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 이후 여론전, 민사소송·형사고소로 확전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사진=연합뉴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이 법정 밖 장외전으로 번진 한해였다. 재산분할에서 사실상 완패한 노 관장이 2023년 항소심에 돌입해 여론전에 적극 나선 까닭이다. 최 회장은 맞대응하는 것을 넘어서 노 관장의 대리인을 형사고소하기도 했다. 두 사람의 이혼소송이 여론·고소전으로 확전하며 감정싸움이 심화하는 모양새다.

최 회장은 지난 2020년 1월 노 관장을 상대로 이혼을 청구했다. 2017년 신청한 이혼 조정이 합의에 이르지 못해서다. 이혼에 반대했던 노 관장은 2019년 12월 이혼에 응하겠다며 반소를 냈고, 위자료 3억 원과 최 회장이 보유하던 SK(주) 주식 중 42.29%(650만 주)를 지급하라고 요구했다. 재벌총수의 장남과 대통령의 딸이 만난 ‘세기의 결혼’이 파경을 맞았다는 점과 재계 2위 SK의 지분율에 변동이 생길 수 있다는 점에서 여론의 관심이 쏠렸다.

최 회장은 1심에서 웃었다. 유책배우자(최 회장은 혼인파탄을 주장하고 있다)인 자신의 이혼 청구가 기각됐으나 노 관장의 반소가 인용되면서 만족적 결과를 얻었다. 재산분할로 665억 원, 위자료 명목으로 1억 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에도 불구하고 최대 쟁점이었던 SK(주) 주식이 분할대상으로 인정되지 않으면서 사실상 완승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항소심에 돌입한 노 관장은 독기를 품은 듯하다. 1심보다 노골적인 전략을 세웠다. 사적 분쟁인 이혼소송을 언론인터뷰 통해 공적 관심사로 전환하고, 최 회장이 유책배우자라며 비판한 것이다. 노 관장과 인터뷰를 진행한 법률신문은 ‘재판에 영향을 미치려 한다’는 비판도 받았다. 최 회장 측은 가사소송법상 보도금지 조항을 거론하며 법적 조치까지 예고했다. 그러나 노 관장 등은 이 사건이 통상의 재산분할 사건과는 달리 공적 관심의 영역에 있고, 1심 판결이 ‘가사노동에 의한 간접 기여와 사업용 재산의 분할’이라는 사회적 이슈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보도의 가치가 있다고 반박했다.

노 관장은 지난달 11일 열린 당사자의 출석의무가 없는 항소심 첫 변론기일에 참석했다. 이례적으로 카메라 앞에 서기도 했다. 그는 형식적이지만 언론 인터뷰에 응하며 ‘여론전’에 힘을 실었다. 자녀들도 노 관장을 거들었다. 지난 5월 차녀 최민정씨를 시작으로 장남 최인근씨, 장녀 최윤정씨 등 3남매가 항소심 재판부에 탄원서를 낸 것이다. 최 회장은 세 자녀의 탄원서 제출을 예상하지 못했으며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는 후문이다.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9일 오후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SK 최태원 회장과의 이혼 소송 항소심 첫 변론준비기일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지난 11월9일 오후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SK 최태원 회장과의 이혼 소송 항소심 첫 변론준비기일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부동산 인도·손해배상 소송 이어져···“감정 싸움”

이혼 항소심 서면 공방이 한참이던 지난 4월, SK이노베이션은 아트센터 나비 미술관을 상대로 부동산인도 소송을 제기한다. 2019년 9월을 기점으로 임대차 계약이 종료됐는데도 아트센터 나비 측이 무단으로 공간을 점유하고 있다는 게 청구 사유다. SK그룹이 2000년 워커힐 미술관을 계승해 설립한 아트센터 나비 미술관은 SK서린빌딩 4층에 있다. SK그룹의 실질적 본사격인 해당 빌딩에는 SK그룹 계열사들이 대거 입주해 있다.

임대차 계약 만료에 따른 부동산 인도 청구라는 SK이노베이션의 주장이 업계에서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는 아니다. 이혼 소송 중인 두 사람의 감정싸움이 부동산 소송으로 확대된 것이라는 게 지배적 시각이다. 조정이 결렬된 부동산 인도 소송은 내년 정식재판에 돌입한다.

부동산 소송보다 보름정도 앞선 지난 3월 노 관장은 최 회장의 동거인 김희영 티앤씨재단 이사장을 상대로 낸 30억대 손해배상 소송도 냈다. 자신의 혼인생활 파탄에 김 이사장의 책임이 있고, 이로 인해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는 이유에서다. 노 관장은 언론에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김 이사장을 상간녀(相姦女)라고 표현하는 등 부정적 감정을 감추지 않았다.

특히 노 관장의 대리인은 이 사건 변론준비기일 이후 언론 인터뷰과정에서 ‘최 회장이 김 이사장 측에 1000억 원을 증여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비공개로 진행된 사건의 쟁점을 대외적으로 공표한 이례적인 태도였다.

최 회장과 김 이사장 측은 별도의 입장문을 내 1000억 원 증여 주장은 사실 왜곡이자 악의적 허위사실 유포라고 반발했다. 재판부의 자제 요청에도 허위사실 공표의 정도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최 회장의 법률 대리인단은 해당 발언을 한 노 관장 측 대리인(이아무개 변호사)을 형법·가사소송법·금융실명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으며, 이를 지시·교사했거나 관여한 공범까지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예고했다. 최 회장은 민사소송에서의 소멸시효 만료 등(불법행위 사실을 안 날로부터 3년)을 근거로 노 관장이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승소할 가능성이 없다고도 주장한다. 노 관장은 최 회장과 김 이사장의 부정행위를 2005년부터 짐작했고, 2011년 9월부터 최 회장과 별거했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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