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권과 예산권 제대로 행사하는 힘 있는 기관장 필요···본청과 보건원 간 갈등 해결 시급

[시사저널e=이상구 의약전문기자] “지영미 질병관리청장은 ‘윤석열 대통령 친구 부인’을 잘 활용해라.” 이 제목은 오해 소지가 있는데 지 청장이 과도한 권력을 행사하라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지 청장이 최소한 질병청 위상과 힘을 법률에 규정된 수준만큼만 지키며 인사권과 예산권을 제대로 행사하길 바라는 의미에서 하는 말이다.      

지 청장은 1962년 서울 출생으로 서울대 의대(80학번)를 졸업하고 런던대학교 의학미생물학 디플로마, 바이러스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전문가다. 박사 취득 후 지난 1997년 질병관리본부에서 과장으로 공직 생활을 시작했고 국립보건연구원 감염병연구센터장까지 역임한 인물이다. 

당초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지난해 대통령에 당선된 후 초대 질병청장에 유력했지만 동갑에 역시 서울대 의대 동문인 백경란 교수에 밀려 청장 지명을 받지 못했다. 윤 대통령 죽마고우인 이철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부인이라는 점이 오히려 역차별을 받았다는 후문이 알려진 바 있다.  

이에 지난해 12월 지 청장 임명 당시 지인들은 윤 대통령이 친구 부인을 보건복지부 외청장에 임명한 것을 비판해야 하지 않느냐는 의견도 전달했다. 하지만 기자 생각은 달랐다. 오히려 초대 청장에 임명됐어야 할 관료 출신 전문가가 대통령 친구 부인이라는 점 때문에 취임이 7개월 늦었다는 생각도 했다. 질병청장은 의사 출신 전문 식견과 관료 경험 등을 두루 갖춰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지 청장은 이같은 자격요건을 일정 부분 충족했다는 판단이다. 

공직 사회에서 현실적으로 중요한 것은 힘이다. 다른 정부중앙부처가 질병청을 쉽게 생각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파워다. 질병청은 과거 복지부 소속기관인 질본과는 수준과 차원이 다른 조직이다. 공식적으로 청의 총수가 인사권과 예산권을 행사해야 한다. 질병청은 지난 4월 중순 지 청장이 젊은 직원들과 도시락 간담회를 했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한 적이 있다. 기자는 이 자료를 보고 처음에는 믿기지 않아 눈을 비비고 다시 봤다. 청장이 젊은 직원들과 도시락 간담회를 갖는 것은 당연한데 이것을 공식 배포한 의도가 궁금했다. 외부 출신 청장이라면 몰라도 질본 시절부터 근무했던 지 청장은 젊은 직원들과 간담회도 중요하지만 더 시급한 사안이 무엇인지 잘 알 텐데 일부 답답한 측면이 있었다. 

첫째 일부 복지부 직원들은 아직도 질병청 업무방식에 불만을 갖고 있다. 물론 그들 주장에도 허점은 있고 질본의 질병청 승격을 전후로 복지부 직원들이 대거 청으로 자리를 옮겼기 때문에 기자는 그들 불만이 모두 정확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단, 그같은 지적이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는 점은 질병청 직원 전문성과 업무능력을 제고시켜야 하는 당위성과 연결돼 있다는 생각이다. 지 청장은 직원 전문성을 배가시킬 교육 등 관련 예산 확보에 신경 써야 한다. 감염병 전문가들과 일부 국민들이 우려하는 코로나19 후유증도 연구 예산을 확보해야 하는 당면과제라고 판단된다. 과거 코로나에 감염됐던 50세 이상 확진자 몸 속에서 현재 어떤 일이 진행되고 있는지 세금을 내는 국민들은 정확히 알 자격이 있다.      

둘째 지 청장은 이제 복지부 직원들이 고위직 승진 수단으로 질병청에 전입하는 사례를 원천봉쇄해야 한다. 지난해 12월 지 청장 취임 이후에도 복지부 부이사관(3급)에서 질병청 국장으로 승진하며 전입한 사례가 있지만 여기서 구체적으로 거론하지는 않겠다. 물론 지 청장도 할 말은 있을 것이다. 복지부가 원하는 관료를 질병청이 받아야 질병청 퇴직자 재취업 자리를 복지부로부터 받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취재 결과 오는 16일자로 면직하는 A국장 재취업 자리도 결국 질병청이 만든 것으로 파악된다. 언제까지 질병청이 복지부 관료들의 승진 코스가 돼야 하는 것인지 답답한 현실이다.  

셋째 질병청 본청과 국립보건연구원 간 갈등을 지 청장이 어떻게 해결할지 주목된다. 지 청장이 외부 출신이면 이런 말을 할 수도 없다. 지 청장 경력을 보면 고위직 승진 이후 주로 보건연구원에서 근무했다. 그가 내부 갈등을 자세히 알 것으로 추정되는데 청장 취임 이후 8개월간 해결을 위해 구체적 노력을 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 했다. 정작 지 청장이 도시락 간담회를 해야 하는 대상은 젊은 직원들도 있지만 질병청 본청과 보건연구원 간 갈등 당사자다. 갈등 해결 역시 힘 있는 기관장이 잘 할 것으로 기대된다. 

‘대통령 친구 부인’이라는 배경은 비판 대상이 될 수도 있고 강력한 파워의 근원이 될 수도 있다. 대통령실도 지 청장 경력과 능력 등 여러면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임명했다고 기자는 분석한다. 어차피 국민들 대다수가 알고 있는데 지 청장은 필요한 예산을 적절하게 확보하고 직원들 전문성을 제고하며 인사권을 최대한 행사하는데 ‘대통령 친구 부인’ 배경을 활용해도 된다는 것이 기자 생각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힘 있는 기관장’이 돼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야 직원들이 청장을 믿고 신바람 나게 일할 수 있다. 관료 경험이 풍부한 지 청장 본인이 이같은 내용을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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