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현 회장 등 경영진 쉰들러에 1700억 배상 확정
손실 위험성 검토 안 하거나 필요한 조치 안 해
‘상법 위반’ 고발 불기소 근거 사라져···재수사 돌입여부 관심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 사진=연합뉴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현대상선 경영권 방어를 위해 파생금융상품 계약을 체결하도록 해 현대엘리베이터에 손해를 입힌 점이 인정돼 1700억원을 배상하게 됐다. 다국적 엘리베이터 제조업체이자 현대엘리베이터 2대주주 쉰들러그룹이 현 회장 등 경영진을 상대로 낸 민사소송에서 최종 일부 승소한 결과다.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30일 쉰들러가 현 회장과 한상호 전 현대엘리베이터 대표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현 회장이 현대엘리베이터에 1700억원을 지급하고, 한 전 대표도 이 중 190억원을 지급하라고 결정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 소송은 현대엘리베이터 2대 주주인 쉰들러가 “현대 측이 파생상품을 계약하면서 현대엘리베이터에 7000억원대 손해를 입혔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현대엘리베이터는 주요 계열사인 현대상선의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해 금융사들과 우호지분 매입을 대가로 연 5.4~7.5%의 수익을 보장해주는 파생상품계약을 맺었다. 현대상선 주가가 오르면 이익을 나눠 갖는 대신 주가가 내려가면 현대엘리베이터가 손해를 보는 구조였다. 파생상품 계약 체결 후 현대상선 주가가 하락하면서 현대엘리베이터는 대규모 손실을 봤다.

쉰들러는 2014년 초 현대엘리베이터 감사위원회에 공문을 보내 현 회장 등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것을 요청했으나 감사위원회가 답변하지 않자 직접 주주대표소송을 냈다. 주주대표 소송은 회사의 이사가 정관이나 임무를 위반해 회사에 손실을 초래한 경우 주주가 회사를 대신해 이사의 책임을 묻는 소송이다. 재판 쟁점은 현대엘리베이터가 현대상선의 부실을 알면서도 현 회장 개인의 경영권 보호를 위해 파생계약을 맺어 회사에 손해를 입혔는지 여부였다.

1심은 핵심 계열사의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경영적 판단이었다는 현대엘리베이터의 의견을 받아들이며 쉰들러 측 청구를 기각했다.

그러나 2심은 현 회장이 계약 체결 여부를 결의하는 이사회에 참석하지 않았고, 현대엘리베이터 이사들이 현대엘리베이터에 막대한 손실을 가져올 수 있는 파생상품계약 체결을 의결하는 것을 막지 않는 등 감시의무를 게을리 했다며 배상책임을 인정했다. 현대상선에 대한 지배권 방어는 현대엘리베이터의 이익보다는 현 회장의 이익에 더 부합했다는 취지였다. 2심은 그러면서 현 회장에게 1700억원을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대법원도 “경영권 방어를 위해 계열사 유상증자에 참여하거나 제3자에게 계열사 주식을 보유하게 하는 경우, 계약의 규모나 내용을 조정하고 회사의 부담 비용이나 위험을 최소화해야 한다”면서 “계약 체결의 필요성이나 손실 위험성 등에 관하여 충분한 검토를 거치지 않았거나, 충분한 검토가 없었음을 알고도 이사 또는 대표로서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본 원심은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 상법 위반 불씨 살아나···재수사 가능성은

이번 배상 확정 판결과 별개로 경찰에 계류 중인 배임죄 고발 수사가 재개될지 주목된다.

현 회장 등 경영진은 이번 파생상품거래와 관련 배임 등 혐의로 경찰에 피고발된 상태다. 경찰은 2022년 4월 이 사건을 ‘수사중지’ 결정한 상태로 알려졌다. 대법원 판단까지 사건을 지켜보겠다는 것이다. 수사기관의 법적 해석은 민사법원과 같은 흐름을 유지하고 확정된 판결의 경우 높은 증명력이 있다는 점에서 관련 수사가 조만간 재개될지 관심이 쏠린다. 현대그룹에 따르면 이 사건은 현재 국가수사본부에 접수돼 있다.

검찰이 불기소로 종결한 상법 위반 의혹도 논란이 반복될 여지가 있어 보인다.

앞서 시민단체 경제개혁연대는 현대엘리베이터가 현대상선의 경영권 유지를 위해 무리하게 파생상품 계약을 체결했다며 현 회장 등 7명의 경영진을 상법상 신용공여금지 규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은 손해배상 사건 1심 판결 등을 근거로 단체의 고발과 항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단체는 2021년 4월 대검찰청에 재항고했으나, 대검은 이듬해 3월 이 사건을 기각한 것으로 파악됐다.

연대는 원처분청의 불기소결정 근거가 됐던 주주대표소송이 항소심에서 파기되고 대법원에서 확정됐다고 지적하면서, 향후 대응 방침을 검토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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