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팔 무력 분쟁에 초긴장 상태, 원유 수급 불균형 위기
政, 고유가에도 판매가격 제한 압박···업계 “자유시장경제 원칙 훼손”

서울 시내의 에쓰오일 주유소 모습. /사진=에쓰오일
서울 시내의 에쓰오일 주유소 모습. / 사진=에쓰오일

[시사저널e=유호승 기자] SK이노베이션과 에쓰오일, GS칼텍스, HD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정유업계에 긴장감이 돌고 있다. 올해 하반기 들어 유가상승으로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 모습이었지만, 글로벌 정세 및 유가 불안, 정부 압박 등의 ‘삼중고’로 호실적 전망이 무너지는 중이다.

정유사들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작된 경기침체 및 유가·정제마진 하락으로 올해 상반기까지 실적하락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23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정유 4사의 합산 영업이익은 ▲지난해 3분기 2조7356억원 ▲4분기 -8794억원 ▲올해 1분기 1조4565억원 ▲2분기 1조7455억원이다.

부진의 이유는 수익지표인 정제마진의 약세 탓이다. 손익분기점인 4~5달러를 넘기지 못해 ‘제품 생산=손해’인 상황이 지속됐다.

단, 하반기부터 유가의 완만한 오름세와 여행 수요회복에 따른 휘발유·항공유 등의 판매량이 많아지며 실적 역시 상승할 것으로 관측됐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휴가철인 올해 7월 국내 휘발유 소비량은 842만3000만 배럴로 전년 동월 대비 15.5% 늘었다. 같은 기간 항공유는 215만3000배럴로 21.2% 증가했다.

그러나 최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무력 충돌로 정유업계에 불확실성이 커졌다. 현재까지 국내 석유 수급 상황에는 이상 징후가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 등이 분쟁에 개입해 ‘중동 전쟁’으로 확전될 경우 안정적인 원유 확보에 차질이 빚어지기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국내 원유 수급 상태는 평소와 비슷하다”며 “하지만 중동 원유가 수입되기까지 2개월 정도의 시차가 발생하는 만큼 빠르게 변화하는 국제정세를 면밀하게 살피면서 조달 계획을 변경할지 고민하는 단계”라고 말했다.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중동 전쟁 우려는 국제유가의 비정상적 급등을 초래했다. 일각에선 현재 배럴당 90달러선에서 움직이는 유가가 150달러를 넘어설 것이란 예측을 내놓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유가상승은 정제마진이 오르며 정유업계에 이익이 된다.

그런데 이 상황은 정유사에 달갑지만은 않다. 세계 최대 산유국인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개입으로 전쟁이 확전·장기화된다면 지정학적 요인으로 원유 수급에 문제가 된다.

글로벌 원유의 약 20%가 지나는 중동의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될 수 있어서다. 이 곳이 통제되면 중동 외 산유국의 생산능력 만으로는 국제 원유 수요를 감당하기 힘들다. 즉, 판매 제품을 생산할 원유를 구하기가 어려워지는 것이다.

국제정세 및 유가불안뿐만 아니라, 우리 정부 역시 정유업계에 ‘악재’가 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최근 국내 정유사 고위 관계자를 불러 고유가 상황이 국민에 부담으로 전가되지 않도록 휘발유·경유 판매 가격 조율에 각별히 신경쓸 것을 주문했다.

정유사들은 정부의 민생안정 의지에는 공감하지만 유가가 급변하는 시기에 판매가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실적부진이 계속되며 ‘보릿고개’를 극복하는 와중인데다 국제유가의 변화에 기름값을 조정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데, 이를 압박하는 것은 상식을 벗어난 압박이라는 반발이다. 하지만 정부에 공개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을 낼 수 없는 처지여서 속앓이만 계속 해야하는 처지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유가에 맞춰 정상적인 가격에 제품을 판매하지 말고 최소한의 마진만 얻으라고 제한하는 것 자체가 자유시장경제 원칙을 훼손하는 것”이라며 “횡재세에 이어 또다시 정부의 칼날이 정유사들을 향하고 있어 답답한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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