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부품·장비업체, 한국·일본이 유력 행선지···"기회 삼아야"

대중국 무역흑자 추이.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대중국 무역흑자 추이.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시사저널e=정용석 기자] 미중 무역갈등과 코로나19로 인한 중국의 봉쇄조치, 정부 규제 등을 이유로 글로벌 주요 기업들이 '탈(脫)중국'에 나서고 있다. 한국 기업들도 베트남과 미국, 중동 등으로 공급망을 재편하고 있는데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애플·GM·인텔·삼성···글로벌 제조업체, 인도·동남아行

30일 관세청에 따르면 대중국 무역수지 흑자는 감소 추세를 보인다. 흑자 규모는 2018년 556억 달러 수준에서 2022년에는 12억500만 달러로 추락했다. 4년 만에 무려 45토막 난 수치다. 무역 규모 확대에도 불구하고 무역수지 흑자가 쪼그라들자 중국 시장이 더이상 매력적인 시장이 아니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중국은 과거 저렴한 생산 비용 등으로 전 세계 제조기업의 생산거점으로 자기메김했지만, 이제는 보다 인건비가 저렴한 동남아 국가들이 생산거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주상하이 미국상공회의소는 지난해 7∼8월 주중 미국 기업 대상 조사에서 응답 기업의 3분의 1가량이 중국에 계획한 투자를 이미 다른 나라로 돌렸다고 답했다.

코로나19에 따른 공급망 붕괴로 글로벌 제조기업들이 큰 손실을 보면서 탈중국 현상이 가속화되는 모양새다. 애플은 그간 아이폰의 90% 이상을 중국에서 생산했지만 앞으로 인도와 베트남에서 생산 비중을 늘릴 계획이다. 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피유시 고얄 인도 상무부 장관은 최근 기자회견에서 "애플은 (인도 내) 생산 비율을 25%까지 높이려 한다"고 밝혔다. 미국 제너럴모터스(GM)는 중국 내 부품 생산시설 일부를 미국 등지로 이전하기도 했다.

여기에 미중갈등이 탈중국을 부추기고 있다. 미국은 첨단산업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고자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시행하고 반도체 수출 규제 등에 나섰다. 동맹국 기업이라도 이에 응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 

이에 반도체, 배터리 등 첨단산업을 영위하는 기업들의 탈중국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대만 TSMC는 중국 의존도 감소 계획의 일환으로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생산 공장을 짓는다. 삼성전자는 중국 톈진, 후이저우에 있는 스마트폰 공장을 철수하고 베트남, 브라질, 인도네시아를 거점으로 두고 있다. 

삼성SDI 등 배터리 기업들은 원재료의 중국 의존도를 줄이고자 공급망을 다변화하는 추세다. 이날 삼성SDI는 포스코케미칼과 10년간 40조원 규모의 양극재 공급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전문가들은 기업들의 탈중국 행렬에도 중국 시장과 긴밀한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한다. 기업들 생산시설들은 중국서 빠져나올 수 있어도 여전히 중국은 거대한 소비시장이기 때문이다. 지정학적으로 중국 시장에 진출하기 용이한 동남아 등으로 생산 거점이 옮겨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문태 대한상의 산업정책실 팀장은 "기업들이 탈중국을 한다고 해도 다시 중국 시장으로 수출을 이어갈 끈을 마련하기 위해 포석을 둘 수밖에 없다"면서 "중국에서 공장을 철수하더라도 다시 중국에 제품을 판매하기 적합한 나라로 공장을 이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이유로 탈중국은 한국에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업체의 목적지로 한국과 일본이 거론된다.

김 팀장은 "소부장 분야는 운영·유지에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생태계가 필요해 동남아보다는 한국과 일본이 우위에 있다"면서 "탈중국 움직임을 기회 삼아 정부의 규제 완화 및 비자 발급 완화 정책 등으로 소부장 업체들을 유치해야 한다"고 했다. 최근 글로벌 제조기업들이 한국에 문을 두드리고 있는 상황이다. 김 팀장은 "평상시보다 투자를 문의하는 기업들이 많이 늘었다"고 했다.

탈중국 행렬을 빌미 삼아 중국이 경제 제재 등으로 몽니를 부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최근 중국 정부는 한국 정부의 방역 강화 조치에 따른 보복으로 한국을 대상으로 단기비자 발급을 전면 중지했다. 11일 부터는 중국 경유 비자까지 중지했다. 지난 2017년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당시 '한한령'(한류금지령) 실시했던 중국을 떠올리게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다만 과거 사드 보복과 같은 경제 제재가 다시 발생할 가능성은 낮다는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경제 둔화로 성장 한계에 부딪힌 중국이 직접적인 충돌을 야기하며 위험 요소를 늘리진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이태규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탈중국 현상은 미중갈등 이전부터 보이던 현상이다. 기업들이 중국을 빠져나간다 해서 중국이 기업들에게 명시적으로 제재를 가할 수단이 많지 않다"면서 "미중갈등을 우려해 비자발적인 탈중국을 하는 경우는 특정기업에 국한돼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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