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당국 요구에 화물운송사업 매각 추진하다 반발 직면
대한항공, 인수 과정에 약 1조원 투입···인수 무산시 매몰
과거 유럽 항공사들 만성적자 콩코드 퇴역으로 손해 본 사례 재현 우려···대한항공 인수·무산 갈림길 서

민주노총 산하 전국공공운수노조 아시아나항공 노동조합이 24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대한항공 기업결합을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민주노총 산하 전국공공운수노조 아시아나항공 노동조합이 24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대한항공 기업결합을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최동훈 기자]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위해 거액을 들여 사업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아시아나항공의 경쟁력 약화를 우려한 반발에 직면했다. 과거 유럽 항공사들이 대규모 투자 때문에 저수익의 초음속 비행기 콩코드를 놓지 못해 큰 손해를 입었던 사례가 국내 재현될 우려도 제기된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현재 유럽연합(EU) 당국 요구에 따라 아시아나항공의 화물운송사업 부문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EU는 추후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면 양사 화물운송사업 부문의 경쟁력이 통합돼 유럽 화물 노선 내 경쟁을 제한할 수 있는 점을 우려한다.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위해 EU, 미국, 일본 등 세 권역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대한항공 입장에서는 각국 요구에 적극 부응해야하는 처지다.

하지만 아시아나항공 안팎으로 사업 매각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불거져 대한항공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 노조 산하 아시아나항공노조(일반노조)는 이날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기업결합 반대를 외쳤다.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려 주요 운수권(슬롯)을 외부 항공사에 넘기고 주력 사업인 화물운송 부문까지 넘기면 기업 역량이 크게 약화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일반노조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합병은 국익이나 국민의 편의, 항공산업의 발전을 위한 것이 아니라 아시아나항공 해체”라고 주장했다.

아시아나항공 사장 출신들로 구성된 전임 아시아나항공 사장단도 장외에서 목소리를 냈다. 사장단은 최근 아시아나항공 이사회에 보낸 서한을 통해 “산업은행이 아시아나항공을 회생불가 기업으로 인정받아 각국 규제를 피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잘못된 전제로 인수합병을 추진했다”며 “하지만 각국의 과도한 승인조건으로 인한 피해가 아시아나항공에 귀속되고 있다”며 화물운송사업 매각안 부결을 요청했다.

이밖에 아시아나항공 열린조종사노조, 한국민간항공조종사협회 등이 사업 매각 반대 입장을 밝혔다. 대한항공이 인수 후 일자리 보장, 1500억원 현금 즉각 지원 등을 설득책으로 내놓았지만 완강한 반대에 부딪힌 실정이다.

화물기로 개조한 항공기를 다시 여객기로 복원하는 모습. / 사진=아시아나
아시아나항공 직원들이 화물기로 개조했던 항공기를 여객운송 정상화에 발맞춰 여객기로 복원하고 있다. / 사진=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 아시아나 첫 흑자에 기여···코로나 시국엔 버팀목

아시아나항공의 화물운송사업 매각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불거져 나오는 것은 이후 기업 경쟁력이 크게 약화할 우려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아시아나항공은 지난 1989년 소규모의 국내선 운항을 시작으로, 1992년 11월 대한항공을 제치고 서울과 미국 로스앤젤레스(LA)를 오가는 세계일주 화물 노선에 국내 최초 취항하며 화물운송사업을 본격 전개했다. 올해가 아시아나항공 화물운송사업의 35주년인 셈이다.

