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 만에 선박 가격 최고치···LNG·LPG 가스선 중심 수요 증가
물동량 감소·운항거리 증가에 실적 하락하는 해운사···조선소, 제값 못받을까 노심초사

/그래픽=김은실 디자이너
/ 그래픽=김은실 디자이너

[시사저널e=유호승 기자] 조선업계가 최근 나타나는 선박 가격 오름세에 불안감을 느끼는 모습이다. 선박을 구입하는 해운사들이 전세계적 불황에 따른 물동량 감소에 운임이 낮아지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어서다. 글로벌 해운사는 비싸진 선박 가격을 지불하는데 한계가 있다며,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발주를 하고 있다. 조선사 입장에선 마진이 줄어드는 셈이다.

신규 선박 가격은 올해 2월 들어 급격한 상승세를 보이며 1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국내 조선업계가 강점을 보이는 LNG·LPG 등 가스선과 PC선(정유제품 운반선)의 수요가 늘면서 가격 오름세가 두드러졌다.

영국 해운 조선·해운 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최근 신조선가 지수는 163.90으로 2009년 2월 둘째주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신조선가 지수는 새로 만든 배의 가격을 지수화한 것으로 100보다 클수록 선가가 많이 올랐다는 의미다.

163.90이란 수치는 조선업계 호황기였던 2000년대 중후반과 비교해도 높은 수준이다. 2003년 2월 119였던 지수는 2005년 162로 크게 올랐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인 2009년에는 138로 주저앉았고 2020년까지 120~130선에서 움직였다. 이후 2021년 들어 업황이 살아나기 시작하면서 160선을 넘어선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선가가 오르기 시작한 이유 중 하나는 유럽 등 서방국가가 러시아산 에너지와 석유제품 수입을 줄였기 때문”이라며 “러시아산 제품을 대체하기 위해 다른 국가로 유통경로를 넓히면서 선박 운항거리가 상대적으로 길어지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기존·노후 선박으로는 상대적으로 짧은 노선인 유럽-러시아 항해가 가능했다”며 “그러나 이동거리가 길어지면서 신규 선박을 찾는 수요가 늘고 있어 신조선가 지수가 오르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대중공업이 건조한 LNG운반선. /사진=HD현대
현대중공업이 건조한 LNG운반선. / 사진=HD현대

그러나 한국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국내 조선 3사에 선박 가격 상승세는 마냥 기뻐할만한 소식이 아니다.

글로벌 불황에 물동량이 줄어들면서 해상 운임은 낮아지고 있다. 이로 인해 해운업계는 줄어든 물동량과 예전보다 늘어난 운항거리 등으로 큰 수익을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비싸진 선박 가격대로 조선사에 발주를 넣기 힘들어진 것이다.

즉, 선박 수요급등으로 선박 가격이 오르고 있는데 해운사들의 이익이 줄어들면서 조선사는 신조선가 지수대로 수주를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선박을 판매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봉진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선박가격 상승과는 반대로 해상운임이 하락하면서 조선소와 해운사의 힘겨루기가 본격화되고 있다”며 “국내 조선소의 경쟁력은 글로벌 최상위권이지만 해운업도 소수 기업이 과점하고 있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이어 “LNG선과 컨테이너선 등은 상위 10개 글로벌 선사의 점유율이 40%를 넘는다”며 “양 측의 힘겨루기에서 그동안 조선소가 밀릴 수밖에 없던 이유”라고 덧붙였다.

조선업계는 해운사가 선박 가격의 인하를 요구한다면 들어줄 수밖에 없다고 우려한다. 가격을 내리지 않는다면 기존에 수주해놓은 물량까지 취소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마진을 줄이더라도 ‘울며 겨자먹기’로 선박을 제값에 팔지 못할 수도 있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해운사의 요구를 최소한의 출혈로 받아들이기 위해선 후판값 등 원자재 가격이 오르는 것을 막아야 한다”며 “신규 수주를 위해선 원자재 가격방어와 함께 고정비를 줄이는 등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시점”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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