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안 시정연설, 국회 심의 본격화···尹 “생계급여 인상, 취약층 지원 강화”
R&D 예산 삭감 불가피성도 강조···야당, 경기침체 속 긴축재정 부적절 기류  

[시사저널e=최성근 기자] 윤석열 대통령의 시정연설을 계기로 국회도 내년도 예산안 심의에 본격 돌입한다. 정부의 건전재정 기조와 대규모 세수감소 영향으로 강도 높은 긴축 예산안이 제출됐으나, 대내외 여건 악화로 경기침체 우려가 커지고 있어 정부 예산안 방향의 적절성을 놓고 여야간 진통이 예상된다. 
  
31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내년도 예산안 심의를 위한 정부와 국회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이날 윤석열 대통령은 국회 시정연설에서 건전재정, 취약계층 보호에 방점을 둔 내년도 정부 예산안 취지를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모든 재정사업을 제로 베이스에서 검토해 예산 항목의 목적과 취지에 맞지 않는 지출, 불요불급하거나 부정 지출이 확인된 부분을 꼼꼼하게 찾아내 지출 조정을 했다”며 “이를 통해 마련된 재원은 국방, 법치, 교육, 보건 등 국가 본질 기능 강화와 약자 보호, 그리고 미래 성장 동력 확보에 더 투입하겠다”고 말했다. 경제가 어려울 때일수록 어려움을 더 크게 겪는 서민과 취약계층, 사회적 약자를 더욱 두텁게 지원하겠단 뜻도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이 31일 국회 본회의에서 2024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에 대해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31일 국회 본회의에서 2024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에 대해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윤 대통령 “R&D 예산 삭감, 취약계층 지원 강화”

윤 대통령은 예산안 설명 상당 부분을 연구개발(R&D) 예산에 할애했다. R&D 예산은 2019년부터 3년간 20조원 수준에서 30조원까지 10조원 가량 급증했으나, 내년엔 5조2000억원 삭감되면서 야당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됐다. 

윤 대통령은 “원천 기술, 차세대 기술, 최첨단 선도 분야에 대한 국가 재정 R&D는 앞으로도 계속 발굴, 확대해 미래 성장 동력을 이끌겠다”며 “중소기업들이 자금 여력 부족으로 투자하기 어려운 기술 개발 분야와 인공지능, 머신러닝, 자율주행 등의 딥테크 분야에 대한 R&D 투자도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R&D 예산은 향후 계속 지원 분야를 발굴해 지원 규모를 늘릴 것이지만, 일단 이번에 지출 구조조정을 해서 마련된 3조4000억원은 약 300만 명의 사회적 약자와 취약계층을 더 두텁게 지원하는 데 배정했다”며 “최근, 국가 재정 R&D의 지출 조정 과정에서 제기되는 고용불안 등 우려에 대해서는 정부가 세심하고 꼼꼼하게 챙기고 보완책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내년 정부 예산안에선 생계급여 지급액을 4인 가구 기준 162만원에서 183만4000원으로 21만3000원 인상했다. 중증 발달 장애인 대상 1:1 전담 서비스 제공, 가족 돌봄이 불가능한 경우 제공하는 개별 돌봄 시범 서비스의 전국 확대를 통한 24시간 지원체계 구축을 위한 예산도 편성했다. 

자립준비청년 지급 수당을 매월 10만원씩, 25%를 인상하고 기초 차상위 모든 가구 청년들에게 대학등록금 전액을 지원한다. 소상공인 저리 융자 제공 및 고효율 냉난방기 구입 비용을 최대 500만원 지원한다. 출산, 양육 부담을 줄이기 위해 부모 급여를 인상하고, 출산 가구에 공공 분양 주택과 임대주택을 우선 배정한다. 양질 일자리 창출과 성장동력 확보에도 중점을 뒀다. 

윤 대통령은 “원전, 방산, 플랜트 분야의 해외 수주 지원을 위해 수출금융 기관의 자본금을 보강해 수출금융 공급을 확대하겠다”며 “AI, 바이오, 사이버 보안, 디지털플랫폼 정부 구축에 4조4000억원을 투자하고, 공급망 불안정에 대비하기 위해 핵심 광물의 공공 비축도 늘리겠다”고 했다.

치안, 국방, 행정서비스 등 강화를 위한 예산 중요성도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묻지마 범죄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 경찰 조직을 치안 중심으로 개편하고, 경찰 예산도 치안 역량을 제고하는 데 중점 배정하겠다”며 “하천 준설과 정비를 다시 본격 추진하고 전국 하천에 홍수 조기 경보망을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군 초급간부의 단기복무장려금을 인상하고, 전방의 ‘녹물 관사 제로화’를 신속히 추진해 국가안보와 국민의 안전을 위해 헌신하는 군 장병들의 후생을 향상시키겠다”며 “병 봉급은 내년도에 35만원을 인상해 2025년까지 ‘병 봉급 205만원’ 달성을 차질없이 추진하겠다”고 했다.
반도체, 이차전지 클러스터 인프라 사업과 고속철, 신공항 건설 사업 등 민간 투자를 이끌어 낼 국가 재정 인프라 예산이 적기에 집행해야 한단 점을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정부가 마련한 예산안이 차질 없이 집행돼 민생의 부담을 덜어드릴 수 있도록 국회의 적극적인 관심과 협조를 다시 한번 부탁드린다”고 요청했다.

/ 표=정승아 디자이너
/ 표=정승아 디자이너

◇심의 과정서 예산 확대 요구 전망···野 “경기침체 속 건전재정 부적절”

윤 대통령 시정연설을 계기로 국회도 본격적으로 내년도 예산안 논의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건전재정을 전면에 내세웠지만 대내외 경제여건이 어려운 점을 감안했을 때 재정당국이 방향타를 잘못잡았단 지적도 있어 논의에 진통이 예상된다. 

이날 국회예산정책처가 주최한 2024년 예산안 토론회에서 최병권 예정처 예산분석실장은 “경기둔화, 금리상승 등 어려운 경제여건을 고려할 때 재정의 역할 증대가 요구되는 상황”이라며 “재정지출의 효과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으며 연내 집행 가능성이 낮은 예산 등의 조정을 통해 R&D, 민간투자 활성화 등에 재원을 재배분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야당 간사인 강훈식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수출로 먹고사는 대한민국이 대외불확실성이 계속 커져가 정부의 특단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 국민 모두 공감하는 지점”이라며 “반면 정부의 건전재정은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상황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겠단 선언”이라고 말했다.

정권이 정치적 과정을 겪으며 재정건전성을 훼손할 유혹에 빠지기 쉬움에도 재정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예산안을 편성한 것은 긍정적이지만, 현재 경제상황이 재정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한 상태란 점도 감안해야 한단 진단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현 상황에선 긴축, 증세 자체가 목적이나 원칙은 아니란 사실에 입각해 정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며 “기업실적에 따른 법인세 감소, 부동산 주식시장 부진에 따른 양도소득세 감소, 소비회복이 충분하지 않음으로 인해 발생하는 부가가치세 감소 등 세수 감소의 원인은 기본적으로 경기 부진과 매우 관련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경제 부진 하에선 정부가 보다 적극적인 지출을 하는 부분이 타당성이 있다”며 “국채 발행 등에 재정당국이 꺼려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지만, 현 경기상황에선 이러한 재원 조달에 대해서도 좀 더 적극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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