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기환송심, 기중기 손상에 ‘노조원 책임 부인’ 강제조정
판례 흐름·노란봉투법과 맥락 유사···정부, 갈등 해결 의지 있는지 의문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정부가 쌍용자동차 손해배상 사건(쌍용차 국가 손배)에서 법원의 강제조정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의 파기환송 취지가 명확하고, 파기환송심의 후속 판결도 강제조정안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 합리적인 이의제기인지 의문이 남는다.

대한민국은 지난 6일 쌍용차 국가 손배 사건 파기환송심 재판부인 서울고등법원 민사38-2부에 이의신청서를 제출했다. 지난달 23일 전달된 법원의 강제조정안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2주 기간 만기일을 하루 앞두고서다.

재판부는 이 사건 쟁점인 경찰 기중기 손상에 대한 책임변제 비율에서 노동조합의 배상책임만을 인정하고, 노동자들에게는 그 책임을 묻지 않는 내용으로 조정안을 전달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는 조합이 아닌 노동자 개인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제한적으로 묻도록 한 최근 대법원 판례의 흐름과 맞닿아 있다. 개인의 배상책임에 대해서도 귀책 사유와 기여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범위를 정하도록 한 ‘노란봉투법’과도 맥락이 같다.

강제조정은 당사자 중 한쪽이 이의를 제기할 경우 자동 효력을 잃는다. 조만간 재판부는 변론을 재개하거나 선고일자를 지정해 판결을 선고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대응은 법률적으로나 형식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조정으로 책임소지가 불분명해 지는 것보다는 판결을 통해 시위진압과정에서 경찰 대응, 노동자의 저항행위 정도에 따라 장비 손해에 대한 책임 비율을 명확히 가리는 데 더 높은 공적가치를 두었을 수 있다.

그런데 강제조정을 결정했던 재판부가 향후 어떤 판결을 내릴지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는 점에서 정부의 이의제기에 다른 목적은 없는지 의문이 든다. 재판부가 자신의 강제조정안과 다른 내용으로 판결하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정부는 강제조정 결정에 앞서 진행된 조정기일에서도 별다른 의견을 내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가 분쟁 해결을 위해 충분히 노력했다고 보기 어려운 대목이다.

쌍용차 파업을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 사건은 14년째 이어지고 있다. 자살하거나 스트레스성 질병으로 숨진 노동자가 24명이다. 이 기간 쌍용차의 주인은 두 번이나 바뀌었지만 노동자들은 ‘손배 가압류’를 떨쳐낼 수 없었다. 판결 이후 정부가 재상고한다면 이들의 고통은 계속된다.

쌍용차는 사명을 바꾸고 새 출발을 시도하고 있다. 회사도 노조원에게 제기한 손해배상을 오래전에 취하했다. 쌍용차지부의 상급단체인 금속노조를 상대로 한 소송이 파기환송심에 계류돼 있을 뿐이다. 시간 끌기는 더 이상 안된다. 정부의 전향적인 태도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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