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제조사 할인해도 이자·충전비·세금 부담에 기피
흔치 않은 고급차 할인혜택은 반겨···“인센티브 유지해야”

전기차 내수 판매 추이. /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전기차 내수 판매 추이. /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시사저널e=최동훈 기자] 정부와 완성차 업체들이 최근 보조금, 할인 공세를 펼치고 있지만 국산 전기차 수요는 좀처럼 늘지 않고 있다. 인기있는 고급 수입차 업체들이 파격적인 가격 인하 혜택으로 전기차 판매실적을 개선하고 있는 것과 대조되는 흐름이다.

4일 업계에 따르면 올해 국산 전기차 판매실적이 전년 대비 두 자릿수 감소폭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 1일 현대자동차, 기아가 배포한 지난달 판매실적 자료에 따르면 승용 모델 중 아이오닉5 1만5814대(전년비 –40.7%), 아이오닉6 9101대(-11.1%), EV6 1만6534대(-30.0%)씩 기록했다. 국내 전기차 보급대수를 견인해온 국산 1톤 전기트럭 2종 중 하나인 봉고Ⅲ EV(1만4931대)는 전년 대비 감소폭(-2.5%)을 보일 정도다.

이는 해외 인기 수입차 업체의 전기차 판매실적과 상반되는 기록이다. 포르쉐의 전기 스포츠카 타이칸은 지난 10개월간 전년(1034대) 대비 27.5% 증가한 1318대 판매됐고, 같은 기간 테슬라 모델Y도 6073대에서 57.2%나 증가한 9544대를 찍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가 집계한 결과 지난 1~10월 수입 전기차 판매대수는 전년동기(1만8616대) 대비 11.6% 증가한 2만780대다.

해당 기간 국내 전체 전기차의 판매 실적이 감소해, 국산 전기차의 감소세가 더욱 부각된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 1~10월 국내 전기차 판매대수는 전년 대비 4.3% 감소한 13만539대에 그쳤다. 올해 월평균 전기차 판매대수를 남은 두 개월간 기록할 것으로 가정해도 올해 전기차 보급 규모가 15만6647대로 전년 판매대수(15만7264대) 보다 적다.

아이오닉5 / 사진=현대차
아이오닉5. / 사진=현대차

◇아이오닉5, 전년 430만원 인상···보조금 늘려도 고금리에 ‘주춤’

국산 전기차가 수입 고급 전기차에 비해 판매되지 않는 것은 보급형 자동차 시장에서 기대하는 것보다 높은 가격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예를 들어 현대차 아이오닉5의 최저가(롱레인지 기준)는 친환경차 세제혜택 적용 후 5410만원(익스클루시브 트림)으로, 지난해(4980만원)보다 430만원(8.6%)이나 인상됐다.

연식변경 모델인 점을 고려하면 가격 인상폭이 너무 크다는 지적이다. 당시 개별소비세율이 이날 현재 5.0%에 비해 인하한 3.5%로 적용됐고 전기차 구매 국고 보조금이 올해보다 100만원 더 높아, 현재 고객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 같은 상황을 고려해 정부와 완성차 업체가 할인 혜택으로 구매를 유도하지만 여의치 않은 실정이다. 정부가 지난 10월부터 개정된 전기차 구매 보조금 업무처리지침에 따라 연말까지 전기차 구매 국고 보조금의 최고액을 기존 680만원에서 780만원으로 100만원 높였다. 완성차 업체가 책정한 차량 판매가 할인폭에 따라 100만원 범위 내에서 추가 할인이 차등 적용된다.

이에 더해 현대차, 기아는 지난달 아이오닉5·6, EV6 등 일부 전기차의 할인폭을 지난달 400만원대에 이어 이달 300만원대로 정하고 판매촉진을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달 각 모델의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두 자릿수로 줄어, 판촉 효과를 전혀 누리지 못하는 실정이다.

전기차,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가 이용 가능한 충전기. / 사진=연합뉴스
전기차 충전소. / 사진=연합뉴스

◇소비자들 “충전요금·세금 인상하면 전기차 안 사”

소비자들은 전기차의 또 다른 장점이었던 유지비 절감 효과가 갈수록 줄어들 가능성 때문에 전기차 구매를 더욱 기피하는 경향을 보인다. 최근 국내 유일한 전력공급 주체인 한국전력의 만성 적자로 국내 전기요금 인상 가능성이 커지는 상황이다. 휘발유 대비 3분의 1 수준에 불과한 전기차 배터리 충전 요금이 오를수록 전기차의 매력도가 더욱 떨어진다는 분석이다.

이 뿐 아니라 현재 5%를 넘는 신차 할부금리가 내년 인하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 점은 차량 유지비 부담을 키우는 요인이다. 이밖에 정부가 상대적으로 비싼 전기차에 내연기관차보다 더 적은 자동차세가 부과되는 점을 반발한 여론을 의식해 전기차 자동차세를 높이려 하는 점도 전기차 구매심리를 위축시키고 있다.

