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남 조현문 ‘강요미수’ 재판서 父 조석래 비서실장 작성 메모 공개
계열사 법률적 이슈 놓고 “3형제 똑같이···빠지거나 일방 부담 안돼”
변호인 “배임 문제로 회사에 사임서 전달···막지 못하자 지분 기부”
증인 노재봉 세빛섬 대표이사 “배임 이슈 몰라···함께 경영하라는 취지”

/ 사진=시사저널e 자료
효성家 2남 조현문 전 효성 부사장.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조현문 전 효성그룹 부사장의 강요미수 형사재판에서 ‘법적인 문제가 발생하면 효성가(家) 3형제가 공동으로 책임을 져야한다’는 조석래 명예회장의 의지가 담긴 메모가 공개됐다.

조 명예회장의 전 비서실장이 작성한 이 메모를 놓고 조현문 전 부사장 측은 ‘계열사 간 부당지원’의 증거라는 취지로 신문했다. 회사의 잘못된 관행을 고치려 노력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고 내부고발로 이어졌다는 주장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6단독 최민혜 판사는 23일 강요미수 혐의로 기소된 조현준 전 부사장에 대한 4차 공판기일을 열고 조석래 명예회장의 비서실장을 지낸 노재봉 세빛섬 대표이사에 대한 증인신문을 진행했다.

조 전 부사장은 2013년 2~7월 부친인 조석래 명예회장과 친형 조현준 회장을 상대로 검찰에 비리를 고발하겠다며 자신이 회사 성장의 주역이라는 내용의 보도자료 배포와 비상장주식 고가 매입을 각각 요구하다 미수에 그친 혐의로 기소됐다. 이날 출석한 노재봉 대표이사는 조 전 부사장 측이 작성한 ‘보도자료’를 조 명예회장에게 직접 전달한 인물이다.

노 대표이사의 증언을 종합하면, 조 전 부사장은 효성 계열 8개사 이사직을 사임한다는 사임서를 수 차례 제출했다. 그러나 회사는 이사회 회의록을 허위로 작성하거나 이사진 명단을 거짓 공시하는 방법으로 조 전 부사장의 회사 내 주주의 지위를 유지시켰다.

자신의 사임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대리인을 회사로 보내 보도자료 배포를 요구했다는 게 조 전 부사장 측의 주장이다. 이 과정에서 노 대표이사가 ‘조석래 명예회장의 지시사항이다’며 조 전 부사장의 대리인인 공아무개 변호사에게 전달했다는 메모가 공개됐다.

노 대표이사가 자필로 작성한 메모에는 ‘두미(두미종합개발)는 문제가 되어도 3형제가 똑같이 부담받아야지, 누구는 빠지고 누구는 부담질 수는 없는 문제다’라는 내용이 담겼다. 조 전 부사장의 변호인은 해당 메모를 작성한 배경과 그 의미를 물었다.

이에 노 대표이사는 “제 글씨체가 맞고 어떻게 전달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면서도 “‘3형제가 똑같이’라고 돼 있다면 조석래 명예회장님이 한 말일 것 같고, 골프장 개발을 하면서 3형제가 일정 지분을 나눴으니 형제가 협력해서 사업하라는 의미일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상식선에서 아버지가 아들들에게 위험을 부담하라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고 합심해서 사업을 잘 해보라는 의미가 아닐지 싶다”고 덧붙였다.

언급된 두미종합개발은 1997년에 설립돼 경기도 이천에 위치한 두미CC를 운영하는 곳이다. 2012년까지 조현준 효성 회장과 조현문 전 부사장, 조현상 부사장(현 부회장) 등 3형제가 지분을 나눠 보유하고 있었다. 2013년 효성의 100% 자회사로 편입됐다.

변호인은 2012년 당시 두미종합개발이 자본잠식 상태였고, 결손액이 398억 원에 달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조현문은 당시 배임의 소지가 있다며 반대하지 않았느냐”라고 물었다. 노 대표이사는 “당시 정황은 모르겠지만, 기억하는 것은 조현문이 주식을 (공익법인) 세 곳에 기부했다는 것이다”고 답했다.

조 전 부사장이 3남 조현상 부사장에게 보낸 이메일도 공개됐다. 해당 메일에는 ‘효성이 두미종합개발을 매입하는 것은 (법적으로) 심각한 문제이며 교회에 기부한 자신의 지분을 돌려받지 않겠다’는 조 전 부사장의 의지도 담겨있었다.

변호인은 또 효성이 또 다른 계열사 갤럭시아포토닉스의 채무를 변제하기 위해 수백억원을 증자해, 그 증자금으로 기존 채무를 변제하는 등 청산 절차를 진행했다며 조 전 부사장은 이를 배임이라고 생각했고, 이를 막지 못하자 자신의 지분을 공익단체에 기부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 대표이사는 “배임 이슈는 잘 알지 못하겠다”면서 “아버지(조석래 명예회장)은 차남(조현문 전 부사장)의 사임을 받아들이지 말고, 같이 경영상태를 회복하고 싶어서 사임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라고 짐작한다”라고 답변했다.

조 전 부사장이 요구한 ‘보도자료’는 결과적으로 효성을 통해 배포되지는 않았다. 그 배경을 놓고 노 대표이사는 “조석래 명예회장님께서 사실에 맞지 않은 내용이니 놔두라고 말했다”면서 “하지만 공동피고인인 박수환이 대표로 있는 홍보대행사를 통해 언론에 전달된 보도자료가 일간지와 인터넷신문 등에 보도됐다. 기존에 배포를 요구한 내용과 비슷했다”고 부연했다.

노 대표이사는 ‘피고인들이 회사에 보도자료 배포를 요구한 이유가 뭐라고 보는가’라는 검찰의 질문에 “당시 조현문이 회사를 떠날 때 여러 가지 소문이 있었다. 중공업 경영을 잘 못했다거나 조석래에게 야단을 맞았다거나, 가족 사이 분란을 일으킨다는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면서 “이 같은 보도자료가 효성을 통해 배포된다면 소문이나 이야기를 잠재울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다”고 말했다.

검찰의 공소사실에 따르면 조 전 부사장은 ‘피고인이 효성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효성은 피고인의 퇴사를 안타까워하며 그의 미래를 축복한다’는 취지의 보도자료를 작성하고, ‘이 자료를 언론에 배포하지 않을 경우 조현준 회장의 비리 자료를 갖고 서초동(검찰)에 갈 것’이라며 조 명예회장에게 겁을 줬다. 이를 통해 조 명예회장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려 했으나 피해자가 응하지 않아 미수에 그쳤다고 검찰은 설명한다.

반면 조 전 부사장은 효성그룹 전체에 널리 퍼져있다고 인식하거나 확인했거나 의심되는 여러 가지 잘못된 관행에 본인까지 얽히는 것을 피하고자 여러 계열사에서 사임한 것이며, 사임 의사를 대리인을 통해 (회사에) 전달했고, 그 후속 조치로서 일정한 보도자료를 요청했을 뿐이라고 항변한다.

효성가 ‘형제의 난’으로 불리는 이번 사건은 지난 2014년 7월 조 전 부사장이 조현준 회장 등을 횡령·배임 등 혐의로 고발하며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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