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S계약 의혹’ 수사결과 통지서에 “경영상 재량 벗어난 행위로 볼 여지 충분”
인권보호 등 수사중지 사유 설명했지만···배임죄에 대한 경찰 시각 나타나
대법, 현 회장 선관주의 의무위반 확인···법조계 “고의성 입증 여부 관건”

현대그룹 CI.
현대그룹 CI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파생상품계약(TRS계약) 배임 의혹을 수사하는 경찰이 2년 전 이미 현 회장의 형사책임 가능성을 언급한 것으로 확인됐다. 관련 민사사건 확정판결로 최근 수사를 재개한 경찰이 같은 결론을 도출할지 주목된다. 

12일 시사저널e가 입수한 현 회장의 배임 등 고발 사건에 대한 2021년 4월1일자 서울특별시경찰청 수사결과통지서에는 현 회장의 '혐의없음'을 단정할 수 없다는 내용이 담겼다.

경찰은 “기업 배임사건에서 경영상 판단에 대해 단순히 손해가 발생했다는 결과만으로 책임을 묻거나 주의의무를 소홀히 한 과실이 있다는 이유로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전제하면서도 “TRS계약이 완전한 ‘경영상 판단’의 재량 내에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고 밝혔다.

경찰은 그 근거로 ▲현대엘리베이터 이사들이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합리적인 의사결정 절차를 이행했다고 보기 부족한 점 ▲TRS계약 체결로 인한 이익에는 현 회장 개인적인 경영권 유지의 이익도 포함되는 점 등을 언급했다.

경찰은 현 회장 등을 상대로 제기된 주주대표소송이 일부 인용된 점도 판단의 근거로 삼았다. 경찰은 “본 건 관련 민사소송 2심에서 서울고등법원은 피의자 현정은에 대해 선관주의 의무위반으로 배상책임을 인정했다”며 “추후 대법원이 고등법원의 판결을 동일하게 유지해 피고들(현 회장 등 2명)의 선관주의 의무위반을 인정한다면 본 건 피의자들(현 회장 등 26명)의 TRS계약 체결행위는 ‘경영상 판단’의 재량을 벗어난 행위로 볼 여지가 충분히 있다”고 명시했다.

경찰이 언급한 대법원 판결은 지난달 30일 결과가 나왔고, 대법원은 현 회장의 선관주의 의무위반을 인정해 1700억원 배상판결을 확정했다.

경찰은 “민사 판결에 따라 배임 혐의가 바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민·형사상 문제 되는 행위가 거의 유사하고, 민사소송에서 법원의 판단이 심각한 오류를 내재하고 있지 않은 이상 최소한 경영상 판단인지에 대한 수사기관 등 국가기관의 법적 해석은 같은 흐름을 유지하는 것이 법적 안정성, 피의자 및 사건 관계인들의 신뢰 등 인권 보호에 부합하는 방안일 것으로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에 대한 특경가법상 배임 혐의 고발 사건 관련 서울특별시경찰청 수사결과통지서 내용 갈무리. / 사진=시사저널e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에 대한 특경가법상 배임 등 혐의 고발 사건 관련 2021년4월1일자 서울특별시경찰청 수사결과통지서 내용 갈무리. / 사진=시사저널e

이 수사결과 통지서의 요지는 주주대표소송의 규모와 의견대립, 소요 시간, 인권 보호 등을 종합할 때 민사소송의 대법원 확정판결 전까지 수사를 중지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내용이다. 다만 현 회장의 배임 혐의에 대한 경찰의 기본적 시각을 옅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작지 않아 보인다. 경찰은 “피의자들의 혐의없음을 단정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라고 못 박기도 했다. 경찰은 대법원 판결 이후 최근 현 회장에 대한 고발 사건 수사에 재차 착수한 것으로 파악됐다.

기업 사건 수사에 정통한 한 부장검사는 “민사법에서는 고의와 과실 구분 없이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책임을 묻지만, 형사법에서는 고의범만 처벌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며 “현 회장의 선관주의 의무위반에 대한 고의 입증 여부가 수사의 관건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