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방어 목적 TRS계약 체결로 회사에 4400억 손해
민사사건서 선관주의 의무위반 확정···배임죄 구성 여부 확인
과실 아닌 고의 입증 관건···경찰 “혐의 없음 단정할 수 없다”

현대그룹 CI. / 사진=현대그룹 홈페이지 갈무리
현대그룹 CI. / 사진=현대그룹 홈페이지 갈무리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파생상품계약(TRS계약) 배임 의혹을 수사 중인 경찰이 지난 21일 이 사건 고발인을 불러 조사했다. 지난 4월 대법원 민사 확정판결에 따라 본격적인 형사사건 수사에 착수한 것으로 풀이된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서울지방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는 전날 민경윤 전 현대증권노동조합 위원장을 고발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민 전 위원장은 지난 2021년 2월 현 회장 등 26명을 특경법상 배임 등 혐의로 고발했다. 현 회장 등이 2006년 10월부터 2013년 1월까지 TRS계약을 체결해 현대엘리베이터에 4400억원의 손실을 입혔다고 주장한다.

경찰은 대법원이 확정한 현 회장의 TRS계약 선관주의의무위반 관련 민 전 위원장이 제출한 직간접 증거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경찰은 현 회장의 선관주의의무위반이 형사법상 배임죄를 구성하는지 법리검토 중이다.

경찰은 회사 관계자 등 TRS계약과 연관자들을 상당수 조사했다. 조만간 현 회장 본인에 대한 수사도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경찰은 대법원이 배상책임을 부인한 현 회장의 상법 위반(대주주 신용 공여) 혐의 부분은 불기소로 방침을 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고발인은 현 회장이 손해배상 주주대표 소송 대법원 판결에 따른 배상금 1700억원과 지연 이자를 갚기 위해 일으킨 대출 역시 배임에 해당할 수 있다며 추가 고발장도 제출했다.

대법원 판결 등에 따르면, 현대엘리베이터는 현대중공업과 현대차그룹으로부터 주요계열사 현대상선의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해 금융사들과 우호지분 매입을 대가로 연 5.4~7.5%의 수익을 보장해주는 TRS계약을 맺었다. 현대상선 주가가 오르면 이익을 나눠 갖는 대신 주가가 내려가면 현대엘리베이터가 손해를 보는 구조였다.

현 회장은 약 10%의 우호지분을 확보하면서 현대상선 경영권을 지켜 냈으나, TRS계약 체결 후 현대상선 주가가 하락하면서 현대엘리베이터는 4400억원 규모의 손실을 봤다.

민 전 위원장의 고발을 접수한 경찰은 지난 2021년 4월 현대엘리베이터 2대주주인 쉰들러가 제기한 주주대표소송의 규모와 양측의 의견대립, 소요 시간, 인권 보호 등을 이유로 수사중지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수사중지 이유를 담은 수사결과통지서에 현 회장의 ‘혐의 없음을 단정할 수 없다’는 내용을 담으며 여지를 남겼다.

이런 가운데 대법원은 지난 4월 현 회장이 현대엘리베이터 2대주주인 쉰들러에 1700억원을 배상하라는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경찰 수사는 현 회장의 선관주의 의무위반에 대한 고의 입증이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민사법에서는 고의와 과실 구분 없이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책임을 묻지만, 형사법에서는 고의범만 처벌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앞서 관련 사건을 수사한 검찰도 배임의 고의를 인정하기 어렵다며 사건을 불기소 처분 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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