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사들, 규모·시간적 부담 적은 초기 스타트업 투자 집중
지난해 1~11월 전체 투자 줄었지만, 초기 투자는 30%↑
"시장 악화해도 AC·VC 모두 초기 투자로 몰릴 것"

[시사저널e=염현아 기자] 벤처투자 혹한기에도 초기 단계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사들의 관심은 계속되고 있다. 공격적 투자에서 손실 최소화로 전략을 수정한 투자사들이 비교적 부담이 적은 초기 라운드에 집중하겠다는 의도다. 후기 라운드보다 투자 규모가 작고, 자금 회수(엑시트)에 대한 시간적 여유도 있어 앞으로도 초기 스타트업에는 대체로 훈풍이 지속될 전망이다. 

국내 스타트업 투자정보 플랫폼 더브이씨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국내 스타트업 전체 투자 규모가 전년동기대비 13.72% 급감했다. 그러나 시드 시리즈A 단계의 초기 라운드의 투자금은 30% 가까이 늘어났다. 지난해 2분기부터 투자시장이 얼어붙기 시작했지만, 초기 투자는 벤처투자 붐이 일었던 2021년보다 오히려 증가한 것이다. 반면 시리즈C~G, 프리IPO 등 후기 라운드는 40% 이상 하락했다. 

실제로 지난해 1~11월 단계별 투자 건수를 보면 초기 라운드는 1340건(79.4%), 시리즈B 214건(12.7%), 시리즈C 이상 후기 라운드(7.9%)는 143건을 기록했다. 초기 라운드가 전체 투자의 80%가량을 차지한 것이다. 

2022년도(1~11월) 스타트업 단계별 투자 / 그래픽=김은실 디자이너

이처럼 초기 스타트업 투자가 증가한 이유는 공격적 투자로 수익을 올려온 벤처캐피탈(VC)이 최근 손실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정했기 때문이다. 최근 글로벌 경제 악화로 인한 증시 침체로 한 번에 큰 금액이 투입되고 엑시트 시점이 임박한 시리즈C 단계 이상 후기 스타트업 투자는 부담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국내 한 VC 기업 관계자는 "최근 VC들이 후기에서 초기 라운드 투자로 많이 내려오고 있다"며 "앞으로도 시장의 불확실성이 큰 만큼 엑시트를 2년 앞둔 후기 기업들을 투자하기보다 안전하게 가겠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반면 자금 회수까지 시간적 여유가 있는 초기 스타트업은 불경기에 대한 압박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평가다. 통상 VC는 투자 집행부터 엑시트까지 길게는 8년을 잡는데, 초기에 투자하게 되면 시장 변동에 대응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렇다 보니 지난해 큰 규모의 시리즈A 투자를 유치한 기업이 줄을 이었다. 

앞서 지난해 3월 150억원을 유치한 자율주행 트럭 기업 '마스오토'에 이어 8월엔 시니어케어 스타트업 '케어링'이 300억원으로 시리즈A 최대 금액을 유치했다. 연말에도 경영 데이터 분석 서비스 개발사 '하이퍼라운지'(106억원), 이커머스 플랫폼 '플루고'(120억원), 숙박 큐레이션 '스테이폴리오'(100억원) 등 스타트업이 시리즈A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업계에선 투자 단계별로 심사 잣대가 다른 것도 원인으로 꼽는다. 수익성 지표를 강조하는 후기 스타트업과 달리 초기 스타트업은 여전히 성장 가능성이 평가 기준이 되고 있다.  

하이퍼라운지 등 초기 스타트업 투자에 참여한 액셀러레이터 기업 퓨처플레이 관계자는 "포트폴리오사들은 업력이 짧아 구체적인 수익 지표가 없으니 성장성을 중점적으로 볼 수밖에 없다"며 "올해 시장이 더 어려워진다고 해도 초기 스타트업들에 동일하게 투자를 집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카카오벤처스 관계자도 "당장 돈을 벌 수 있는지에 대한 데이터가 상대적으로 빈약해 성장성 평가 비중이 높다"며 "현재 시장 상황을 인식하고는 있지만, 이로 인해 투자 규모나 건수가 줄지는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올해 혹한기가 심화돼도 초기 라운드 투자는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초기투자기관협회 관계자는 "초기 투자의 경우 펀드 청산 시기가 비교적 길어 경기회복 가능성이 높다"며 "AC, VC 구분없이 초기 투자에 몰리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현재 투자 빙하기가 계속되고 있지만, 성장가치가 높은 초기 스타트업들의 투자는 오히려 투자기관에게 좋은 기회"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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