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R 기기 출하량, 급성장 예상···국내 산업계는 ‘후발주자’
“초해상도 패널·반도체업계 생태계 구축으로 추격해야”

20일 서울 강남구 소노펠리체 컨벤션에서 열린 ‘XR 디스플레이 산업 전략 포럼’. /사진=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

[시사저널e=이호길 기자] 확장현실(XR) 기기가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차세대 먹거리로 부상한 가운데 중국이 적극적인 투자로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반면 국내 산업계는 제품 양산 속도 및 공급망 구축에서 뒤처지고 있단 지적이 나왔다. 중국 추격을 위해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기술력을 바탕으로 초해상도·고휘도 패널 개발을 가속화하고, 전·후방 산업 간 생태계 형성에도 나서야 한단 분석이다.

XR 산업 전문가들은 20일 서울 강남구 소노펠리체 컨벤션에서 열린 ‘XR 디스플레이 산업 전략 포럼’에서 디스플레이·광학 부품·콘텐츠 등의 경쟁력 확보 전략을 논의했다. XR은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혼합현실(MR) 등을 포괄한 개념으로 애플이 연내에 XR 기기를 선보이고, 메타와 소니도 신제품 출시를 예고하면서 시장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임수정 카운터포인트리서치 연구원이 20일 서울 강남구 소노펠리체 컨벤션에서 열린 ‘XR 디스플레이 산업 전략 포럼’에서 발표하고 있다. /사진=이호길 기자

◇“中, AR 기기서 광학 기술·디스플레이 50% 이상 현지화 가능”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글로벌 XR 기기 출하량은 1490만대로 전년(920만대) 대비 62% 증가가 전망된다. 2027년에는 6320만대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XR 산업에서 입지를 넓히고 있는 국가는 중국이다. 중국은 지난해 11월 ‘VR 산업발전 실천 계획’ 발표를 통해 오는 2026년까지 핵심기술 보유 기업을 100개 육성하고, VR 기기를 2500만대 생산해 가상현실 산업을 68조원 규모로 키우겠다고 밝혔다. 실리콘 기판 위에 OLED나 발광다이오드(LED)를 증착하는 차세대 제품 올레도스(OLEDoS)와 레도스(LEDoS) 기술 개발에도 적극적이다.

임수정 카운터포인트리서치 연구원은 “AR에서 가장 중요한 건 광학 기술과 디스플레이인데, 중국은 두 가지 모두 50% 이상 현지화가 가능한 수준”이라며 “기술적인 측면에서 품질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밸류체인 단위에서 분석해보면 굉장히 높은 수준으로 현지화가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디스플레이의 경우 주요 XR 기업에 액정표시장치(LCD) 형태의 패널을 납품한 중국 업체는 BOE, CSOT, 티엔마 등이 있지만, 국내 기업은 라온텍 1곳 정도다. BOE와 메타웨이즈 등은 자국 공급망을 기반으로 올레도스 패널도 양산 중인 반면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의 올레도스 패널 생산 돌입 시기는 내년 이후로 예상된다.

임 연구원은 “BOE는 지난해 12월 레도스 개발에도 성공했다고 얘기하고 있어 상용화에 근접한 것으로 보인다. 또 2026년까지 생산시설을 확장하기 위해 투자를 진행 중인 상황”이라며 “CSOT도 8인치 올레도스 투자 계획을 발표해서 조만간 증설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비전옥스 등 중국 여러 기업들이 마이크로 디스플레이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정노 한국전자기술연구원(KETI) 수석이 20일 서울 강남구 소노펠리체 컨벤션에서 열린 ‘XR 디스플레이 산업 전략 포럼’에서 발표하고 있다. /사진=이호길 기자

◇반도체업계와 협력 중요···LGD-SK하이닉스·삼성D-삼성전자와 협업

국내 기업들이 중국을 따라잡으려면 유관 산업 간 협력을 통한 생태계 구축에 나서야 한단 조언이 나왔다. 올레도스와 레도스는 기존 유리 기판이 아니라 반도체 원재료인 실리콘 웨이퍼를 활용하는 형태인 만큼 반도체업계와 협업이 중요하단 평가다.

이정노 한국전자기술연구원(KETI) 수석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산업이 융합해야 발전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산업 위상이 모두 세계적인 수준이어서 협력이 이뤄졌을 때 글로벌 시장을 리드할 수 있는 우수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LG디스플레이는 LX세미콘이 제품을 설계하고, SK하이닉스가 웨이퍼를 가공한 뒤 회사가 패널을 증착하는 방식으로 올레도스를 양산할 예정이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과 올레도스 개발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술적 측면에서는 XR 기기에 적용되는 디스플레이의 해상도와 휘도를 높여야 한단 분석이다. 현재 3세대 XR 기기는 해상도가 3000ppi(픽셀당 인치수) 수준이지만, 4세대 제품에서는 입체 영상 구현을 위해 6000ppi까지 개선이 필요하다. 디스플레이업계는 궁극적으로 해상도가 8000ppi까지 높아져야 할 것으로 본다.

차세대 마이크로 디스플레이 기술로는 광 특성 개선을 위해 광 효율을 높일 수 있는 마이크로 렌즈 어레이(MLA), 선명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블랙 PDL(Pixel Define Layer), 편광판을 없애 효율을 개선하는 폴리스(Pol-Less) 등이 거론된다. 최대 8000ppi 패널 성능에 부합한 초고밀도 증착 장비와 백플레인(backplane·픽셀 동작에 필요한 얇은 회로 기판) 기술도 갖춰야 시장 주도가 가능하단 평가다.

홍형기 서울과학기술대 안경공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디스플레이 강국이지만, XR 산업에서 강국 위치가 아니다”라며 “팔로워(추격자) 입장에서 선두 국가를 잘 쫓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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