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수·최윤호, 그룹 중심에서 배터리 계열사로 가 경영 능력 입증
[시사저널e=정용석 기자] 권영수 LG에너지솔루션 대표이사 부회장과 최윤호 삼성SDI 대표이사 사장의 공통점이 있다. 그룹 핵심에 있다가 변방으로 취급받던 배터리 사업을 맡은 후 더욱 몸값을 끌어올렸다는 것이다.
7일 업계에 따르면 권 부회장이 이끄는 LG에너지솔루션은 매출 25조원, 영업이익 1조원을 돌파하며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삼성SDI도 지난해 매출 20조1241억원, 영업이익 1조8080억원을 기록했다. 최 사장 취임 2년 차에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역대 최대치를 나타냈다.
◇일부 '좌천인사' 평가 떨쳐내고 몸집 키워
이차전지 산업이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배터리 사업이 각 그룹의 핵심 먹거리로 떠오르는 가운데 삼성과 LG그룹의 배터리 수장인 권 부회장과 최 사장의 입지도 공고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둘은 배터리 사업이 그룹의 중심이 아닌 시절 취임해 '해결사'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두 대표이사가 2021년을 기점으로 배터리 사업을 맡을 때만 해도 평가는 정반대였다.
권 부회장은 당시 구광모 LG그룹 회장과 함께 지주사 LG의 공동 대표이사 부회장을 맡고 있었다. 지주사 대표 자리에서 물러나 LG에너지솔루션 대표이사 부회장자리로 오는 것을 두고 업계에선 좌천 성격이 아니냐는 얘기도 흘러나왔다. 상장사인 지주사에서 물러나 비상장사로 온다는 이유에서다. 권 부회장 취임 전인 2020년 12월 LG화학은 전지사업본부(배터리사업)을 물적분할해 LG에너지솔루션으로 별도 법인을 세웠다.
평가는 곧 뒤바뀌었다. 권 부회장은 LG에너지솔루션 실적을 크게 끌어올리면서 배터리 사업을 진두지휘했다. 취임 첫 해를 보내고 난 2021년 LG에너지솔루션은 2018년 이후 3년 만에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연간 매출은 전년 대비 42% 증가한 17조8519억을 기록했다. 그의 별명인 '해결사'에 걸맞게 취임한 지 두 달 만에 LG에너지솔루션의 기업공개(IPO)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GM의 대규모 리콜 사태로 IPO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이뤄낸 성과다. 권 부회장은 굵직한 위기를 극복해내며 구광모 회장 체제에서 2인자가 됐다는 평가도 받는다.
최 사장은 삼성전자 사장 자리에서 삼성SDI 사장으로 왔다. 그는 1987년 삼성전자 입사 후 줄곧 삼성전자에서 핵심 요직을 맡아온 인물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보좌해온 그룹의 컨트롤타워 '미래전략실' 출신이기도 하다. 최 사장의 인사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당시 삼성전자에서 다른 계열사로 가게 되는 것을 무조건 좌천이라고 보는 분위기가 있었다"며 "삼성전자 사장과 계열사 사장을 같은 위치라고 보기는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회상했다.
이 같은 우려에도 최 사장은 삼성SDI를 그룹 내 핵심 계열사로 끌어올렸다. 최 사장 취임 이후 신규 해외 공장 증설에 나서면서 외형 성장이 본격화됐다. 삼성SDI는 그간 '수익성 우위 질적성장' 기조를 유지하며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보다 상대적으로 신중한 시설투자를 해왔다. 최근 그룹 내 최고 재무전문가로 알려진 최 사장의 결단력이 발휘되며 투자 적기를 찾은 모양새다. 최 사장은 오는 8일(현지 시간) 제너럴모터스(GM)와 미국에서 배터리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할 예정이다. 다음 완성차 프로젝트인 볼보와 협력도 마무리 수순을 밟고 있다고 전해진다.
업계에선 두 인물의 향후 역할에 주목한다. 재무통이었던 두 사람은 새로운 사업을 맡고 성장시키며 재무능력을 비롯해 사업능력까지 인정받았다는 평가다. 권 부회장은 LG전자에서 금융담당, 재경팀장 상무, 재경담당 부사장, 재경부문장 CFO와 총괄사장을 거치며 재무 역량을 키웠다. 이후 LG디스플레이 대표이사 사장, LG화학 전지사업본부장을 거쳐 LG유플러스 대표이사 부회장, 지주사 ㈜LG의 공동 대표이사를 맡으며 그룹 내 핵심 경영전문가로 성장했다.
최 대표 역시 삼성SDI 사장을 거치며 사업운영 역량까지 갖추게 됐다. 그는 삼성전자 재직 시절 주로 재무관리를 도맡아 했다. 삼성전자 구주총괄 경영지원팀장, 사업지원TF 담당임원, 전자 경영지원실장 등을 역임했다. 2020년에는 삼성전자 경영지원실장 사장으로 승진, 사내이사로 선임돼 이재용 회장의 현장경영을 보좌하는 역할을 맡았다.
현재로선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양사 모두 두 대표의 재무적 판단능력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배터리업계 전반적으로 빠른 증설에 따른 재무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배터리 공장은 초기에 막대한 설비투자가 필요하고 공장의 운전자금도 부담이다. 두 대표가 배터리업계가 당면한 현금흐름 적자 기조를 탈피하고 재무부담을 완화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최근 나이스신용평가는 보고서를 통해 "올해부터는 이차전지 업체들이 기존 유상증자 등을 통해 확보한 유동성이 대부분 소진되고 차입금 조달이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