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은, 정몽헌 前회장 20주기 계기로 추진했으나 北, 외무성 통해 거부
건설사업 실적 지지부진···올해 1분기는 영업적자

강원 고성군 화진포아산휴게소 간판. / 사진=연합뉴스
강원 고성군 화진포아산휴게소 간판.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정용석 기자]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오는 8월4일 고(故) 정몽헌 회장 20주기에 맞춰 방북을 추진하고자 했으나 북측이 거부하면서 방북이 좌절됐다. 현재까지의 남북관계를 감안할 때 주력사업인 대북사업을 통한 반전은 당분간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3일 통일부에 따르면 현대아산은 북한주민접촉신고를 철회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날 정부를 현대아산의 철회안을 수용할 예정이다. 

북측이 현 회장의 방북을 거부하면서 민간협력 차원의 남북 간 소통 창구가 열릴 계기가 될 것이라는 시장의 기대감도 한풀 꺾였다. 

현 회장은 1990년대 이래 수차례 방북하는 등 남북관계와 민간 차원 경제협력 분야에서 상징적 인물로 거론된다. 앞서 현 회장 측은 “정 회장 20주기 추모식을 위해 금강산에 방문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2018년에도 현 회장은 금강산에서 열린 정몽헌 회장 15주기 추모식에 참석한 바 있다.

일각에선 현 회장의 방북 배경으로 현대엘리베이터 자회사 현대아산의 취약한 사업구조를 꼽기도 한다. 현대아산은 현대엘리베이터가 지분 73.9%를 보유한 비상장사로 그간 대북사업의 핵심 역할을 해왔다. 현대아산은 지난 1999년 설립돼 2003년 개성공업지구 건설, 금강산 육로관광을 통해 본격적인 대북 사업을 주도했다.

2008년 금강산 관광객 피살을 계기로 관광사업을 포함한 남북 경협사업이 모두 중단되면서 현대아산은 위기를 맞는다. 같은 해 영업손실 54억원을 기록한 뒤 2020년까지 흑자 전환에 실패했다. 

개성공단마저 2016년에 철수하면서 부담은 더욱 커졌다. 현대아산이 개성공단에 사회기반시설(SOC) 등으로 지출한 금액만 6000억원에 달한다. 같은 해 현대아산의 결손금은 1536억원에 달했다. 

만성적인 (부분)자본잠식을 겪는 현대아산은 국내 건설업에서 활로를 찾고 있지만, 본업인 대북 사업은 여전히 ‘개점휴업’ 상태여서 실적 개선에 부침을 겪고 있다. 지난 2021년 영업이익 59억원을 내면서 14년 만에 적자 경영을 탈출했지만, 지난해엔 영업이익이 16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올해 1분기에는 영업적자 4억2977만원으로 다시 적자를 냈다.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실적이 악화일로를 걷자 재무구조도 나빠졌다. 지난해 말 기준 현대아산의 자본금은 1610억원, 자본총계는 395억원으로 부분 자본잠식 상태다. 

자본잠식 상태 해소를 위해 무상감자, 유상증자를 올해 실시했지만 자본잠식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이다. 지난 1월 현대아산은 보통주 3주를 1주로 병합하는 감자를 실시했고, 지난 2019년 3월과 지난 5월 현대엘리베이터로부터 유상증자를 통해 각각 357억원, 300억원을 수혈받았다.

현대아산이 10년이 넘게 부진한 실적을 이어가고 있지만, 현 회장은 대북사업을 쉽게 포기하지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아산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소 떼를 몰고 방북하면서 남북 경제협력사업의 물꼬를 튼 후 대북사업을 전담해온 회사다. 현 회장의 이번 방북 시도 배경으로 현대아산이 거론되는 이유다.

현 회장은 현대아산의 사내이사를 맡고 있기도 하다. 또 현대그룹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전략기획본부 소속 3인이 이 회사 사내이사를 맡아 ‘현대아산 살리기’에 총력을 다 하고 있다.

다만 본업인 대북 사업을 통한 실적 개선은 당분간 어려울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신규 사업은 물론이고 현대아산이 기존에 진행했던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사업을 다시 추진하는 것도 힘들다는 주장이 나온다. 박원곤 이화여자대학교 북한학과 교수는 “현대아산은 과거 운영했던 금강산 관광지구나 개성공단에 대해서는 일정 수준 사업 추진에 대한 주장을 할 수 있겠지만 신규 사업 투자는 유엔 안보리 결의안부터 미국의 대북제재 강화법에서 금지하고 있다”면서 “개성공단 사업같은 경우 재개가 된다 하더라도 시설 복구, 금융 시스템 정비, 교통편 제공 등 신규 투자가 들어갈 수 밖에 없어서 상당히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남북관계의 경색 국면이 장기화됨에 따라 대북사업 재개까지는 상당 기간이 요소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남측과 대치 속에 최근 강원 해금강호텔 등 금강산의 현대아산 시설을 무단 철거하고 있다. 강동완 동아대 북한학과 교수는 “10년 전만 하더라도 남북 관계에 있어서 정치와 경제를 분리해서 민간 경협을 추진코자 했지만 지금은 북한의 비핵화 정책이 가장 우선시된다”면서 “북한도 강대강 원칙을 고수하고 있어 당분간은 민간 경협이 이뤄지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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