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주회사 전환 과정서 지분율 높이고자 한일시멘트 시세조종한 혐의
24일 속행 공판에 동창생 증인신문···차명거래 ‘배경’ 진술 뒤집어
2021년 11월 기소 돼 2년 가까이 재판 중···곧 피고인신문 돌입

/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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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주식 시세조종을 통해 사익을 취했다는 혐의로 재판 중인 허기호 한일홀딩스 회장이 초등학교 동창생의 계좌로 한일시멘트 주식을 차명거래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명의를 빌려준 동창생 안아무개씨는 수사기관에서 ‘지주회사 전환 과정에서의 경영권 확보’라는 거래 목적을 구체적으로 진술했다가, 법정에서는 ‘추정한 것을 사실처럼 말했다’며 이를 번복했다.

서울남부지법 형사14부(재판장 장성훈 부장판사)는 24일 오후 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허 회장 등 6명에 대한 속행공판을 열고, 안아무개씨에 대한 증인신문을 진행했다.

의료보건 관련 제품을 생산하는 중소기업의 대표 안씨는 성인이 되고 사적 자리에서 만난 허 회장으로부터 직접 부탁을 받고 계좌를 개설해 줬다고 증언했다.

안씨는 “증인은 허기호 피고인이 ‘믿을만한 차명 계좌가 필요하다. 아무나 할 수는 없고 재산 규모도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라는 말을 듣고 명의를 빌려줬다고 수사기관에 진술했는가”라는 검찰의 물음에 “네”라고 답했다.

그는 “뭔가 말 못 할 사정이 있는 돈이라고 추정했다. 회사 측에서 계좌개설에 필요한 서류나 정보를 요청해 왔고 제가 들어줘 계좌를 개설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계좌개설 이후 통장, 카드, 인증서, 비밀번호 등을 회사 측에서 관리했다. 발생한 세금은 회사 관계자가 사후에 정산해 줬다”고 말했다.

검찰에 따르면, 안씨의 차명계좌에는 2010년 3월23일부터 6월17일까지 28회에 걸쳐 3억2000여만원이 입금됐다. ‘어떤 주식이 거래됐는가’라는 검찰의 물음에 안씨는 “한일시멘트 주식만 사는 것으로 봤다”며 “구체적인 거래 과정을 눈여겨보지는 못했다”고 답했다.

검찰은 “증인은 수사기관에서 ‘한일시멘트 주식을 사는 것을 보고 경영권을 위한 지분 문제인가 보다. 자금의 출처를 증명하지 못하니 차명으로 하는구나 생각했다’고 진술했는데 맞는가”라고 물었다. 이에 안씨는 “대기업 경영자는 자신의 지분을 늘리거나 우호 지분을 확보하는 게 일반적이다 보니 그런 취지라고 상식적으로 추론해 진술한 것이다”고 말했다.

안씨는 사후에 회사로부터 차명계좌를 돌려받은 뒤 직접 한일시멘트 주식을 거래하기도 했다. 그가 2018년 8월21일부터 9월7일까지 거래한 한일시멘트 주식은 6250주로, 거래액은 9억1400여만원이다. 안씨는 2019년 5월22일 6250주를 8억3000여만원에 블록딜 매도(일괄매각)했다.

안씨는 “허기호로부터 ‘네가 (차명계좌를) 관리하는 게 좋겠다’고 들었고 수용했다. 통장에 남아있던 돈을 돌려주기는 어려워 그대로 갖고 있었다”며 “주식을 매수한 경위는 (공동피고인인) 김아무개부터 ‘갖고 있는 돈으로 한일시멘트 주식을 매수해 달라’는 요청을 듣고서다”고 말했다. 안씨가 언급한 김아무개 피고인은 한일홀딩스 전무이자 계열사인 한일인터내셔널의 대표다. 안씨는 “한일시멘트 측에서 안내해주는 대로 집행만 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안씨는 한일시멘트 주식거래 사실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던 것과 달리 그 배경에 대한 설명은 다소 모호하게 답변했다. 수사기관에서의 진술을 뒤집기도 했다.

