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수사중지 한 고발 사건···대법 판결로 수사중지 사유 해소
경찰 “당연히 수사 재개”···금융범죄수사대장 등 내부 보고 우선
고발인, 4400억 배임·상법위반 주장···사 측 “경영상 판단” 항변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경찰이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배임 의혹 수사를 위한 내부 절차에 돌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 대법원이 민사인 주주대표소송에서 현 회장에게 1700억원의 배상책임을 확정함에 따라 관련 형사절차가 재개되는 것이다.
서울지방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 관계자는 2021년 수사중지했던 현 회장 등에 대한 고발사건을 최근 대법원 민사 확정판결에 따라 다시 진행한다고 10일 전했다.
이 관계자는 “언론에 보도된 기사 내용을 보고했고 당연히 수사를 재개하는 것이 맞다”며 “보고절차 후에 곧바로 수사재기에 들어갈 예정이다”고 말했다. 금융범죄수사대장 등 최근 인사이동 한 수사 책임자들에게 사건 전반에 대한 설명 이후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된다는 게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앞서 민경윤 전 현대증권노동조합 위원장은 지난 2021년 2월 현 회장 등 26명을 특경가법상 배임 및 상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피고발인들이 공모해 2006년 10월부터 2013년 1월까지 파생상품계약(TRS계약)을 체결해 현대엘리베이터에 4400억원의 손실을 발생시키고 현 회장에게 같은 금액의 이익을 취득하게 했다는 게 골자다.
경찰은 약 두 달 후인 같은 해 4월5일 “민사에서 기업 이사의 선관주의의무를 다했음을 이유로 민사상 책임을 제한하는 사유와 형사상 경영상 판단을 이유로 배임의 고의를 조각하는 사유는 상당 부분 유사하다”며 “법적 안정성과 피의자 및 사건관계인들의 신뢰 등 인권보호를 위해 대법원 판결까지 수사를 중지한다”는 중간수사결과보고서를 통지했다.
대법원은 지난달 30일 현 회장을 상대로 제기된 주주대표소송에서 현 회장의 선관주의의무 위반을 일부 인정하며 1700억원을 배상하라는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 현대그룹-현대중공업그룹의 경영권분쟁과 TRS계약
현대엘리베이터는 1984년 설립돼 엘리베이터·에스컬레이터·무빙워크 등의 운반기계류, 물류자동차 설비·승강장 스크린도어 등의 제조·판매·유지보수업을 하는 회사다.
현대엘리베이터는 2000년 11월 현대건설로부터 현대건설이 보유하던 현대상선 보통주를 취득해 현대상선의 최대주주가 됐다. 2004년 11월 기준 총 17.16%의 지분을 소유하면서 현대상선의 경영권을 행사했다. 현대그룹은 2006년부터 그룹에 대한 지배권 강화를 위해 현대로지스틱을 중간고리로 현대엘리베이터→현대상선→현대로지스틱스→현대엘리베이터의 순환출자구조를 만들었다.
‘경영권 분쟁’은 이 시점 현대중공업그룹이 현대상선 주식을 매수하면서 시작됐다. 현대중공업그룹은 골라LNG로부터 현대상선 주식을 매수해 2006년 4월 현대상선 지분이 26.68%를 확보했고 현대상선의 최대주주가 됐다.
이에 현대엘리베이터는 경영권 방어를 위해 2006년 8월 케이프포춘과 현대상선 지분 2.26%에 해당하는 주식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TRS계약을 체결했다. 같은 해 10월에는 넥스젠캐피탈과 현대상선 지분 4.51%에 해당하는 주식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TRS계약을 체결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또 경영권에 적대적인 현대자동차그룹이 2010년8월~2011년3월 현대상선 지분의 8.3%를 보유하던 현대건설을 인수하자 재차 NH농협증권, 교보증권 등과 TRS계약을 체결했다.
이 같은 계약 체결로 현대엘리베이터는 10% 내외의 우호 지분을 보유하는 효과를 갖게 됐고 현대상선에 대한 경영권과 현대그룹 내 계열사의 지위를 유지했다.
TRS계약 내용은 주로 계약상대방이 현대상선과 현대증권 등 주식을 취득·보유하면서 현대엘리베이터의 주요주주에게 우호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되, 현대엘리베이터가 계약상대방에게 주식취득에 따른 금융비용을 보전해주고 주식시세 하락 시 그 손실을 보전하는 내용이었다. 상승 시에도 현대엘리베이터가 그 이익을 일부를 취득하지만 나머지 이익은 계약상대방에게 지급해주는 방식이었다.
현대상선의 주가는 2007~2008년 수요 호조와 운임상승으로 호황이었지만, 2008년 말부터는 리먼브라더스 사태에서 촉발된 글로벌 불경기로 폭락했다. 2010년 컨테이너 부문의 회복 및 운임상승으로 잠시 반등하기는 했으나 여전한 수급불균형 및 유가 급등, 벌크 부문 악화 등으로 주가는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결과적으로 현대엘리베이터는 2008~2012년 총 4400억여원의 손실이 발생했다.
고발인은 현대엘리베이터가 현대상선과 아무런 영업적 관계가 없고 그 주식을 계속 보유할 이유도 없는데도, 현 회장의 그룹 전체에 대한 지배권 확보를 위해 현대엘리베이터에 TRS계약을 체결하게 해 부담을 지게 했다며 이는 배임행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현 회장이 개인자금으로 현대상선의 지분을 매입하거나 다양한 옵션 계약을 체결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상법은 신용공여 금지를 규정하고 있는데 피의자들은 현 회장의 경영권 유지 및 방어를 위해 거래상의 신용위험이 따른 TRS계약을 체결하게 해 상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현대엘리베이터 측은 자회사의 경영권을 유지하고자 하는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 결정한 것으로 현 회장 또는 현대상선 등 타인의 이익을 위한 의도가 없었다고 반박한다. 현 회장과 현대상선에게 신용을 공여한 바도 없어서 배임과 상법위반 모두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또 적법한 이사들의 결의를 거쳐 TRS계약을 체결했으며 이러한 판단이 ‘경영상 최선이 이익’이었다고 항변한다.
한편 유사한 내용으로 시민단체 경제개혁연대(경개연)가 현 회장 등을 검찰에 고발한 사건은 지난해 3월 대검찰청에서 최종 기각됐다. 검찰은 배임의 고의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봤다. 경개연은 주주대표소송에서 현 회장 등 경영진의 감시의무위반이 확정됐다며 해당 수사가 부실수사라고 지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