아시아나항공의 화물운송사업은 1988년 회사 설립 후 5년 만인 1994년 흑자전환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 꼽힌다. 30여년 지난 후 맞닥뜨린 코로나19 시국에는 여객운송실적이 위축된 상황에서도 화물운송사업이 아시아나항공의 연간 적자 고리를 끊는데 기여했다. 아시아나항공이 향후 유사한 위기에 다시 놓였을 때, 화물운송사업이 효자 노릇을 할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대한항공은 최근 코로나19의 풍토병화(엔데믹) 이후 항공 운송량 증가로 아시아나항공 화물운송사업의 매출 비중이 20%대로 하락한 점을 매각 사유로 꼽는다. 다만 업계에서는 “항공운송은 원래 주기적인 사업”이라며 반박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사진=아시아나항공 홈페이지 갈무리.
아시아나항공 여객기. / 사진=아시아나항공 홈페이지 갈무리

◇미국·일본서 항공화물사업 적극 인수 “성장성 엿보여”

해외에서는 양사와 반대로 항공 화물운송사업의 성장 전망을 고려해 이를 적극 인수하는 사례가 나왔다. 일본 최대 항공사 전일본공수(ANA)는 해운사 일본우선주식회사(NYK)의 항공운송 자회사인 일본화물항공(NCA)을 100% 인수하기 위해 절차를 밟고 있다. 글로벌 항공운송 수요에 더욱 정밀하게 대응하기 위한 결단이다.

미국 자산운용사 아폴로(Apollo)도 지난 3월 항공운송 전문업체 아틀라스 에어 월드와이드를 인수해 글로벌 항공 화물 시장을 공략 중이다. 시장조사기관 글로벌마켓인사이트는 글로벌 항공화물 시장의 규모가 지난해 2000억달러(약 268조원)에서 연평균 5%씩 증가해 2032년 3000억달러(약 402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단기적으로는 올해 고물가로 인한 운송수요 위축으로 매출 감소가 예상되지만 전자, 의약품, 신선식품, 자동차 부품 등 제품의 운송량이 갈수록 늘어나 항공화물 시장을 성장시킬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 같은 시장 전망은 아시아나항공의 화물운송사업이 지닌 중요성을 부각시키는 부분으로 해석된다.

대한항공이 그간 인수를 위해 투입한 비용이 막대한 점은 퇴로를 막는 요인으로 분석된다. 대한항공은 지난 2021년부터 인수를 위한 계약금, 중도금 명목으로 1조원을 투입했다. 법률 자문을 구하기 위해 로펌에 들인 비용도 1000억원에 달한다.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지 못하면 모두 거둬들이지 못할 비용이다.

대한항공의 올해 2분기 영업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감소했다. / 사진=대한항공
대한항공 여객기가 이륙하고 있다. / 사진=대한항공

◇매몰비용에 대한항공 퇴로 막혀···만년적자 콩코드 전철 밟을라

업계에서는 현재 매몰 비용에 얽혀 있는 대한항공이 인수 성사를 위해 해외 당국의 무리한 요구를 들어주다가 경쟁력을 대폭 상실한 아시아나항공을 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는 1976년 유럽 항공사인 브리티시 에어웨이와 에어 프랑스가 개발했다가 만성 적자를 면치 못하고 운항 중단한 콩코드를 연상시킨다는 분석이다.

양사는 과한 소음과 적은 여객수송 능력, 연료효율 때문에 수익을 내지 못하면서도 1조6000억원에 달하는 개발 비용에 고착돼 콩코드를 30여년 만에 운항 중단했다. 이는 매몰비용 때문에 사업을 중도 포기하지 못하는 경제학적 개념 ‘콩코드의 오류(The Concorde Fellacy)’가 만들어진 계기가 됐다. 대한항공이 매몰비용을 포기하고 제3의 대안을 관망할지, 최종 인수해 경쟁력 쇄신을 굳건히 추진할지 갈림길에 서 있는 모양새다.

학계 일각에서는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국내 산업 경쟁력에 이로울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화물운송사업은 언제든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는 탄력을 갖춘 사업으로서, 대한항공이 인수 후 재확보 가능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휘영 인하공전대 항공경영학과 교수는 “슬롯이나 화물사업은 얼마든지 확장 가능한 탄력적인 사업 요소이기 때문에 대한항공의 먹거리 손실 우려는 없을 것”이라며 “자생력 없는 아시아나항공이 공중분해 돼 한국 항공운송산업의 경쟁력이 약화하는 것이 더 큰 손실이라는 논리가 존재하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