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VB 파산으로 미국발 금융위기 재현 우려···줄어든 회사채 발행 규모
CFO 전진배치한 재계, 현금보유량 늘려 재무 리스크 대응 만전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본사 모습. /사진=연합뉴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본사 모습.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유호승 기자] 대기업집단에 속한 재무통에게 총수의 특명이 내려졌다. 글로벌 경기침체에 더해 미국발 금융위기 우려까지 확산되면서, 유동성 확보 및 차입금 상환 등에 만전을 기하라는 것이다. CFO(최고재무책임자)들은 최근 인사에서 경영 전면에 배치돼 기업의 자금 융통에 ‘빨간 불’이 켜지지 않도록 관리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재계는 올해 초만 해도 투자 등에 사용할 자금 확보를 위해 회사채 발행에 앞장섰다. 기관투자가들이 자금집행을 하는 ‘연초 효과’를 노렸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올해 1월 국내 회사채 발행규모는 9조7400억원, 2월에는 13조3400억원 등을 기록했다.

그러나 이달 들어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가 발생해 금융시장 불안과 고금리, 경기침체 등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회사채 발행규모가 줄어들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이달 현재까지 발행된 회사채 규모는 약 6조원 수준이다. 월말이 되도 7조원 안팎에 머물 것으로 협회 측은 보고 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SVB 파산 후폭풍 등의 불확실성이 기업들의 회사채 발행 관망세를 부추기고 있다”며 “SVB와 거래하는 현지 기업에 투자한 국내 기업의 경우 간접 타격을 입을 수 있어 금융 시장에 한동안 냉각기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글로벌 금융시장의 경색에 심화되자 재계는 CFO를 중심으로 현재 위기에 빠르게 대응하는 모습이다. 재무통이 최근 인사에서 전진 배치돼 빠른 업무처리가 가능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SK그룹이 대표적이다. 최태원 SK 회장은 지난해 CEO 세미나에서 CFO의 역할을 거듭 강조한 바 있다. 데이터 기반의 자금운용으로 실적방어에 나서야 한다며 유동성 확보 및 차입금 상환 등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성형 SK CFO는 연말 인사에서 사장으로 승진했다. 아울러 그는 이달 29일 정기 주주총회에서 SK㈜의 사내이사로도 선임될 예정이다. 최태원 회장과 조대식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장동현 부회장 등과 함께 이사진을 맡는 것이다.

이성형 사장과 함께 승진 명단에 이름을 올렸던 윤풍영 SK C&C 사장도 SK텔레콤 CFO 출신이다. 박성하 SK스퀘어 대표와 김철중 SKIET 대표, 이호정 SK네트웍스 사장 등도 그룹의 대표적인 재무통들이다.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다른 기업집단도 마찬가지다. 차동석 LG화학 CFO(부사장)은 지난 인사에서 사장이 됐다. 이창실 LG에너지솔루션 CFO는 부사장, 이남준 LG 재경팀장과 박지환 LG CNS CFO 등도 각각 전무로 승진했다.

이들은 현금 보유량을 늘리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지난해부터 두드러졌다. 현재까지 공개된 주요 기업의 사업보고서를 보면 대부분 현금량이 늘어난 모습이다. 한화솔루션의 현금보유랑은 지난해 1분기 1조7000억원에서 6개월 만에 41.1% 늘어난 2조4000억원이 됐다.

같은 기간 LG전자는 5조6000억원에서 7조6000억원으로 35.7% 증가했다. 현대차와 SK이노베이션 등도 각각 30.0%, 27.3% 현금 보유액이 늘어났다.

재계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를 기점으로 기업집단에선 경제위기 상황에는 현금성 자산을 최대한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강해졌다”며 “자금 비축에 특화된 인물이 CFO인 만큼, 이들을 전진 배치하는 기업들이 많아지는 추세”라고 귀띔했다.

이어 “회사채도 결국 빚이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만큼, 자금 상황을 더욱 타이트하게 운영하는 곳들이 많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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