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노위 전체회의 심의 앞두고 재계·노총 여론전
정부·야당 반대 거세지만 거대 야당 입법의지 강해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 파업 51일째인 지난해 7월22일 오전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1독 인근에 경찰이 배치돼 있다. / 사진=연합뉴스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 파업 51일째인 지난해 7월22일 오전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1독 인근에 경찰이 배치돼 있다.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2009년 정리해고에 맞서 77일간 파업을 벌였던 쌍용자동차 노조원들은 사측으로부터 손해배상소송을 당해 2013년 약 47억원의 배상하라는 1심 법원 판결을 받았다. 이 같은 보도를 본 한 독자는 시사주간지 <시사IN> 편집국에 ‘4만7000원씩 10만명이면 47억원을 모을 수 있다’는 편지와 함께 4만7000원을 보냈다. 이 이야기는 쌍용차 노조원들을 돕기 위한 이른바 노란봉투 캠페인으로 이어졌다. 노동자들에게 전달된 해고 통지서가 노란색 봉투에 담겨있었고, 과거 월급을 노란봉투에 담아주던 것에서 착안했다.

약 5만여명이 참여한 이 운동은 입법 논의로 이어졌다. 2015년부터 관련 법안이 여러 차례 나왔다. 하지만 반대여론에 부딪혀 입법까지 이르지 못했다. 그러다 지난해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동조합 조합원이 조선소에서 선박을 점거한 사태를 계기로 노란봉투법이 다시 주목받았다.

노란봉투법의 정식명칭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 3조 개정안이다. 합법적인 노동 쟁의의 범위를 확대하고 불법 파업 노조의 손해배상청구 한도를 제한해 근로자의 노동3권을 보호하자는 게 골자다. 이 개정안은 지난 15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했다. 큰 변수가 없다면 오는 21일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 주도로 환노위 전체회의에서 가결될 가능성이 높은 시점이다.

하지만 경제계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정당한 쟁의행위가 아닌 불법쟁의까지 면책시켜주면 사용자의 재산권이 과도하게 침해된다는 주장이다.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분쟁 사례가 더욱 많아져 국내 기업들의 노사관계가 파탄 지경에 이를 것이라는 게 경제계의 주장이다.

◆ 경제6단체 “일년 내내 노사분규 휩쓸릴 것” 우려

경제계는 20일 노란봉투법 심의를 당장 중단할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대한상공회의소와 한국경영자총협회, 전국경제인연합회, 한국무역협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경제 6단체는 이날 국회 소통관에서 공동성명을 통해 우려를 나타냈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이날 공동성명서를 낭독하며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우리나라 법체계의 근간이 흔들리고 노사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파탄 국면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제 6단체는 “개정안과 같이 사용자 개념을 확대할 경우 원청사업주에게 하청근로자에 대한 사용자 지위를 강제하게 하고 계약 당사자가 아닌 원청 대기업을 노사관계 당사자로 끌어들여 쟁의 대상을 확대해 민법상 당사자 관계 원칙을 무시하고 도급체제를 무너뜨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개정안이 노동쟁의 범위를 무리하게 확대해 노동조합이 고도의 경영상 판단, 재판 중인 사건까지 교섭을 요구하고 파업한다면 파업만능주의를 만연시켜 산업현장은 1년 내내 노사분규에 휩쓸릴 것”이라 말했다.

경총의 최근 주요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긴급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한 모든 기업은 노동조합법 개정이 기업의 경쟁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매우 부정적 83.3%, 부정적 16.7%)이라고 보았다.

지난 15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회의실에서 열린 환노위 고용노동법안 심사소위원회 회의가 열리고 있다. 이날 회의에서는 노조법 2·3조를 개정하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개정법률안 등을 심사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15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회의실에서 열린 환노위 고용노동법안 심사소위원회 회의가 열리고 있다. 이날 회의에서는 노조법 2·3조를 개정하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개정법률안 등을 심사했다. /사진=연합뉴스

◆ 노동계 “헌법상 노동권 보장···커다란 진전”

양대 노총은 헌법상 노동권을 보장하는 의미 있는 진전이라며 환영하는 입장을 내고 있다.

한국노총은 개정안이 환노위 소위원회를 통화한 15일 성명서를 내고 “노조할 권리 보장을 위한 노조법 전면 개정을 위한 첫 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한국노총은 “손배가압류 문제는 무려 20년이 넘도록 국회에서 해결하지 못한 사회적 과제였다. 사측의 보복성 손배가압류 폭탄으로 수많은 노동자의 희생과 고통이 있어 왔다”며 “정당하고 적법한 파업을 하기가 어려운 현실에서 그 범위를 확대한 것도 정부의 노조 탄압이 날로 거세지고 있는 와중에 의미 있는 진전이다”고 주장했다.

민주노총 한상진 대변인도 약식논평을 통해 “사용자 정의를 확대해 노조법 체계 안에서 간접·특수고용 노동자들이 원청을 상대로 교섭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점과 권리 분쟁까지 쟁의 범위가 확대된 부분은 커다란 진전”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손배와 관련해 개인배상과 단순파업이 제외된 부분과 노동자 정의 부분이 빠져있어 미흡한 측면이 있다”며 “남은 국회 처리 과정에 집중하면서 미흡한 부분이 채워지는 완전한 노조법 개정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 정부, 반대의사 “노사갈등 빈번해져”···대통령 거부권 행사 가능성도

정부는 개정안 입법에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헌법·민법 원칙에 위배되고 노사갈등을 확산시킬 우려가 매우 크기 때문에 근본적인 재논의가 필요하다”고 입장을 밝혔다.

그는 “부당노동행위, 임금체불 등 현재 사법적으로 해결해야 할 분쟁대상 조차도 노동쟁의 대상으로 무리하게 포함시켜 노사갈등이 더욱 빈번해질 우려가 있다”며 “범위를 모호하게 확대함으로써 헌법상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 등을 위배할 소지가 있다. 민법상 불법행위에 대한 연대 책임원칙을 훼손하고, 피해자 보호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짚었다.

논란 끝에 개정안이 본회의 문턱을 넘더라도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윤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를 검토하고 있다는 대통령실 관계자 발 소식도 다수 나오고 있다. 이는 불법파업에 엄정 대응하겠다는 대통령의 정책기조와 맞닿아 있다. 국민의힘 역시 윤 대통령이 적극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며 힘을 실어주고 있다. 민주당이 민생입법이라고 주장하지만 전 정부 시절 손을 놓고 있다가 이제야 나서는 게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게 국민의힘의 주장이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21일 환노위 전체회의에서 노란봉투법을 통과시킨다는 방침이다. 환노위원 16석 중 9석은 민주당으로, 전체회의에서 개정안 단독 처리가 가능하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이 국민의힘(김도읍 의원)이라 잠시 지체될 순 있지만, 법사위에서 60일 이상 처리되지 않을 경우 민주당이 본회의 직회부 수순을 밟을 수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이날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노란봉투법에 대해 “헌법이 정한 노동권을 보장하고 노사 간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는 최소한의 균형추”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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