누리꾼 A씨는 전기차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 “전기차를 보조금 적게 받고 비싼 돈 주고 샀지만 유지비 절감 효과를 생각해 열심히 타고 있다”며 “이 와중에 자동차세, 충전요금 올린다는 얘기 들리면 뭣 하러 전기차를 샀나 후회스럽다”고 성토했다.

타이칸. / 사진=포르쉐코리아
포르쉐 타이칸. / 사진=포르쉐코리아

◇고급차 소비자들은 할인에 반색 “왠 떡이냐”

고급 전기차 시장은 보급형 국산 전기차 시장과 사뭇 다른 분위기다. 업체별 지사와 딜러사가 합작해 수천만원의 할인 혜택을 제공한 결과 판매실적 상승세가 이어지는 중이다. 이는 해당 브랜드의 차량 소유를 선망하는 소비자들이 정가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차량을 구매할 수 있고, 이후 유지비가 내연기관차에 비해 현저히 적은 덕분이라는 분석이다.

예를 들어 포르쉐 코리아는 자체 프로모션을 거의 실시하지 않지만, 딜러사가 재량껏 고객에게 타이칸 재고 물량에 1000만원 정도의 할인혜택을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완성차 소비자들이 ‘선망’하는 브랜드 중 하나인 포르쉐의 모델을 흔치 않은 프로모션 혜택을 누리며 보유할 기회를 얻는 것에 열광한다는 분석이다.

이는 벤츠 EQ 시리즈, BMW i4 등 인기 브랜드의 전기차가 올해 판매 신장세를 보인 점에도 적용할 수 있는 현상이라는 관측이다. 실제 벤츠 코리아는 이달 EQE SUV 등 일부 전기차 모델을 구매하는 고객이 5000만원 안팎의 선수금(30%)을 내면 무이자 혜택(60개월 할부 기준) 을 적용하는 등 파격적인 프로모션을 진행 중이다. 고객층마다 다른 구매심리는 고급차 브랜드와 보급형 전기차 브랜드의 할인 전략이 다른 결과를 내는 이유로 지목된다.

누리꾼 B씨는 포르쉐 타이칸에 대해 “쉽게 말해 판매사가 유지비 다 대주고 꿈의 차를 가지게 되는 셈”이라며 “형편이 되면 나도 사고 싶다”고 댓글을 남겼다.

국립중앙과학관에 설치된 E-pit(이피트). / 사진=현대차
국립중앙과학관에 설치된 초급속 충전소 이피트(E-pit). / 사진=현대차

◇소비자들, 충전시간·주행거리 걱정 여전

이밖에 주행거리 불안, 화재 우려 등 전기차 운행 중 불편사항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전기차 확산을 막는 요인이다. 실리콘 음극재 개발업체 트루윈이 최근 국내 소비자 2004명에게 ‘전기차에 개선돼야 하는 부분’을 설문한 결과 ‘배터리 충전시간’(43.5%)을 가장 많이 꼽았다. ‘완충 후 주행거리’(34.8%), ‘차량 가격’(16.0%) 등으로 그 뒤를 이었다.

최근 ‘전기차 택시 화재’ 등 보도가 잇따르면서 전기차 운행 중 유사시 인명, 재산 피해에 대한 걱정이 커지는 점도 전기차에 대한 소비자 발길을 돌리고 있다. 여전히 시내 일부 기계식 주차장에는 ‘전기차 주차 금지’ 팻말이 붙어있는 등 전기차 고객 차별의 소지가 있는 분위기가 이어지는 실정이다. 배터리 안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되자, 국토교통부가 2025년 2월부터 배터리 안전성에 대한 장관 인증 획득을 의무화하는 자동차관리법 개정을 추진할 정도다.

업계에서는 전기차 수요의 확대, 감축 요인이 혼재하는 전기차 시장 흐름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내년 아이오닉9, EV3·4, 이쿼녹스EV 등 신차가 출시돼 수요를 유발하는 한편 정부가 전기차 충전 인프라 확충에 올해(5189억원) 대비 증액한 예산(7399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반면 정부가 전기차 보조금을 줄이는 점은 수요 감소 요인으로 예상된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전기차 구매를 부추길 요인인 구매 보조금과 세제혜택 등 인센티브를 축소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국모빌리티자동차산업협회(KAKA)는 “국내 자동차업계는 전용공장 신설 등 대규모 투자를 통해 전기차 생산을 확대하고 있으나 최근 전기차 판매 감소로 어려움에 직면했다”며 “현행 수준의 구매 보조금과 세제혜택 등 재정적 인센티브의 중기적 유지가 필요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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