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타·파사트·아테온 판매 위축···“SUV 인기에 밀려”
전기차 판매 확대 위한 자금 확보차 가장 먼저 ‘손절’

폭스바겐이 내년 1분기 유럽에서 출고 개시할 중형차 올 뉴 파사트. / 사진=폭스바겐
폭스바겐이 내년 1분기 유럽에서 출고 개시할 중형차 올 뉴 파사트. 세단 모델이 없어지고 왜건형으로만 판매된다. / 사진=폭스바겐코리아

[시사저널e=최동훈 기자] 폭스바겐이 전동화 전환을 위한 수익성 개선의 큰 그림 아래 글로벌 시장에서 세단 모델을 순차적으로 단종시키고 있다. 유력 브랜드인 폭스바겐의 세단 단종 결정은 세계 완성차 시장의 흐름을 보여주는 단적 사례라는 관측이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폭스바겐은 내년 1분기 유럽에 중형 모델 파사트(Passatt)의 9세대 완전변경모델을 왜건(wagon) 모델로만 출시할 계획이다.

지난해 한국에서 판매 중단되기도 한 파사트는 그간 해외 일부 시장에서 세단, 왜건 두 차종으로 판매돼 왔지만 저조한 판매실적을 면치 못했다. 더 비싸지만 실용적인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으로 수요가 몰렸기 때문이다. 폭스바겐은 판매 부진을 고려해 앞서 유럽, 미국 등 주요 시장에서 파사트 세단의 생산을 중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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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스바겐의 준중형 세단 제타. / 사진=폭스바겐코리아

폭스바겐 고급 세단인 준대형 모델 아테온(Arteon)도 내년까지만 생산될 예정이다. 아테온은 각종 첨단 기능과 강한 주행성능, 고유 디자인으로 차별화했지만 부진한 판매성과를 보였다. 미국 자동차 전문 매체 굿카배드카(GoodcarBadcar)에 따르면 아테온의 현지 판매량은 2021년 5537대에서 지난해 1178대로 78.7% 감소했다.

반면, 소형 세단인 폭스바겐 제타는 미국에서 수만대 판매되는 등 호응을 얻고 있어 단종 소식이 들려오지 않고 있다. 다만 코로나19 창궐 직전인 2019년 미국에서 10만대 넘게 판매된 데 비해 지난해 3만4000여대를 기록하는데 그쳐 후속 개발 여부가 불투명해졌다. 제타는 미국에 비해 인기를 얻지 못했던 유럽에서 지난 2020년 일찌감치 판매중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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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스바겐의 미국 내 세단 판매실적 추이. / 그래픽=김은실 디자이너

◇전기차 판매 확대 위해 수익성 제고에 집중

폭스바겐의 세단 배제 결정은, 오는 2030년 대다수 신차 판매 비중을 전기차로 채우려는 라인업 전략의 일환인 것으로 분석된다. 폭스바겐은 2030년 신차 판매량 중 전기차 비중을 유럽 80%, 북미 55% 달성한다는 목표를 수립했다. 올해 들어 9개월 간 폭스바겐의 승용, 상용 전기차 판매 비중은 전년 동기(8.2%) 대비 5.6%P 증가한 13.8%로 집계됐다.

폭스바겐 경영진은 전기차 판매 비중을 늘리고 시장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사업 수익성 강화에 경영 초점을 맞췄다. 폭스바겐을 비롯한 그룹 산하 브랜드들은 과거 대규모 리콜 이슈에 대응해 천문학적 규모의 비용을 투입하고도 흑자 기조를 유지해왔다.

다만 폭스바겐은 내연기관을 개선하는 동시에 전동화 브랜드로 전환하는데 적극 투자함에 따라 사업 수익성을 일부 상실했다. 실제 폭스바겐의 영업이익률은 올해 세 분기 3.4%로 스코다(6.4%), 세아트(4.6%) 등 권역별 브랜드 뿐 아니라 프리미엄 브랜드 아우디(9.1%)에 비해 낮다. 이를 고려해 폭스바겐은 오는 2026년 영업이익률 6.5%를 목표로 삼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방안으로 라인업을 쇄신 중이다.

토마스 셰퍼 폭스바겐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5월 “앞으로 소수의 핵심 모델에 초점 맞출 것”이라며 “이를 통해 (라인업의) 복잡성을 줄이고 더 높은 수익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수익성을 위해 내연기관 세단을 포기하는 사례는 다른 주요 브랜드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볼보는 영국에서 대형 세단 S90의 판매를 중단했고 닛산도 북미 시장을 겨냥해 개발, 출시했던 알티마(Altima), 베르사(Versa)를 오는 2025년 단종시킬 것으로 알려졌다. 모두 적은 수요 때문이다.

폭스바겐의 중형 전기 세단 ID.7. 내년 하반기 해외 출고될 예정이다. / 사진=폭스바겐
폭스바겐의 중형 전기 세단 ID.7. 내년 하반기 해외 출고될 예정이다. / 사진=폭스바겐코리아

◇폭스바겐, 전기차 ID.7로 세단 명맥 잇는다

폭스바겐이 외국 뿐 아니라 현재 한국에서 판매 중인 세단 모델인 제타, 아테온을 판매 중단할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각 세단의 인기가 과거에 비해 시들해진 것은 해외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분석이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지난 1~10월 모델별 판매량은 제타 795대, 아테온 894대 등 2023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 1619대에 비해 404대 증가한데 그쳤다. 지난 10개월간 폭스바겐 전체 판매량 7819대의 26%를 차지했지만, 전년동기(1만1170대) 대비 실적 감소폭을 상쇄하기에는 부족했다는 평가다.

폭스바겐이 세단을 완전히 버리는 것은 아니다. 내년 하반기 해외에서 출고 개시할 중형 전기차 ID.7로 세단의 명맥을 이어간다는 전략이다. 업계에서는 SUV 대세에 직면한 폭스바겐이 전기차 시장에서 세단의 가치를 고객에게 지속 제공하려는 점에 점수를 주고 있다.

친환경차 전문매체 그린카 콩그레스는 “일부 완성차 업체들이 세단을 라인업에서 배제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폭스바겐은 이 가운데 (세단인) ID.7의 매끄러운 외관이 큰 이점을 제공할 것이라는 점을 상기시키고 있다”고 평가했다.

지난 4월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에서 아이오닉6와 그랜저, 쏘나타가 같은 라인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 사진=현대자동차
지난 4월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에서 아이오닉6와 그랜저, 쏘나타가 같은 라인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 사진=현대차

◇현대차·기아도 세단 모델 정리 분위기

한편 글로벌 3위 전기차 브랜드로 발돋움한 현대자동차그룹도 세단 라인업 배제를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내년 기아가 준중형 세단 K3를 국내 단종시키고 해외 일부 시장에 판매할 모델만 생산할 것이라는 추측이 제기된다. 현대차의 중형 세단 쏘나타도 차기 단종 모델로 업계에서 자주 언급되고 있다. 두 모델의 올해 판매실적은 K3 1만430대, 쏘나타 2만9581대로 전년동기 대비 20~30%대 감소폭을 보였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는 쏘나타를 만들던 아산공장 라인의 일부를 이미 전기 세단 아이오닉6 생산 공정으로 전환했다”며 “기아도 K3를 만들던 화성2공장에서 소형 전기차 EV4를 생산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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