안씨는 ‘허기호로부터 경영권 문제 해결을 위해 지주회사전환작업 진행된 것이라고 들었다고 진술했는데 맞는가’라는 검찰의 질문에 “지주회사로 전환한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피고인이 특별히 저한테 그런 이야기를 한 건 아니다”며 “구체적으로 이를 상의하는 관계는 아니었다”고 했다.

안씨의 진술 번복에 검찰은 진술조서를 직접 제시하며 캐묻기도 했다. 안씨의 금융감독원 진술조서에는 ‘지분구조는 모르지만 아버지(허정섭 명예회장) 성격이 유해요. 삼촌(허동섭·허남섭 명예회장) 등 아버지 형제 간 지분 정리가 안됐고, 아버지 지분을 받는 것도 돈이 들어가니 홀딩스로 투자받아 정리한다. 신문을 보고 이야기하는 내용이 아니다’고 적혀 있었다.

이에 안씨는 “그때는 그렇게 답변한 게 맞지만 제 생각을 말한 것 같다”며 “숙부님들 지분이 많아서 (경영권 확보가) 어려울 수 있겠구나 짐작한 것이다”고 주장했다.

허 회장의 변호인이 반대신문에서 “증인이 사실관계를 그대로 말한 게 아니라 논리적 추론 등을 뒤섞어 말한 것 같다”고 말하자, 안씨는 “(금융감독원 직원의 질문에) 저 혼자 스스로 답을 줘야겠다고 생각하는 과정에서 과거의 정보나 의견이 섞인 것 같다. 질문에 유도된 부분도 꽤 있다”고 거들었다.

변호인은 또 2018년 안씨의 계좌 거래 이전인 2017년 9월30일자 한일시멘트 지분율 표를 제시하면서 “허 회장은 이미 한일시멘트 최대주주였다. 당시 지분만으로도 충분히 안정적이라고 생각되지 않는가”라고 물었다. 안씨는 “다른 회사의 총수지분과 비교해서도 밀리는 것 같지 않다”고 답했다.

재판부는 다음 기일 또 다른 증인 김아무개씨에 대한 증인신문을 끝으로 본격적인 피고인신문에 돌입한다. 공동피고인들을 분리해 각각 피고인신문에 준하는 증인신문을 진행할지, 함께 피고인신문으로 진행할지 검찰과 변호인 측 이견이 있었다.

검찰은 공동피고인들 사이에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부분이 있다고 분리된 증인신문을 주장했으나, 변호인은 이해관계충돌은 전혀 없다고 맞섰다. 재판부는 질문 시 피고인신문과 증인신문을 구분해 고지하면서 진행하자며 정리했다.

2021년 11월 시작된 조 회장의 형사재판은 올해를 넘길 전망이다. 공판기일이 3주에서 1달을 주기로 열리는 데다, 검찰이 피고인별 약 2시간의 신문 시간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변호인의 반대신문과 별도의 PT 일정이 지정될 경우, 선고기일까지 상당한 시일이 더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한일시멘트는 2018년 1월 한일시멘트를 분할존속회사인 한일홀딩스(투자사업부문)와 분할신설회사인 한일시멘트(시멘트, 레미콘, 레미탈 사업부문 등)로 인적분할을 결정하고, 같은해 7월 인적분할이 이뤄졌다. 

2020년 5월에는 그룹 계열사이자 한일현대시멘트(옛 현대시멘트)의 모회사인 HLK홀딩스를 한일시멘트에 흡수합병을 결정(합병기일은 8월1일)했다. 합병비율은 한일시멘트 1 대 HLK홀딩스 0.502이다.

검찰에 따르면, 허 회장은 이 과정에서 합병법인의 지분율을 높이기 위해 한일시멘트 주가를 인위적으로 조정한 혐의를 받는다.

허 회장은 주식 보고 의무 위반 관련 혐의만 인정하고 시세조종 혐의는 부인한다.

이 사건은 금융감독원 자본시장 특별사법경찰(특사경) 출범 이후 증권사가 아닌 일반기업에 대한 ‘1호 강제수사’로 주목받았다. 그간 특사경은 증권사 애널리스트(연구원)의 선행매매 혐의 등 자본시장에 국한된 사건을 수사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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