. / 사진=롯데
롯데케미칼 전남 여수 공장 전경. / 사진=롯데

[시사저널e=유호승 기자] 석유화학업계의 ‘보릿고개’가 계속되는 중이다. 글로벌 경기침체로 전방산업 수요가 크게 줄어든 동시에 중국은 생산설비를 대규모 증설하면서 공급과잉 이슈까지 겹쳤다. 수익지표인 에틸렌 스프레드(에틸렌에서 나프타를 뺀 값)는 손익분기점인 300달러를 넘기지 못하고 200달러 안팎에 머물며 생산라인 가동이 손해인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이로 인해 국내 관련 기업은 기존 사업으로는 기업 생존이 어렵다는 판단에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위해 자금을 쏟아 붓는 양상이다. 그러나 제품 판매량 및 실적감소로 재무상황이 좋지 않은 시점에 설비에 큰 투자를 실시할 예정이어서 재무부담이 커질 것으로 확실시된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LG화학과 롯데케미칼, 한화솔루션, 금호석유화학 등의 내년 설비투자 계획 규모는 약 11조원이다. 이 중 절반 수준인 5조원이 LG화학의 몫으로 투자금 대부분을 신성장동력으로 점찍은 전지 재료와 친환경 소재, 글로벌 신약 등 3대 분야에 활용할 방침이다.

다만 본업인 석유화학 분야의 부진으로 투자에 쓸 자금여력이 부족하다. 대표적으로 LG화학의 3분기 기준 보유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2019년 2조547억원 ▲2020년 3조5390억원 ▲2021년 4조2790억원 ▲2022년 4조9118억원 ▲2023년 8조8809억원이다.

최근 5년간 4배가량 늘었지만 문제는 차입금 역시 큰 폭으로 증가했다는 점이다. 2019년 3분기 8조9540억원이던 차입금은 올해 21조9076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현금보다 차입금이 많아 안정적인 현금흐름 구축이 어려운 상황이다. 무리한 투자로 재무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LG화학뿐만 아니라, 다른 석유화학 기업 역시 비슷한 실정이다.

계획한 설비투자를 이어가기 위해선 빚을 더 내야만 하는데, 이 과정에서 유동성에 ‘빨간 불’이 켜져 신용등급이 하락하기까지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이다.

/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글로벌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올해 중순 LG화학의 신용등급을 BBB+(긍정적)에서 BBB+(안정적)로 내렸다. S&P는 배터리 사업 외 석유화학 분야 등의 영업현금흐름이 크게 나아지지 않을 것으로 예상해 신용등급을 하향조정했다고 알렸다. 아울러 현재보다 더욱 악화된 실적을 기록한다면 추가 조정할 가능성도 있다고 경고했다.

롯데케미칼 역시 올해 AA+(부정적)에서 AA(안정적)으로 신용등급 전망이 낮아졌다. 한국기업평가는 “중국 중심의 공급과잉 심화와 나프타 가격 급등으로 원가 부담이 더욱 커져 실적이 크게 하락했다”며 “화학 사업 비중이 높은 사업구조인 만큼 실적 저하 폭이 두드러진다”고 등급 조정 이유를 밝혔다.

시장에서는 사업다변화가 기업의 지속생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지만, 진행 시기가 좋지 않다고 판단한다. 2025년까지 중국이 석유화학 제품의 초과 생산에 나설 것으로 보여, 공급과잉 이슈가 더욱 심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시기에 무리한 투자가 오히려 해당 기업의 ‘발목’을 잡을 것이란 분석이다.

무리한 포트폴리오 전환을 위한 설비투자 계획을 수정하지 않으면 재무 위험도가 상승해 신용등급이 추가 하락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유준위 한국기업평가 수석연구원은 “석유화학 기업의 저하된 이익창출력 및 과도한 투자계획을 감안하면 앞으로 채무 상환 능력이 더 낮아질 것”이라며 “신용이 불안한 상황이 당분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석유화학 기업은 한계사업 정리 및 유휴 부동산 매각 등으로 투자금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 아울러 신용평가사의 등급 하락 압박이 거세지면서 예정된 계획의 일부 수정도 고민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석유화학 사업의 수익성 저하가 심각한 가운데 신규 투자 규모가 늘어날수록 재무부담이 커진다는 것을 모르는 기업은 없다”며 “다만 신성장동력을 확보하지 않으면 실적하락이 계속될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는 상황에 투자를 멈출 수는 없어 자금 투입량을 일부 축소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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